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가족모험만화의 미덕: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 [기획회의 406호]

!@#… 기획회의 서평코너의 만화부문을 담당한 마지막 원고. 2004년 10월부터 상당히 누적되었으니 총정리를 한번 해봐야할텐데, 뭐 언젠가 여력이 생겼을 때의 이야기. 우연하게도 마지막을 표현적 성취든 내용의 발랄함이든 꽤 취향직격인 작품으로 가게되었다.

 

명랑가족모험만화의 미덕 –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

김낙호(만화연구가)

아기자기하고 왁자지껄하면서, 일상적 골목길에서 비밀의 동굴까지 스케일이 분방하게 변하는 모험이 있다. 잘 나가지 못하는 꼬마 주인공이 전면에 나서서 만화이기에 가능한(!) 기 발한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한다. 코믹한 악당들이 혼나는 통쾌함도 있으며, 세태 풍자가 듬뿍 들어가고, 가족 간의 티격태격거림과 근본적 훈훈함이 있고, 그 모든 것이 경쾌하고 해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흘러간다. 바로 꺼벙이에서 요철발명왕에서 로봇찌빠와 아기공룡 둘리까지, 80년대까지 어린이들의 즐거움을 책임졌던 명랑만화라는 장르가 펼쳐보인 매력적 세계관이다. 더 강렬한 액션이나 성장과 변신의 요소로 중무장한 소년만화들이 취향의 판도를 바꿔놓는 바람에 소리 소문 없이 밀려나기는 했지만, 명랑만화의 핵심적 매력을 성공적으로 활용해낸 작품이 어쩌다가 한 번씩 나올 때마다 반가움이 앞선다. 대단한 문화사적 의의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유행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큰 재미를 주는 코드이기 때문이다.

[고고고 – 해골물의 비밀](정은경 글, 하일권 그림 / 형설아이 / 1권 발매중)이 오랜만에 만난 바로 그런 만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8살 초등학생 고민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함께 다 무너져가는 달동네에서 살고 있다. 뭐든지 필요한 것은 주변의 재료와 청테이프로 만들어내는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있지만, 돈에 집착한다. 아버지 고문관은 철없는 게임폐인이고 할아버지 고지식은 전에는 유명한 고고학자였다는데 지금은 치매노인이라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사실상 소년가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수수께끼의 사람들이 집을 불태우고, 음모의 근원에 있다는 수수께끼의 보물을 찾아내자는 노신사 할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고씨 삼부자는 전설의 보물, 마시는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깨달음을 준다는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찾아 모험에 나선다.

[고고고]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각각의 캐릭터들이다. 생활화된 가난 속에서도 주인공 고민은 똘똘하게 도르레 기구를 만들어 옆집 김치를 꺼내 먹으며(엄연한 범죄지만), 티셔츠를 두르고 있는 청테이프로 각종 위기상황을 타개한다. 필요에 따라서 로프로도 쓰고, 뗏목도 만드는 등 척척박사의 모습인데,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을 돈 되는 쪽으로 쓰는 것은 숙제노트를 파는 것이 고작이다. 아버지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백수인데, 게임 폐인으로 그쪽 세계에서는 엄청난 실력을 인정받고 잇는 고수다. 고이 간직한 전용 명품 키보드가 자랑거리인 구박 덩어리로, 애보다 더 애 같은 어른이라는 명랑만화 코드도 든실하게 채워준다. 할아버지는 대체로 치매상태라서 고민을 형 취급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잠깐 제 정신이 돌아오고는 실제 도움이 되지는 않고 다시 치매상태로 돌아가는 개그 요소가 가득하다. 여기에 언젠가부터 키워왔던 의외로 똑똑한 애완용 비둘기 구구닭이 있고, 전교 1등 고민에 대한 질투로 어쩌다가 모험에 따라나선 부잣집 따님인 반장이 함께 한다. 특히 반장의 경우는 귀여움과 무력을 동시에 책임지며, 고씨 가족의 관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외부인이자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서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는 명실상부한 공동 주인공 격이다.

역사적 요소를 보물탐험 판타지로 삼지만, 이 작품은 ‘인디아나 존스’의 활극 정서보다는 옛 명랑만화들의 황당하고 즐거운 소동으로 가득하다. 원효대사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 진리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신비로운 해골물 덕분이라는 보물 설정을 깔았듯, 그것을 찾아나서는 중간 과정의 보물 단서와 함정들 또한 명랑한 전복적 발상으로 가득하다. 오늘날의 모바일 기기 퍼즐 게임을 옛날 식으로 번안한 관문들을 통과한다든지, 블로그의 허세 자랑 문화가 신라시절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든지 하는 패러디 실력은 기본이다. 익숙한 듯 허를 찌르는 듯한 반전과 정체 노출의 연속, 끝없이 박진감 넘치게 이어지는 모험 상황 등이 가벼운 웃음으로 가득한 경쾌함 속에 이어진다. 그렇게 고고고 탐험대는 전국을 누비며, 의문의 조직과 맞서고 악역들의 방해를 받으면서 결국 보물에 도달하여 그 안에 담긴 깨달음을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개별 소동의 속성 이전에, 생계형 보물찾기라는 요소가 이미 무엇보다 명랑만화 같은 아기자기함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유명세를 원하거나 학문적 호기심으로 움직이거나 그저 영웅이기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집안이 가난해서 돈을 벌고자 모험에 나선다. 한편 나쁜 놈들 또한 세계정복이나 부귀영화 같은 거대한 사악한 목적이 아니라 훨씬 개인적인 동기가 있다. 모든 것의 정서적 구심점에는 일관되게 가족이라는 애증 관계가 있는데, 고고고 삼부자 역시 결국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합당한 역할이 주어지고 미운털 고운털 가득 박힌 가족의 팀워크를 서서히 찾아나간다.

물론 그 팀워크는 여전히 희극적일 정도로 조금씩 부족하거나 비틀어진 사람들의 연대이며, 끝의 끝까지 해학적으로 삐걱댄다. 그 모든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붕괴를 막는 것이 바로 소녀의 얼굴과 근육인간의 풍모를 수시로 오가는 반장이라는 점도 묘하게 가족적인 느낌을 준다. 달달한 가족관계라기보다는 우당탕탕 왁자지껄이라는 의태어가 어울리는 모습이고, 사랑보다는 구박으로 쌓인 애증에 가깝다. 다만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고, 그 신뢰를 모험 속에서 다시 파악해내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정서가 만개할 따름이다. 소동 뒤에 감동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소동이 그냥 하나인 듯 던져지는 그런 정서야말로 가장 잘 만들어진 명랑만화 에피소드들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떤 높은 정서적 경지다. 이야기 작가의 깔끔한 전개 솜씨와 이미 정평이 난 그림 작가의 뛰어난 정서 흐름 연출이 좋은 호흡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했다.

원래 이 작품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면서, 상하 스크롤 과정에서 흥미로운 특수효과를 활용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큰 배경 칸을 여러 레이어로 나누어 각자 다른 속도로 흘러가게 하여 깊이의 느낌을 주는 패럴렉스 효과라든지, 특정 순간에 도달하면 흔들이고 움직이는 대목을 삽입하여 박진감을 준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특히 특수효과의 신기함에 매몰되기보다는 이야기의 연출에 합당하게 절제하여 사용했는데, 어두움 속에서 점차 무언가가 드러난다든지, 아련한 달동네나 깊은 산골짜기의 공간감을 키운다든지, 갑작스럽게 굴러떨어진다든지, 총격전에서 진동이 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작품을 넘기는 도중에 강요되기보다는 넘겨보는 일부로 심어넣는 독서 경험에서 특히 형식에 대한 세심함이 빛났다. 아쉽게도 그런 효과들을 종이책으로 출판하면서 그대로 옮기는 것을 불가능한데, 그 대신 촘촘한 칸 편집에서 오는 박진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두 가지 버전 모두 감상할 가치가 있다.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 1
정은경 글, 하일권 그림/형설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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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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