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오브 2015: capcold 세계만화대상 발표

!@#… 캡콜닷넷 연례행사, 올해의 베스트 2015년 시리즈. 그중 첫타는 늘 그렇듯 한 줌 사람들에게만 나름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capcold 세계만화대상. 세계라고 해놓고는 한국이라는 만화권역 기준에서만 뽑는 상.

작년 것을 그대로 복붙하는, 애매하면서도 간단한 선정기준.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완성도와 의미를 갖춘 작품들이지만, 굳이 한국작가에 한정되지 않고, 꼭 2015년에 나왔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도 대중성도 매니아적 깊이도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저 2015년의 만화, 만화 관련 사건들. 순위 같은 것은 계산하기 귀찮아서 그냥 무순. 왜 이 작품은 없는가 물어보신다면, 바로 작년에 이미 뽑았거나(예: 송곳) 까먹었거나 너무 연말에 출시되서 아직 못읽어봤거나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거나. 여기 뽑힌 작품이나 사건에 관여하신 분이라면, 알아서 뿌듯해하시면 됨. 아니면 말고.

 

**2015년의 작품들

(무순. 종이 단행본 발간시 출판사 표시, 온라인연재 만화는 가급적 온라인 지면도 따로 표시)

* 캐셔로 (팀 befar / 다음) – “지금 여기”에서 히어로란 무엇인지, 왜 사람은 사람을 돕는가를 직시하는 올해 최고의 슈퍼히어로물. 능력 발현 방식의 재미, 캐릭터 간 호흡, 사회적 현장감, 긍정적 메시지까지 단연 일품.

*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 (정은경 글, 하일권 그림 / 네이버 / 형설아이) – 리뷰 클릭. 실로 명랑하다. 이야기와 적절하게 녹아든 새로운 표현력도 역시 뛰어나다. 80말90초 명랑만화와 모험활극 애니메이션들의 장점들이 오롯이 계승되고, 적당한 가족적 감동도 보너스.

* 마당씨의 식탁 (홍연식 / 레진코믹스 / 우리나비) – 리뷰 클릭. 긍정적 부분도 부정적 부분도 함께 작용하기에 생기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무게감. 귀농과 가족.

* DP 개의 날 (김보통 / 레진코믹스, 한겨레 / 씨네북스) – 리뷰 클릭. 탈출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권력형 괴롭힘의 과정. 그런 착취가 난무하고도 어떻게든 굴러가고 그 씨앗을 퍼트리는 곳. 그런 군대의 모습에 대한 냉엄한 직시.

* Ho! (억수씨 / 네이버 / 거북이북스) – 리뷰 클릭. 편견을 넘어 개별적 사연으로서, 소통과 이해에 대한 다양한 노력의 변주와 섬세한 감정선을 과잉 없이 제대로 살려낸 연애물. 귀가 안 들리는 여주인공을 통해서.

* 모브싸이코100 (ONE / 학산문화사) – 리뷰 클릭. 같은 원작자의 [원펀맨]이 더 호쾌하지만, 먼치킨 주인공으로도 성장담을 만들고 어른다운 어른을 제시하는 등 속깊음의 재미가 뛰어난 초능력 영능력 배틀물.

* 바람소리 (한기남 / 올레마켓웹툰) – 심청전의 단단한 액션스릴러 재해석, 이두호풍의 바짓저고리 해학 계승, 탁월한 오락성. 거침없는 전개와 호쾌한 마무리.

* 만화전쟁 (주호민 / 피키툰) – 유쾌하고 긴장감 넘치는(?) 남북 스파이 스릴러이자 웹툰 시대의 만화창작 탐구이자 사회풍자이자 나름 연애물. 더 널리 평가될 가치가 넘친다.

* 엄마들 (마영신 / 휴머니스트) – 리뷰 클릭. 노동하고 연애하고 친구들과 놀고 싸우고 타인도 챙기고 호구잡히기도 하고 사는 사람인데, 엄마이기도 한 오늘날 이곳 중년 여성들에 대한 관찰.

* 재앙은 미묘하게 (안성호 / 네이버 / 서울문화사) – 리뷰 클릭. 소소한 악의가 삽시간에 집단적 파국으로 비화되는 과정. 층간소음이라는 소소하되 강력하게 일상적인 소재의 승리.

* 단지 (단지 / 레진코믹스) – 일상적 차별과 폭력은 가족에서부터. 극적 과장의 감정 몰입에 의존하기보다는, 건조한 솔직함의 힘을 보여주며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그려내었다.

* SBS뉴스웹툰 (임찬종, 임태우, 해마 글, 선우훈 그림 / SBS) – 레트로 픽셀 미학으로 그려낸, 섬세한 뉴스 사안 해설. 리스트에서 삭제된(수위가 매우 쎘다) 작품인 ‘해적들의 본격노동웹툰’이 특히 백미.

 

** 미묘(좋긴 한데 뭔가 음…한 부분이 남은 작품들)

* 무빙 (강풀 / 다음) – 갈등의 페이스 배분 같은 기술적 아쉬움과 별도로, 내 감상 기준에서는 핵심적인 매력포인트들이 각각 다른 작품에 좀 밀린 감이 있다. 사회파 슈퍼히어로로는 [캐셔로], 남북 스릴러로는 [만화전쟁], 바람직한 어른의 역할로는 [모브싸이코100].

* 단결툰 (반지수 / 오늘보다) – 각 현장의 노동 상황과 조직화의 필요성을 취재하여 만화로 풀어내는 매우 좋은 기획인데, 만화로서 강력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에서 아쉬움이 있다. [내가 살던 용산]이나 [섬과 섬을 잇다]에서 보았듯, 사안의 핵심단면을 더 극적으로 풀어내는 접근이 필요.

 

** 주목 신인

* 오민혁 (오민혁단편선) – 기막힌 인간사와 그 속에서 농축되는 감정을 단편으로 압축하는 실력이 상당함.

 

** 홀오브쉐임

*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홍보만화: 근거없는 선동으로 가득하고 표현력도 멍청한, 삐라. 저자를 비밀에 붙이는 무리한 국정교과서 사업의 홍보만화답게, 저자가 비밀(추측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홍보만화: 시대착오, 분위기착오, 독자수준착오. 이미 너무 까여서 보탤 말이 없다.

 

**올해의 만화계 사건

– 만화가협회가 주도한 표준계약서 완성. 만화 단체나 지원기관의 만화 노동분쟁 중재라는 과제의 진전.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까지 거친 최초의 공인 표준계약서 완성. 창작자 노동권을 위한 중요한 진일보. 레진코믹스의 미니멈개런티 제도 논란이라든지 각종 계약 관련 사안이 넘친 한 해에, 중요한 행보.

– 만화 작품 속 크고 작은 여성혐오 문제 부각. [뷰티풀 군바리]를 필두로 많은 꼴페미 vs 여혐 상호 낙인찍기가 벌어졌고, 넘쳐나는 일상화된 여혐 표현에 대한 되돌아보기를 계기로 기준에 대한 논쟁, 반대의사 표현의 적절한 수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약간씩 싹이 틈.

– 웹툰 서비스 업체의 난립 계속. 그 와중에 신디케이트 방식까지도 등장. 버블 속에 난립한 웹툰 사업자들의 필연적인 헤쳐모여가 벌어지기는 했는데, 더 큰 정리국면이 올 수도.

– [마음의 소리] 연재 1천회 돌파. 작가 개인의 근면함 너머, 웹툰이라는 양식의 탄탄한 주류 문화화 과정에 대한 일종의 금자탑.

그리고 미미한 사건: c모의 [만화가 담아내는 세상] 출간. 학생도서관저널에 연재한 만화추천글들을 바탕으로 엮고 고치고 뭐 그런 책. 과분한 상도 탐.

 

**내년 가장 시급할 이슈(즉, 한국 만화계에 대한 희망사항)

노동량 조사 연구: 이왕 계약조건 등이 올해 꽤 수면 위로 올라온 김에, 박차를 가합시다. 최저고료 산출, 적정 노동시간 제한 등 온갖 노동조건 지정과 협상을 위한 기초 자료.

웹툰 플랫폼사업 거품 터짐에 대한 연착륙 준비: 수익성의 보루인 에로물도 나름 포화상태가 올 것이고 거품은 이르게나 늦게나 결국 터질텐데, 그 때 작가/작품들이 연착륙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

편집부의 표현수위/방향 조절에 대한 정당 관행 수립: [낚시신공]의 갑툭튀 고어에 따른 휴재, [결계녀]의 넘치는 판치라를 속바지로 수정한 건, 여혐만발 맥심표지를 패러디 소재 삼았다가 인쇄 직전 회수된 한겨레만평 사건. 공통점은 독자들에게 뻔히 문제될 표현이 애초에 편집부를 그냥 통과했고, 한 발 늦게 작가와 제대로 협의했는지 불명확하게 거칠게 수습된 것. 더 나은 조율 관행 개발이 필수.

 

**올해의 명장면

장도리. 5월 11일 어린이 잔혹동화편. 문제의 근원에 닿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통찰을 던질 때 가장 빛나는 만화에서 올린 또 한번의 쾌거.

캐셔로. “그럼 짝사랑이네”. 활동의 의미에 관해, 묵직한 뭉클함을 만드는 대목. 대화의 맥락을 설명하면 스포일러라서 생략.

원펀맨.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그리고 10km 달리기. 이걸 매일한다!” 진지한 개그의 올해 최고봉.

 

**염장의 전당(아직 한국어판 미출간 화제작)

The Sculptor (Scott McCloud / First Second). 만화라는 표현양식 탐구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술의 추구 과정에 대한 성찰을 현대적 환상 우화로 풀어낸 굵직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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