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망언자들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담론전략의 토막

!@#… 언젠가는 제대로 정리할, 명랑사회를 위한 담론전략에 관한 이야기 중 또다른 작은 토막. 영향력 있는 연쇄망언자™들의 괴상한 세계관에 맞서는 방법에 대하여 약간의 인트로.

!@#… 토막 하나(이번엔 하나 밖에 없지만). 누구나 말실수를 할 수는 있다. 자기 원래 의견을 잊고 이상한 주장을 내밀수도 있고, 찌질하게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겠답시고 쌩쑈를 벌이다가 무덤을 팔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회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망언을 더 큰 망언으로 돌려막기를 한다든지, 이전 삽질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다음 삽질로 넘어간다든지 하며 점점 더 담론적 막장의 나락으로 투신하는 이들이 은근히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연쇄망언자™들의 진짜 문제는, 아무리 많은 이들이 그들의 착란에 가까운 삽질을 비웃고 비난해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의 머리 속에서 ‘박해받는 진리’라는 자뻑성 신화를 완성해줄 뿐.

사람은 어차피 유의미한 몇몇 인간들을 바탕으로 세상의 시각을 재구성한다. 그것의 미니멈이 몇 명일지는 심리학 실험을 해봐야 알테지만, 그냥 드는 생각으로는… 아마 3명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 곁에 인간적으로 가깝게 있어주는 자, 자신이 기여하고 싶은 길 위를 걷는 자,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배워줄 자. 인격적 긍정, 작업의 긍정, 그리고 생각의 재생산이라는 3가지의 직관적인 판단 기준을 채워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배우자, 동지, 빠돌순이 되겠다(뭐 좀 더 콤팩트한 경우라면 이 기능들을 모두 한 사람이 구현할 수도 있겠지). 즉, 人의 장막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곤 하는데, 그 장막 무지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여튼 이 원형을 적용해보면, 전두환 조갑제 전여옥 강만수 변희재 대통령각하 환빠 황빠 아하에너지 골수주사파 7막7장 (헉헉) 등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불가사의하게 세상과 단절된 상황인식이나 자기논리 방어가 조금은 이해가 갈지도.

!@#… 진짜 난감한 점은, 미니멈 측근으로 만들어진 자뻑장막™일수록 부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장막이 많은 이들로 이루어질수록 서로 입장이 다양할 수 있고, 결국 틈새가 생길 여지도 크다. 반대로 미니멈 편성이라면, 그 중 하나가 궁극적 배신을 때리지 않는 한 견고하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정보의 홍수를 이루다보면 장막의 틈새로 무언가 흘러들어갈까? 전혀. 정보가 많다는 것은, 그 중 하필이면 자신을 지지하는 정보도 아무리 비율이 미미하다 할지라도 절대량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만 골라서 취하면 땡이다. 백만인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를 하면 장막이 부서질까?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잠시 굴복할 수는 있겠지만, 장막은 별개의 문제다.

미니멀 자뻑장막™을 부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방법은, 장막의 안과 밖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장막 밖에서 세상이 움직이고, 장막 안은 일종의 우리, 새장이 되도록 만드는 것 말이다. 장막 안에서 혼자 외치는 소리가 세상에 별 의미도 효력도 없게 만들면, 장막 밖으로 어쩔 수 없이 나와보거나 아니면 장막 안에서 혼자 외로이 스러질 것이다. 담론꾼이라면, 관심을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당하다. 뭔가 취급을 해주기는 해줘야 한다면, 나쁜놈 또는 적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광대 취급하여 가볍게 웃어주는 편이 낫다. 심지어 장막 안의 존재가 결정권자라고 해도, 자꾸 듣보잡 취급하고 바깥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지할 정도가 되면 장막은 낮아지게 된다 (물론 이것은 종종, 제도화된 방식을 통한 뻘타 정책 브레이크 걸기와는 또다른 프로세스다).

!@#…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A) 물론 그들의 헛질을 개무시하는 것이고, B) 그들이 제기하는 것들이 가볍게 묻힐 정도로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진짜 담론, 토론들을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A도 가히 쉽지는 않지만, B는 무려 근성을 필요로 한다. 보통 그들은 (대체로 반복적인 구린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참신한 착란으로 인한) 강렬한 임팩트 그리고 양적으로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정면으로 맞서서 사사건건 맞받아쳐주면서 대결구도가 되는 순간, A목표가 어긋난다.

사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기억의 체계적 집적이다. 같은 논지가 반복될 때, “**를 보시오(링크)” 라고 단 한 줄 던져놓으면 논쟁 끝, 해버릴 수 있는 것 말이다. 뻘타를 열심히 주장한 사람이 적당히 바보되고, 집적된 전체 속에서 같이 토론함으로써 논의는 발전한다. 당신들은 쳇바퀴에 망언투성이지만, 우리는(즉 나머지 세상은) 전진한다, 라는 느낌이랄까.

!@#… 상대방의 자뻑장막™을 무력화시키고 싶다면, 정당이든 실무자 그룹이든 게시판의 개인들이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 패턴을 필요로 한다. 특히 소위 진보성향의 언론(여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저널리즘 기능을 하고 싶어하는 블로거들도 당연히 포함)이 자기 역할을 해내고 싶다면 반드시 고려해야할 전제다. 뭐 더 세밀한 이야기는 나중에 언젠가 더 생각이 깔끔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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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연쇄망언자들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담론전략의 토막

Comments


  1. !@#… 미고자라드님/ 망언은 비웃어주며 극복하고, 망언의 결과 나타나는 정책적 피해는 제도적으로 조져야죠(예를 들어, 장관 경질이라든지).

    시바우치님/ 헉! 그 장막이 무너지면 혹시 액체가 되어 흘러내린다든지…;;; (“컵 속의 ***장관”)

  2. 잘 읽었습니다. ‘미니멈 자뻑장막’이 생기면 정보도 얼마든지 취사선택이 가능하겠죠. 어려운 건 자신의 신념이 자뻑인지 합리적 의견인지 스스로 판단하는게 쉽지 않은 점이라고 봅니다. 해당 사안이나 조직의 중요성의 클 수록 외부에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테니까요. 저널리즘이 이를 넘어서려면 나름 내공이 많이 쌓여야 할텐데 말이죠.

  3. !@#… 지나가던이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과학적 마인드의 교육은 한국에서 좀처럼 강조된 바가 없죠. 덕분에 장막 쌓기는 한층 쉬워지고.

  4. ‘자뻑장막’에 강력한 보호 전류까지 흐르게 하는 판이라 영 깨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대응하는 사람들도 보호 장막이 있어야할 것 같아요.

    http://nooegoch.net/142
    이렇게요.^^

  5. !@#… nooe님/ 그들은 자신을 장막으로 둘러치는 것이고, 우리는 이야기하신 그런 식으로 유연하게 힘을 합쳐가면서 계속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