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 당당하게 복합적인 인간 [IZE / 20161027]

!@#… 1.클라이맥스 분위기라서 ‘결말을 향해간다’고 썼는데, 과연 무한연장의 네이버웹툰(…) 2.뇌내랜드 각 주민들의 성별이 아직 스테레오타입이 남아있다든지 하는 더 세세한 지적도 가능하겠으나, 완벽을 꿈꾸기 바빠서 성취를 경시하면 곤란하기에 스킵. 게재본은 여기로 클릭.

 

[유미의 세포들], 당당하게 복합적인 인간

김낙호(만화연구가)

미디어이론 강의를 하다가 대중문화가 여성을 재현해내는 것의 전형성을 극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 무엇인가 물은 적이 있다. 더 많은 여성 액션 히어로 등의 대답이 나왔는데, 사실은 함정문제였다. 새로운 전형성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형성 자체를 해체하는 것, 즉 복합적 존재로 묘사해내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도 과연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이 될 것인가. 당시에는 영화 [매드맥스4]를 사례로 들었지만, 요즘은 더 간편하게,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동건 / 네이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은 누군가가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다양한 나들의 상호작용으로 의인화하는 나름대로 유구한 전통의 장르 코드를 중심에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나들은 천사-악마의 이원론도, 나이로 구분된 역할분배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기본 감정 요소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예 머릿속에 뇌내랜드라는 마을이 있고, 그 안에 나를 닮았는데 미세한 외견 차이와 함께 각각의 개성을 표상하는 다양한 군상들이 왁자지껄하게 지내며 매번 작은 모험을 치른다. [개구쟁이 스머프]가 주던 군상극의 재미를, 평범한 회사원인 뇌의 주인 유미가 일터와 개인 생활에서 여러 인간관계에 대처하는 일상적 공감대의 재미와 절묘하게 합체시킨다.

군상극 부분의 재미를 가르는 핵심은, 머리 속의 판단 요소와 기타 몸을 이루는 여러 기능들을 다양한 개성적 캐릭터로 의인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체조차 원래 구사했던 채색면 중심의 아이콘식 스타일을 버리고는 아예 유럽 유머 만화풍의 선화로 바꿨는데, 기본적으로 같은 얼굴인데 표정과 약간의 액서서리만으로 서로 다른 개성을 캐릭터화해야 하는 작품의 속성상 매우 적절하다.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성, 감성, 사랑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여배우, 거짓말 등 더 특정화된 수십가지 ‘세포’들이 갈수록 북적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하나의 판단을 내릴 때, 그 세포들은 다양하게 상호작용한다. 전작 [달콤한 인생]의 유명세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판단의 과정과 소소한 고민에 대한 집착적일 정도로 세밀한 쪼개기인데, [유미의 세포들]에서 그것은 한층 중요한 장점이 된다. 유미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할 때, 일터에서 거부감을 느낄 때, 친구나 라이벌과 신경전을 벌일 때, 어떤 사소한 행동이나 표정이라도 그저 표피적인 감정에 머무를 수 없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충돌하며, 판단 근거들이 백가쟁명을 벌인 결과로서 유미가 한 가지의 대처를 하는 것이다. 유미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뇌내마을에서, 사랑세포가 잠시 이성세포를 이기는지, 자신감 세포가 갑자기 다른 모든 이들을 뛰어넘는지 같은 큼직한 드라마다.

그렇게 해서 도출되는 유미의 행동은 늘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늘 충동으로 움직이지는 것도 아니다. 머리 속에 그렇게 다양한 군상이 북적거리는데, 그 주인이 그저 일차원적 감정에만 의지하거나 모든 것에 초인적으로 이성적인 얄팍한 캐릭터가 될 수가 없다. 나아가 수동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캐릭터로 만들 수도 없다. 예전 IZE 인터뷰에서 작가는, 여성이 자기 문제를 남에게 의지한다는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유미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만든 대목을 논한 바 있다. 하지만 성별의 전형성 문제를 의식한 어떤 배려 너머,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감각을 유지한다면 당연히 유미가 주체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자기 문제를 그저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뚜렷하게 주체적인 캐릭터는, 내면의 복합성에서 탄생한다.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가며, 유미는 자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상대 남자와 라이벌 여자 둘을 마주하는 결정적 대결국면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에 맞춰, 그간 등장했던 유미의 세포들이 한꺼번에 힘을 합치고자 모여든다. 응큼함도, 궁금함도, 사랑도, 이성도, 출출함도, 맹목적 지지도, 비관도, 자신감도 모두 유미의 일부분이자 전체다. 대중문화에 차고 넘치는 얄팍하기에 왜곡되기도 쉬운 어떤 전형적 성별 표상이 아니라, 당당하게 복합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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