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바보짓은 있다 [팝툰 38호]

!@#… 바보야매질에 무척 관심이 많은 블로그 주인장 성향상, 한번쯤 꺼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 하인라인옹 왈, “절대 인류의 멍청함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우연과 바보짓은 있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경제가 어떤 이치에 의해서 굴러가는지 알아야 돈을 벌 수 있고, 정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해야 줄을 설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이치에 의해서 좌우되는지 알아야 연애를 할 수 있고, 여론이 움직이는 패턴을 알아야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도저히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기 마련이고, 설상가상으로 인류의 지능이란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좀 많이 낮다. 게다가 실용적인 의미에서 어느 정도 이상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인만큼, 결국 사람들은 “이 정도면 충분히 이치를 파악했다”고 만족하는 일종의 선을 두게 된다.

이것은 당연히 실제 이치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서 결정이 되곤 하는데, 문제는 그 두 수준의 차이를 종종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해했다고 만족하는 선은 기본적으로 실제 이치의 단순화된 모델의 형식을 지닌다. 물론 모델이라는 것은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약점이 있는데, 바로 논리적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 뚜렷한 영향관계를 도식화하고 싶어 한다. 만약 결과는 있는데 원인은 모르겠다면, 자신의 사고수준 안에서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원인을 발명해서라도 빈 칸을 채우고야 만다. 가외변인의 가능성에 대한 유연함,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 혹은 굳건하게 믿고 있는 바들이 사실 구라일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융통성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원시사회의 어떤 이들은 번개가 치면 신의 분노라는 원인을 가정했고, 현대사회의 어떤 이들은 줄기세포 사기사건에서 미국 유태계의 음모를 읽어내고, 오늘날 갑갑한 한국사회의 정치현실에서 우익세력의 숨겨진 거대 전략을 찾고자 한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라는 개그만화의 주인공, 데스메탈 밴드의 카리스마적 리더 요한 크라우저 2세를 둘러싼 팬들의 인식이 그런 식이다. 요란한 악마적 무대분장을 지운 생활인으로서의 그는 사실 시부야계 슈가팝을 지향하는 건전하고 소심한 청년이며, 그가 요한 크라우저 2세로서 보여주는 각종 소동과 퍼포먼스의 상당 부분은 두 개의 페르소나가 부딪히면서 나오는 우발적인 사고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팬들은 그 속에서 그들이 동경하는 스타의 악마적 동기를 읽어내고야 만다. 그래야 그 상황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고성방가를 단속하러온 경찰 아저씨에게 기타를 반납하려다가 넘어진 것을 경찰을 죽이려고 기타로 내려쳤다고 환호하는 것은 양반이다. 도쿄타워를 강간해서 조명이 밝아온 것이고, 그 결과 롯폰기 힐즈를 낳았다는 식의 전설까지 진행되고 나면, 더 이상 수습할 길이 없다. 모든 것은 계획된 것이지, 그저 의미없는 바보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결과는 그가 벌인 행위의 결과지, 우연이란 없다. 팬들은 바보와 우연을 인정하지 않기에 요한 크라우저 2세가 지배하는 악마적 세상이 이해 가능해진다. 비록 실제 세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이런 패턴의 훌륭한 개그만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한바탕 웃은 후 현실 세계의 자신들을 반추하면 좋겠지만, 별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듯 하다. 명료한 마음 속의 모델에 맞추어 세상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직시하고 싶다면, 넘겨짚지 말고 바보와 우연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하고 커다란 이슈라고 해서, 치밀하고 현명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법은 없다. 한반도 대운하 마냥, 그냥 강렬한 의지의 멍청한 결단으로 움직인 것일 수 있다. 특정 독재자의 통치 하에 경제가 성장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의 추진력에 의한 필연이라기보다 우연히 세계적 상황의 여러 변수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 물론 우연으로 보인 것이 좀 더 나중에 더 많은 것을 세부적으로 이해하면서 필연으로 판명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범위 내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을 무시하는 것과 그런 부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명심하자. 우연과 바보짓이란 정말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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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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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우연과 바보짓은 있다 [팝툰 38호]

Comments


  1. 오늘의 포스팅은 좀 씁쓸한 느낌이 나는군요.

    하기사 서프 국제방에 가셔서 크레테 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시면 저를 ‘미제의 간첩’이라거나 ‘노시민의 좌장’이란 타이틀를 씌워가며 음모론에 열을 띄우는 분들이 계신 걸 보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떤 식으로던 ‘논리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무리들이 제법 숫자가 되기는 되나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잘난 척하고 위에 댓글을 남겨 놓기는 했지만, 저 논리에서 저 역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솔직이 장담을 못하겠네요. 의식을 했던 못했던, 저 역시 제가 보고 싶은 것과 말하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만 추구하는 버릇이 있는데 말이죠.

  3. !@#… Crete님/ 평소에 씁쓸한 이야기들을 할 때도 삼키기 약간 더 편하게 해주는 사탕 코팅이 이번에는 약간 너무 얇았나 봅니다 OTL;;; 여튼 어차피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으로 판단을 하기 마련이지만(당연히 이 글만 해도 저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그 판단에 맞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채워넣느냐 아니면 그런 부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대로 비워두느냐에 따라서 그 뒤 얼마나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곤 하죠.

  4. 이거 좀 자기 자랑같은데 (맞습니다.) 39~40호 부터 팝툰의 제3기 독자평가단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지만, 앞으로도 낙호님 칼럼, 더 뚫어지게 바라보게 될거 같네요.

  5. !@#… Skyjet님/ 우선, 독자평가단 선정되신 것 축하합니다. 다만, 만화잡지의 글 칼럼은 회접시의 당근으로 깎은 꽃장식 같은 존재입니다. 훌륭한 퀄리티인 경우 요리 전체를 돋보이게 하고 품격을 올려주지만, 그렇다고 요리 품평할 때 꽃을 잘 깎았다고 찬사를 던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