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복합다난한 사회라고 해도, 그 사회의 근간이 되는 민주제의 정당한 권력작동과정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버렸음이 밝혀졌다면 그 공통분모만큼은 모두 함께 대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소속되어 있는) 미국에서 연구하는 한인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라는 매우 특정한 직업군에서도 박2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를 맞이하여 사상 최초로 시국성명에 뜻을 모았습니다.
!@#… 성명서가 이뤄진 과정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이번 사안의 함의 등은 슬로우뉴스 기사의 일문일답 참조. 몇가지 주안점을 옮기자면,
– 블로기즘으로 단련된 풀뿌리 추진력과 재미한인언론학회라는 학문 결속체의 조직력, 이 두 가지가 결합한 신속한 추진.
– 결국 원래 정상적 민주제 정치는 ‘소통’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그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발생한 농단. 특히 언론의 감시기능.
– 미국도 지금 비슷한 파국의 첫단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언론학’자로서 조용히 있을 수 없음.
– 다들 각자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통해서 사안에 접근해서, 다각적이고 깊숙한 문제의식의 연대를 만들어 나갑시다.
여하튼, 성명서 본문 나갑니다. 이 것이 모두의 연대에 작은 기여가 되었으면 합니다.
재미 언론학자 시국 성명서
우리들은 한국을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위임 받은 권력을 측근 소수와 공유하며 전횡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민주국가’라고 믿어왔던 조국의 암담한 모습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측근에 대한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를 방해하며 비호해왔다는 점에서, 대통령은 소위 ‘비선실세’들이 저지른 범죄의 공모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된 재단의 출연금을 늘리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기업 총수들을 만나 수백 억의 돈을 요구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주범이고 최순실 일행이 공범’이라는 지적은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연설문은 물론, 외교와 안보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 국정 자료를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는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 연설은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통치행위의 가장 중요한 형태입니다. 이것을 사적 통로로 유출했다는 것은 민주적 사회운영 원리에 대한 중대한 위반입니다.
그 결과 대통령은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라고 인정했고,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더불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과 이후 대통령이 취한 첫 조치는 검찰의 조사통보에 불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부산의 ‘엘시티 비리사건’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게 “철저히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명했습니다. 그가 이 지시를 내린 날은, 검찰이 대통령을 조사하기로 통보한 날이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있어야 할 사람이 조사를 지시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 모든 사태는 대통령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 최소한의 판단 능력도, 법의식도, 윤리적 양심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국가 통수권자로서의 자격을 잃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에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해 대대적 여론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2014년에 300명 넘는 국민들 목숨이 물속에서 꺼져가고 있을 때 대통령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2015년에는 위헌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강행했습니다. 그런 뒤 올해 터진 것이 권력 사유화와 전횡 사건입니다. 하나하나가 탄핵 사유에 해당할 심각한 실정과 범죄 행위입니다.
우리들은 언론학자로서, 날로 악화하는 한국의 암울한 언론 상황 또한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6년 ‘국경없는기자회(RSF)’는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를 180개 국가 가운데 70위로 낮춰 평가했습니다. 이는 앞의 언론 자유 감시 단체가 한국을 평가하기 시작한 이래 최하위 성적으로, 민주화 이후 우리의 언론상황이 최악에 도달했음을 말해줍니다.
한국의 언론 자유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우연도, 놀랄 일도 아닙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언론을 길들여 왔는지 보여주는 문건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이 나서서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 제소, 고소와 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불이익을 주고, 호의적 언론에는 포상을 주도록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현재 많은 언론 매체가 ‘비선실세’ 의혹을 파헤치고 있지만, 모든 언론이 제대로 된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수언론들은 얼마 전까지도 현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칭찬하고 허물을 덮어주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이들이 현 정부의 유효기간이 끝나가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새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을 검증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수의 한국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공모자들입니다.
현재 국민들은 수백만 개의 촛불을 든 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정 공백’이나 ‘사회 혼란’이라는 말로 여론을 호도하려고 하지만, 무자격자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만큼 혼란스럽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것이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게 내버려 두는 것만큼 나쁜 선례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하야하라.
하나, 수사당국은 대통령과 측근을 둘러싼 의혹을 남김없이 수사하고 처벌하라.
하나, 야당과 여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라.
하나,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본연의 사명을 수행해야 하며, 정치권은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수행하라.
재미 언론학자들은 한국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하고 전 세계에 고발함으로써 한국에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동참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워 온 대한민국 국민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2016. 11.20
북미지역 언론학자 일동
서명인 151인 명단
(가나다순 / 한글성명, 영문대학소속 / 2016.11.19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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