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세 끼의 사색 – 먹는 존재 [기획회의 372호]

!@#…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매일 세 끼의 사색 – [먹는 존재]

김낙호(만화연구가)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은 먹는 것이다. 특히 성공가도를 위한 노력의 스트레스보다는 사람들의 무례함과 오지랖에서 오는 스트레스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감내하는 것이기에, 어쨌든 맛난 것을 먹으며 잠시 세상이 살아갈만하다는 신뢰를 좀 긴급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약간 되찾은 힘으로 더 순응을 할 것인지, 약간은 자유롭게 저항을 할 것인지는 그 다음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딱히 음식에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원래 사람은 음식을 먹고 살아가게 되어 있고, 먹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장 당연한 것을 할 때, 상황을 마음 속에 다시금 정리해볼 여력이 생긴다.

[먹는 존재](들개이빨 / 애니북스 / 1권 발행중)는 스트레스 가득한 오늘날 한국 도시생활 속에서, 무언가를 먹는 이야기다. 유양은 한국사회에서는 ‘까칠하다’고 흔히 평가될만한,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이야기해버리는 성격의 여성이다. 그가 겪는 지극히 평범하게 짜증나는 일상적 사회생활이 한 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삼시 세끼 그리고 간식까지 무언가를 먹는 내용이 다른 축으로 작품 전체가 흘러간다. 출근길, 회식자리에서의 술 강요, 실직, 백수생활, 기분전환, 가족들의 압력, 이성과의 조우 등 흔히 발생할 만한 상황들의 연속인데, 그 과정에서 먹을 것을 먹는다.

출근길 지하철의 북적거림은 누군가가 뜯어 먹는 천하장사 소세지를 통해서 묘한 일상적 페이소스로 승화되고, 서로 다른 회사 대인관계 스트레스 대처방법을 지닌 두 친구의 모습은 퇴근 후 먹으러가는 홍탕 백탕 훠궈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백수생활의 해방감과 답답함의 양가성은, 초코파이를 전자렌지에 돌려 녹여먹는 괴식 탐험으로 자연스레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승화된다. 이 작품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여느 음식만화, 요리만화들이 그렇듯 인생의 전환기적 감동도, 장인정신의 완성도 아니다. 음식을 소개하는 것, 먹음직스러움을 과시하는 방식과도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음식을 먹는 것이란 그냥 삶의 방식이다. 사람은 살면서 꼬박꼬박 배가 고프고, 뭘 먹는다. 먹는 것은 생활의 일부분이고, 그 부분을 중심으로 보여줄 따름이다.

먹는다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시각은 이 작품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현실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해고당하고 백수로 지내는 기간을 무한히 연장할 수 없는 이유는 밥을 먹으면서 잔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면 씨발 광합성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되는 거 아냐! 왜 꼭 일해서 밥을 벌어먹어야…”라고 투덜거려도 보지만, 자기 창작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꿈이란 결코 꿈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밥을 골라 먹는 것과, 구린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구린 식사를 하는 것 사이에서 사람은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현실이다. 불편한 종류의 식사를 하고, 그 안에서 그나마 마음이 맞아 보이는 사람과 만나서 샌드위치를 먹고, 그러다보면 탈도 나고 하는 것이다. 위대한 노력파 천재의 입신양명 판타지가 아니라, 부조리를 보며 까칠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력은 지녔으나 밥벌이는 늘 현실적 과제인 그런 종류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유양이 바라보기에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은 먹이 피라미드다. 직언을 해서 직면을 시키는 성격인 그가 그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방도는 많지 않다. 사람들과 부딪혀가고, 직장에서 잘려가며 좌충우돌을 하는 과정에서, 냉정하되 비관적이지 않고, 사근사근하지 않지만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고, 세상에 피곤한 일이 많지만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색을 계속할 따름이다. 그렇게 세상에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함께 사는 것,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먹으면서 사색을 하고, 먹으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유양이 결국 유명한 전업 창작자가 될지, 지금 만나는 남자와 여하튼 잘 될지, 그런 드라마적 결말보다는 다음에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엿보는 재미가 오히려 중심에 놓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것은 각각 별개의 고민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 그냥 생활의 일부다. 부조리는 무슨 거대한 악이 있어서가 아니라 막돼먹은 상사의 무례 속에서, 누군가의 주제 넘는 오지랖 속에서, 다들 믿고 있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매우 불편해하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그 와중에 소외되고 감춰지는 세상의 작은 면모들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직장에서 해고된 착잡하고 후련한 상태에서 찾게 되는 것은 근사한 레스토랑의 허세가 아니라, 동네 가게의 떡볶이다. 스트레스 해소와 사색과 성찰이란 심오한 철학적 고민이 아니라, 사정을 듣고 가게 아줌마가 가득 챙겨준 양 많은 음식을 먹으며 MSG의 맛에 만족하고 적당히 기름에 느끼해하면서, 그 포만감과 안도감을 받아들이고 우선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극적 과정의 깨달음보다도 훨씬 자연스러운 여운이 있다.

엄청난 극적 롤러코스터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꽤 냉엄한 상황도 경쾌한 유머의 시각적 비유로 소화해내는 그림 연출의 힘이 크다. 극중에서 두 번째 실직을 당한 후 내면의 수많은 양심들이 함께 북적거리며 토론하고 함께 죽을 먹는 식으로 내면의 갈등을 표현한다든지, 탁월한 시퀀스가 많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확실하게 눈에 띄는 것은 직설적인 대사 감각이다. 각 음식의 맛에 대한 느낌을 서술하는 것이, 과장된 찬사나 정밀한 분석이 아니라 구수한 입담으로 펼쳐진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케잌을 사들이고 남기는 단상이 “미녀한테 푹 빠져서 가산탕진하는 졸부 3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일 정도다. 하지만 한층 깊은 매력은 격한 찬사나 실망보다도, 그대로 담담하게 먹는다는 것의 일상을 파고들 때다. 우리는 매일 세 끼씩이나 먹는데 매번 감동해서 집어 삼키거나 실망해서 뱉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소 맛있으면 흡족하고, 좀 맛 없는 것도 대충 먹게 된다. “옛날 맛 그대로… 존나 맛없어. 발기부전 영감마냥 처량한 맛이군”이라는 혹평은, “그래놓고 다 먹었어”라고 담담하게 귀결될 따름이다. 날카로운 직설이 살아 있는 구수한 입담이 단순한 막말의 해방감 같은 것이 아니라 묘한 울림을 주는 것은, 언어묘기 대행진이 아니라 이런 일상적 상황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먹는 존재]는 먹을 것에 대한 호들갑 없이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매력을 노골적으로 전하고, 훈계 없이도 꽤 직접적인 사색을 던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람은 밥을 먹으며 산다는 단순한 전제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매력적이다.

먹는 존재 1
들개이빨 지음/애니북스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짐승의 시간

_Copyleft 201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_
[이 공간은 매우 마이너한 관계로, 여러분이 추천을 뿌리지 않으시면 딱 여러분만 읽게됩니다]

Trackback URL for this post: https://capcold.net/blog/11753/trackback
5 thoughts on “매일 세 끼의 사색 – 먹는 존재 [기획회의 372호]

Comments


  1. 그 일!이 벌어진 건가요. 감동적이네요…
    블로그에나마 그 일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셨으면!

    아무튼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뽐뿌질 감사합니다.

    • 정민님/ 기록의 파편들을 직접 검색하며 찾아가는 즐거움을 제가 방문자님들로부터 앗아가면 아깝죠(핫핫)

  2. 그런데 그 일이 또 일어날…지도?

    저 역시 2007년 쯤 캡콜드님을 알게되서 품평할 만한 만화를 그리리라!
    했었는데 결국 만화가가 되었네요.

    그럴 만한 작품을 그린다는 가장 중요한 고비가 남았지만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