집단적 파국의 과정: 재앙은 미묘하게 [기획회의 395호]

!@#… 더 많은 대중적 화제을 얻으며 출간되었으면 좋았을 단행본.

 

집단적 파국의 과정 – [재앙은 미묘하게]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들이 가깝게 붙어서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경우다. 하지만 두 가지는 서로를 상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불편한 것을 견디어내는 것일 따름이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아파트라는 거주공간이고, 불편함의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양상 중 하나가 바로 층간소음이다.

층간소음의 문제는 미묘하다. 왜냐하면 발생을 온전히 예방할 수도 없고, 해결 또한 사실은 잘 안되기 때문이다. 법적 소송을 시작해야 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상태에서도,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중개자가 있다고 한들, 일반적 경고 외에는 가해자를 그들의 집에서 마음대로 내쫒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시끄럽게 하는 것인지, 거꾸로 그냥 평범한 수준인데 과민하게 굴어서 오히려 역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미묘한 현실에서는 자칫하면 당사자들의 자구책이 우선시된다. 매뉴얼화된 제도적 해결이 아닌 자경단 활동들이 늘상 그렇듯, 그 과정에서 정도를 벗어나서 난장판 신경전 내지 멱살잡이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런 것은 마치, 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갈 때 겪는 상호작용의 거대한 비유 같은 느낌을 준다. 나름대로 편하자고 모여 사는데, 모여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에 대하여 원만한 합의나 합리적 해결 절차를 적용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불행을 한 쪽에 몰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며 공동체 관계가 붕괴되거나, 평범하게 함께 불행해지거나.

[재앙은 미묘하게](안성호 / 서울문화사)는 한 아파트의 여러 주민들이 층간소음을 계기로 싸우는 이야기다. 민감한 성격의 웹툰 스토리작가인 하송신은, 작업과 생활을 위해 나름대로 안락하고 조용해 보이는 외딴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그러나 윗집에서 울려오는 청소기, 아이들 발소리 등 층간소음은 작업도 생활도 어렵게 만든다. 직접 찾아가지만 해결되지 않고, 경비실에 중재를 부탁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대립이 커지며 소음으로 복수를 하는 해결을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무슨 동기에서인지 옆집 여성이 협력 너머 아예 부추김을 한다. 점점 상황은 격해지고, 아파트 주민 전체가 참전하게 되고 급기야 온 아파트가 벌금 몰아주기 대회까지 연다. 그렇게 하나의 파국은 더 큰 파국으로 덮이며, 착실하게 점층적으로 함께 파멸로 치닫는다.

[재앙은 미묘하게]에서 재앙에 해당되는 것은 비단 층간소음 자체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층간소음을 매개로 해서 드러나는 이웃 간의 불신, 편 가르기, 피해 몰아주기 등 다양한 사회적 악행들이 엮이며 만들어내는 지옥도가 바로 재앙이다. 작아 보이는 문제가 삽시간에 꼬이고 커지는 과정을 섬세한 관찰과 확고한 점층으로 묘사해내는 것은 작가의 연출력에 기대는 바가 크다. 처음에는 내성적으로 과민해보이던 주인공이 점점 분노를 바깥으로 표출하고, 분노가 주변으로 더욱 커지면서 오히려 주인공은 가장 제 정신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정서적 흐름이 좋은 예다. 다음에는 누가 더 커다란 미친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의외성의 긴장감, 떠들썩한 국면의 경쾌한 화면 전환 등이 이야기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낸다. 강렬한 표정 묘사 또한 장점인데, 처음 소음에 괴로워할 때 주인공이 혼자 상상하는 윗집 가족의 악의에 찬 모습은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의 악몽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묘미는 역시, 각자의 사정이 있으나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던 사람들이 상호 작용 속에서 망가져가는 과정이다. 복수를 부추키는 옆집 여성 민주홍의 경우처럼 일부러 스릴러풍 복선을 조금씩 던지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누구도 특출난 반사회적 인격파탄자가 아니다. 당연히 개념 없음을 선보이는 모습의 연속이지만, 적어도 사태가 처음 시작하는 순간에서는 흔히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하게 정상적 사회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무례함이다. 애들이 분주한데 충분히 제지하지 않는 부모, 좀 시끄러운 음악을 듣기도 하는 청년, 알량한 완장을 휘두르는 부녀회장, 문제의 해결보다는 그저 덮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나은 경비원 등 다양하다.

그렇듯, 이들이 사악해서 재앙이 오는 것이 아니다. 실제 피해가 있는데, 상호작용 속에서 해결이 아니라 점점 문제가 심각해질 따름이다. 시끄러워서 스트레스를 받고, 보복하고, 더 격하게 싸움이 붙어서 결국 일자리까지 망치고, 인간관계들도 겹겹이 부서진다. 그런데 중재되지 않은 갈등은 분노를 낳고, 분노에 기반한 보복을 낳고, 분노한 이들의 연합전선으로 판이 커지고, 급기야 이기심을 극대화하는 만인 대 만인의 폭력적 대결에 들어간다. 공동체로서 합리적 해결을 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결국 도출된 나름의 합의는, 공정한 룰을 가장하여 한 사람을 주기적으로 뽑아서 집단적으로 찍어 누르는 최악의 형태로 찾아온다. 그렇게 모두가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거나 가해의 공범이 되어버린다.

천재지변이 아닌 사회적 재앙은, 뒤돌아보면 거기까지 파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윗집 아저씨가 처음에 조금만 애들을 진정시켰더라면, 경비원 아저씨가 조금만 더 단호하게 주의를 줬더라면, 주인공이 재빨리 그 미쳐나가는 공간으로부터 발을 뺐더라면,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개개인은 그 순간에서 자신이 보이는 범위 내에서 판단하는 제한된 합리성(또는 비합리성)의 존재일 뿐이다. 판이 시작되고 나면 각자의 파국적 상호반응 속에서, 결국 어긋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야 만다. 저들 때문에 작업이 안되어 열 받는데 잠자코 있을 수 있는가. 보복당해서 직장에서 큰 낭패를 겪는데, 가만히 있을 것인가. 웬 놈들의 경쟁 때문에 얼결에 같이 피해를 보게 되었는데, 내버려 둘 것인가. 내가 억눌러두고 있던 분노에 대해서 대신 싸워줄 것 같은 사람이 나왔는데, 부추켜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재앙은 난데없이, 작은 계기라서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결국 피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눈 앞에 닥친다.

[재앙은 미묘하게]는 해결을 제시하는 방식의 작품은 아니다. 그저 가장 끝까지 가는 흐름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런 작품을 재료 삼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들이 깔고 앉아있는 불씨의 장작더미를 직시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 조금씩 재앙에 대비하도록 합의할 수 있는가.

재앙은 미묘하게 1
안성호 지음/서울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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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블랙잭 창작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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