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루미코 여사보다 최소한 한 수 아래. 아다치는 어떤 성인 감성 소재를 들고와도 결국 뼛속까지 청춘 소년의 한계를 못벗어난다… 아니 뭐 꼭 벗어나야할 필요는 없지만.
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
김낙호(만화연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는 종종 일정한 후회가 따른다. 좋든 싫든,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보이니까 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그래서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상념이 드는 것은 굳이 지난 주 로또번호가 아니라도 인생의 여러 순간에 대해서 해당된다. 왜 그 때 붙잡지 않았을까 하는 연애사든, 왜 그 때 좀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꿈을 추구하는 과정이든 뭐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런 식으로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회를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철없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지나간 것을 돌아가서 바꿀 수 있을 리도 없는데, 그런 상념에 쓸 지혜를 차라리 지금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할수록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다. 가끔 그런 상상이 현재의 삶에, 앞으로의 선택에 비슷하게 반복되는 무엇인가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 같은 ‘철없는’ 희망,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텐데 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생사, 어차피 살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종종 드러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럴 때, 철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한 순간이 온다.
『모험소년』(미츠루 아다치/대원CI)은 『H2』, 『터치』등 일련의 청춘 스포츠 소년만화 (스포츠는 소재고, 핵심은 청춘에 있다)로 큰 명성을 모은 바 있는 아다치 미츠루의 연작단편집이다. 작가가 1년에 한편씩 발표한 성인취향 연작 7편을 묶어낸 모음집이다. 하지만 큰 테마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기 보다는 비교적 확고한 컨셉 한가지로 묶어지는 연작이 되었는데, 그 것이 바로 바로 과거의 선택이다. 일곱 편 모두 현재는 어른이 된 한 청년이, 과거에 하지 못하거나 아쉬웠던 일을 ‘수정’하는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도라에몽의 힘으로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저 현재에서 그 과거를 살짝 다른 모습으로 다시 체험하는 데자뷔를 겪고 지나가는 정도에 머물기도 한다. 때로는 직접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여자에게 그 때는 못했던 배려를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과 비슷하게 야구에 매진하는 꼬마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저 새로운 자세를 깨닫고 끝난다. 그 과정에서 청년의 마음은 잠시 다시 소년이 되고, 그 마음 속의 소년은 나름대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모험을 선택한다. 해적선도 밀림도 전쟁터도 아니라, 바로 인생의 과정이 모험이니까.
『모험소년』은 성인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기보다 모험소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그때 못했던 무언가를 바꿔보고 싶은 젊은 남성 성인의 회한과 희망에 집중한다. 성인 속에 담아둔 소년의 이야기들인 셈인데, 다소 철없는 상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는 상쾌한 감성을 잘 집어낸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우연히도 그런 상상에서 결국 새로운 선택이나 깨달음을 얻을 만한 기회를 맞이하고, 그 기회를 잘 살려서 좀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게 된다. 찌들만큼 힘들다기 보다는 그저 무언가 부족한 현재의 어른으로서의 삶에서, 그 권태가 시작된 분기점인 소년시절의 무언가로 되돌아가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좋은 상상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느끼하지 않게, 지나치게 향수어리지 않고 적당히 감상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작가의 전매특허인 칸 사이의 여백 넘치는 사건 연출, 그리고 직접발언이 아니라 외부 관찰을 통해서 섬세하게 심리 묘사를 해내는 솜씨다. 덕분에 독자는 주인공들에게 강제 이입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서정적 단편소설 내지 시집에서 겪는 것 이상으로 자발적인 공감의 코드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주제 자체도 소년적 이상향, 적절한 유치한 꿈에 대한 애정이다 보니, 작가의 본업인 청춘 스포츠 만화 연재에서 갈고 닦은 솜씨가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한계 역시 분명하다. 따듯하고 낙천적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을 자연스럽게 진전시킨다기 보다는 과거의 응어리를 푸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어떤 사건이 장애물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넘어설 뿐, 정말로 현재 상황에서 무언가 새로운 돌파를 만들어 냈다는 식의 느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해피엔딩을 표방해도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기보다는, 그저 순간의 해소, 행복으로 끝날 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현대 사회에서 성인의 생활이라는 것이 어디 개인의 과거 응어리만으로 힘들어지는 것이던가. 현재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위치에서 나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거대하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인 취향 연작 단편을 발표해온 루미코 다카하시가 후자의 정수를 잘 건드리고 있음에 비해서, 아다치는 좀 더 얕다. 아니, 더 ‘철이 없다’. 마치 소년 같다. 오히려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 있는 소년도 성인 생활의 스트레스가 좀 더 제대로 강조될 때 비로소 좀 더 의미가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적당히 감안해가면서라도 여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 내적인 아쉬움과 달리, 작품 외적인 출판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좀 더 확고하다. 나름대로 고급판형을 표방하며 출판하고서도 정작 고만고만한 보도자료 하나 없이 달랑 책만 내놓고 마는 출판사의 방만함에는 대형 만화 전문 출판사 특유의 타성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판형 자체도 이런 작품이 어떤 식으로 두고두고 다시 읽힐지에 대한 고민보다 그저 고급스럽게 낸다는 일념으로 속칭 ‘만화 애장판’ 스타일로 내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번씩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이런 단편집 특유의 운반성이 부족하다. 작품 선정을 넘어, 출판 자체에 대한 고민이 아쉬운 대목이다.
『모험소년』은 마음속에 담긴 소년, 그 과거를 마주보며 바로 잡는 상상의 섬세한 내면을 다루는 작품집이다. 성인 세상에 대한 통찰을 담기에는 다소 철이 없지만, 그래도 그 철없음의 미덕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있을 때 한번 펼치면 좋은 읽을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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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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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소년 아다치 미츠루 지음/대원씨아이(만화) |
마침 오늘 어릴적(?) 작성해둔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키득거렸는데. 그중 한 낙서가.
다카하시 루미코와 아다치 루미코의 공통점.
-소학관이네.
-같은얼굴캐릭터들이 극중에서 서로 배역과 옷만 갈아입고 나오네.
같으면서도 다른점.
-한사람은 남자작가로 스포츠만화를 그리는데 스타일은 순정만화야.
-한사람은 여자작가로 순정만화를 그리는데 스타일은 소년만화야.
비교우위.
역시 터치보다는 메종일각 아닌가?
이런 글을…
모험소년 보니까 생각나는 만화가 하나 있네요. ‘소년,소녀’ 북박스에서 국내번역되어서 어렵사리 4권 완간을 다 보긴 보았는데. 캡콜교수님은 보셨을라나.
!@#… nomodem님/ 만화로 된 목차인트로와 아우트로가 무척 인상적인 만화였죠. 왜 4권만에 끝났는지…;;;
1권 목차인트로는 정말 인상적이라서, 전 처음볼당시 그게 하마터면 정말 단칸만화와 제목들인줄 착각까지 했답니다…몇장넘기기전에 말이죠. 후..이거 또 너무 빨리썼다고 입력이 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