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오브 2017: capcold 세계만화대상 발표

!@#… 캡콜닷넷 연례행사, 올해의 베스트 2017년 시리즈. 그중 첫타는 한 줌 사람들에게만 나름의 전통(…어쩌다보니 이건 진짜 꽤 쌓였다)과 권위를 자랑할수도 아닐수도 있는 capcold 세계만화대상. 세계라고 해놓고는 한국이라는 만화권역 기준에서만 뽑는 상.

매해 되풀이되는, 애매하면서도 간단한 선정기준. 우선 존재하는 모든 작품이 후보군인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할애한 것만 후보군.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완성도와 의미를 갖춘 작품들이지만, 굳이 한국작가에 한정되지 않고, 꼭 2017년에 나왔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도 대중성도 매니아적 깊이도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저 2017년의 만화, 만화 관련 사건들. 순위 같은 것은 산정하기 귀찮아서 그냥 무순. 왜 이 작품은 없는가 물어보신다면, 작년에 이미 뽑았거나 까먹었거나 너무 연말에 출시되서 아직 못읽어봤거나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거나. 여기 뽑힌 작품이나 사건에 관여하신 분이라면, 알아서 뿌듯해하시면 됨. 아니면 말고.

**2017년의 작품들

(무순. 종이 단행본 발간시 출판사 표시, 온라인연재 만화는 가급적 온라인 지면도 따로 표시)

* 며느라기 (수신지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섬세한 현실감을 위해 발표 매체 자체를 현실 속으로 넣은, 일종의 메타-픽션. 그 위에서 섬세한 현실감 넘치는 일상적 갑갑함, 즉 그저그렇게 선량함에도 구조적으로 압박당하고 마는 며느리라는 위치를 짚는다. 좀 더 긴 평은 여기로.

* 나빌레라 (HUN, 지민/ 다음): 가장 긍정적 의미의 신파. 젊어서 못한 꿈을 말년에 다시 추구하려는 노인과, 젊은 재능을 당면한 고민으로 못 피우는 청년의 친분이라는 원형적 주제를, 가족의 의미,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의식으로 성공적으로 풀어낸다. 함께 발레를 하면서.

* 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 뿌리와이파리): 추천사를 그대로 옮긴다: “과학의 매혹과 기이함, 과학자라는 인간들의 경이와 결함, 그 함의의 심오함과 희극성은 결국 하나다. 과학에 대한 애정과 개그에 대한 집착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최고의 과학만화.” 좀 더 긴 평은 여기로.

* (김금숙 / 보리북스): 짓밟히는 꽃이 아닌, 일어서는 풀. ‘위안부’ 소재를, 교차되는 여러 구조적 수탈 속에서도 스스로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간 그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좀 더 긴 추천평은 여기로.

* 수상한 레스토랑 세컨즈 (브라이언 리 오말리/박중서 역/미메시스): 스콧필그림으로 평생의 재능을 소진한 것이 아니다. 일과 사랑에 고군분투하는 한 젊은 여성 셰프가,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되돌리는 마법의 기회를 부여받아 더욱 많은 실수 속에 조금씩 성장하는 도시 동화.

* 사가 (브라이언K본, 피오나 스테이플스 / 이수현 역 / 시공사): 드디어 한국어판, 나왔다. 거대하고 분방한 SF판타지 세계를 무대로 펼치는, 이종 핵가족 분투기. 상상력의 크기와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완벽한 조화가 만드는 대서사시. 좀 더 긴 평은 여기로.

* 던전밥 (쿠이 료코 / 소미미디어): 성립된 장르물에 먹을 것 소재를 결합시키는 접근이 최근 꽤 유행하긴 했지만, [던전밥]의 내적 현실감, 캐릭터 성장의 매력, 게다가 유머의 탄탄한 결합력 근처에라도 오는 작품은 드물다. 판타지 던전 탐험의 효율성을 위해, 온갖 판타지 마물을 요리해먹는 무척 건강한 만화. 좀 더 긴 평은 여기로.

* 조각가 (스콧 맥클라우드 /김마림 역 / 미메시스): 만화라는 양식의 문법과 구조에 대해 설명해서 명성을 얻은 작가가 자기 창작물을 내면 과연 그만큼 실력을 보여줄 것인가. 창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한 시각적 은유로 풀어내면 매우 선방할 수 있다. 악마와 계약하고 원하는 모든 것을 현실에 표현해내는 능력을 얻은 젊은 조각가.

* 여기서 (리처드 맥과이어 /홍유진 역 / 미메시스): 근래 서구권의 좋은 작품들을 공격적으로 출간해주는 훌륭한 출판사에서, 이것도 내줬다.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곳을 거쳐간 다양한 시간대의 여러 사람들의 삶을 비선형적으로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멋진 실험.

* 여자들의 집 (소피 골드스틴 /곽세라 역 | 팩토리나인): 제국의 임무를 수행하는 수녀들이 별에 도착해서 문명을 전파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 이해 너머의 자연에 대한 오만, 순진한 선의와 비겁하되 옳은 선택이 범벅된 SF스릴러가 간략화된 아르누보풍 디자인 속에 펼쳐진다.

* 불멸의 그대에게 (오이마 요시토키 / 대원): 처음에는 모호한 덩어리로 시작했고, 자신과 관여했다가 죽은 생명을 받아들여 모사하게 되는 존재, ‘불사.’ 그가 통과하는 인간사, 그를 노리는 초월적 존재, 그 모든 것 속에서 인간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습해나가는 속깊은 판타지물. 그만 좀 죽어나가…라는 외침이 절로 나온다.

특별언급:
* 본격 노조 일상활동 만화 [송곳] 완결: 손쉽게 진영 정의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섬세하고 정교한 문제제기를 유지. 독자에게 후련한 해피엔딩을 빙자한, 주인공의 삶에는 언해피엔딩.

* 해외 만화 고퀄 재출간: 펀홈, 보노보노, 이비쿠스 외, 오래전 출간되고 절판되었던 작품들이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 아시아 권역 만화의 입체적 소개서, [망가시아] 출간: 집필 중에 한 켠에서 자문 역할을 했던터라, 이 책이 얼마나 내용이 겹겹이 조사되고 잘 안배되었는지 일찌감치 감탄한 바 있다. 비록 제목 등, 추진한 만큼의 조율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지만.

** 미묘(좋긴 한데 뭔가 음…한 부분이 남은 작품들)

* 빙탕후루 (주호민, 장희/ 네이버): 첫 에피소드들의 전래기담 분위기의 거침없는 잔학함이 매력적이었건만, 금새 확 수그러들어버렸다. 안타깝다.

** 주목 신인

* 내 ID는 강남미인 (기맹기 / 네이버): 2016년에 데뷔한 작가/작품이지만, 2017년 분량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주목한터라 걍 신인 항목으로. 외모지상 현실에 편승하지도 조롱하지도 않으면서 적절히 비판과 대안을 찾아내는 속 깊은 캐릭터 구축이 강점.

** 홀오브쉐임

* 귀귀 작가의 ‘페미니스트 선언’ 홍보만화. 사건인 즉슨, 작가의 관련굿즈 상품 패키지를 내놓으면서 그 홍보 목적으로 올린 것. 어떤 기발한 풍자도 아니고, 위악적 반어법도 아니고, 솔직한 정론도 아니고, 그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전방위 모욕을 위한 모욕이 되어버린 평범한 민망함.

**올해의 만화계 사건

* 레진코믹스의 일처리 부실로 인한 연쇄 갈등: 근래 공격적 몸집불리기에 나섰던 부작용인지, 애초부터 누적된 관리 부실인지, 둘 다인지는 내부에서 더 잘 알 것이다. 웹소설 부문의 급작스런 폐업 과정에서 보여준 작가와 독자들에 대한 후속조치 부실. 원고납기일 배상 제도를 현실적으로 조율해내지 못하고 결국 곪다가 터지게 만든 것. 자신들이 도입한 MG라는 선인세 제도조차 제대로 이해시키지 않고 강행한 과신. 연말에는 불투명한 주먹구구 진행으로 해외수익 미정산 문제까지. 이런저런 주장과 소문은 모두 차치해도, 뚜렷이 드러난 여러 물의들은 업계 전반의 반면교사.

* 만화 불법 제공 사이트 문제 이슈화: 출판만화의 우마루, 웹툰의 밤토끼, 그리고 수많은 유사  불법 만화 서비스들이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정식 서비스의 수익 저하 문제가 산업적 이슈로 부각된 한 해다. 종종 막대한 수익을 가로채는 해당 서비스 운영자를 수사하여 법적 책임을 물릴, 효율적이고 일원화된 통로가 아직도 미비한 기이한 현실.

* 만화진흥원장 선임 과정 마찰, 일부 만화계 단체들의 권력갈등 노출: 이런 사건이 있었다. 일부 언론 기사에서 옳다구나 윤태호 만협 회장의 비리청탁 구도라는 편리한 시나리오에 끼워맞췄지만, 현실은 평범한 실용적 선택 vs 반대파 단체들의 무리한 흠집찾기의 대결에 가까웠다는 것이 나의 경험적 소견.

* 만협 산하 웹툰작가협회 활동개시. 웹툰 작가의 작업 양태와 권리 수요에 더 특화된 단체로서 필요하기에 출범. 웹툰이 특히 젊은 작가들의 주요 연재공간이 된 현실에서, 할 일이 무척 많다. 다행히도, 실제로 일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 VR, AR 만화의 사업화 실험이 본격화. 코믹스브이가 내놓은 360도 만화로 최호철 풍경화를 보는 순간, ‘잠재력’은 ‘현실적 시도’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왜 360도로 봐야만 이야기의 재미가 성립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는, 작품보다는 실험 정도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 와중에, 연말에 네이버에서 하일권의  [마주쳤다]를 통해 제대로 이야기의 일부가 된 사용자 현실 인터액션을 던졌다. 이쪽 방향으로 내년은 더욱 흥미로워질듯.

**내년 가장 시급할 이슈(즉, 한국 만화계에 대한 희망사항)

* 플랫폼 거품 꺼짐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대비. 모바일 시대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받들어지며 한껏 너도나도 진출한 ‘레드오션,’ 누가 봐도 과열된 상태임이 훤히 보이는 상태. 사업자도, 정책기획자도, 지원기관도, 무엇보다 작가들도, 플랫폼 거품 꺼짐이 최대한 무난하게 안정되도록 대비해둘 필요가 있다.

* 불법 만화서비스 사이트 운영자에게 법의 쓴 맛을. 일원화된(혹은 그에 준하는 효율성의) 소송 대처, 관련 사이버수사 착수 조건의 완화를 위한 제도 개편, 해외서버업체 수사협력 강제를 위한 법적 논리 구축 등, 여러 방향을 함께 갖춰서 이제는 좀 뿌리뽑읍시다. 완전히 뽑힐리는 없지만.

**올해의 명장면

* 마주쳤다 (하일권/ 네이버): 2화. 웹툰 안의 세계로 빨려들어간 독자가, 마침내 얼굴이 보이게 등장. 폰으로 찍은 자기 얼굴이 캐릭터 얼굴로 변환되어 등장하는 시퀀스. 안면 인식과 모서리 변환을 통한 캐릭터 아바타 생성 기술을 이렇게 열심히 스토리의 일부로 동원해내다니, 집요한 실험에 박수.

* 사가 (BKV, FS / 시공사): 출산의 고통과 욕설과 함께하는 첫 시작 장면. 왕년에 말이 똥 싸는 것으로 시작한 [해와 달]을 능가하는 뜬금없게 훌륭한 첫 발.

* 나빌레라 (HUN, 지민/ 다음): 에필로그 마지막 장면, 할아버지의 뒷모습. 꿈을 최선을 다해 추구해냈다는 것의 흔적.

 

**염장의 전당(아직 한국어판 미출간 화제작)

* 아이언맨: 아이언하트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스테파노 카셀리 / 마블): . 크리스웨어 노트북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엄밀한 의미의 만화 작품이 아니고, 여자의 집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한국에 동시발간되어버렸다. 그래서 거꾸로, 주류 장르적 선택으로 안착. 이미 꽤 알려졌듯,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코마에 빠지고, 16세 흑인 천재소녀 리리 윌리암스가 새 아이언맨 역할을 하는 이야기. 그런데 오히려 성별이나 인종의 함의에 짓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당당한 히어로를 해나가는 씩씩함이 매력적이다. 부디 MCU에서도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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