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상 여기저기, 소위 미수다 루저녀 사건으로 좀 떠들썩하다. 평가 받는 것의 억울함이나 마녀사냥의 위험성, 남녀문제 뭐 그런 요소들은 다른 분들이 열심히 신경써주시니 대충 건너뛰고, 결국 여기는 capcold식 관심사로 한 마디 남겨둔다.
!@#… 일어난 사건 자체만 놓고 보자면, “미녀들의 수다”라는 제목부터 심히 외모중심 컨셉을 잔뜩 강조한 TV프로가, 개념 외국미녀와 대비되는 무개념 국내녀 역할로 고용된 이들이 외모중심의 무개념 발언을 뱉는 모습을 자막으로 강조까지 해가며 집중 부각시키는 식으로 제작해서 지상파 오락프로로 방영한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막장 주말 프라임타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5명의 파트너와 바람을 피고 부모를 살해하고 금단의 근친상간과 쌍욕이 난무해서 아이들이 보고 말투를 따라한다 치자. 시청자들이 그 주인공놈을 찢어죽이자고 외친다!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 이상함을 느끼게 해주는 괴리는 무엇일까. 약간만 생각해보면, 단지 ‘가상의 캐릭터’라서 그런 것은 아니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을 문제삼는 것, 세력/집단을 문제삼는 것, 판을 문제삼는 것 사이에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후련하다. 공격하는 대상이 일개인이기에 매우 구체적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지니고 있는 여러 속성들을 잔뜩 발굴해서 그 중 마음에 안드는 부분을 끄집어내기가 무척 편하고(예; 못생겼다!), 상대를 거꾸러트릴 수 있을 것 같은 효능감이 쩐다. 그렇기에 당장의 주목을 끌고 사람들을 이슈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담론 전략에서 흔한 일이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거기서 끝이라는 것. 당초의 이슈는 매우 모호한 수준에서 적당히 일반화되어 묻혀버리고, 중간의 디테일은 모두 날아간다. 무엇보다 공격의 결과로 이후에 대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과제에서 심히 영양가가 없다. 그 개인이 찌그러지고, 다들 손 털고, 끝.
!@#… 세력/집단을 문제삼는 것은 사고를 친 바로 그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어떤 ‘집단’에서 문제를 찾는 것이다. 공격이 성공적일 경우 그 집단의 향후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건설적이다. 그리고 찌질하게 우루루 몰려가서 하나의 인격체를 공격하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일정 부분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공격 상대가 하나의 집단이기 때문에, 공격을 하는 이들도 하나의 집단으로 자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서, 진영 의식을 만들어내기에 편리하다. 반면, 소속의 범위를 정해야 하는 만큼, 보편적 공감을 사기도 좀 더 어렵다. 무엇보다, 비난하는 그 그룹에 포함되어버린 이들과 다툼이 생겨난다. 그 다툼이 개싸움으로 번지는 경우, 담론은 공회전한다(예: 어떤 이슈가 ‘남녀문제’로 비화된다든지).
!@#… ‘판’을 문제삼는 것은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만드는 관계에서 나오는 효과들을 짚어내는 것이다. 한 눈에 봐도 단점은 명확하다. 우선 거시적 시야로 조망하려면 고려해야할 자료도 많고 머리도 복잡해진다. 무언가를 당장 눈 앞에서 거꾸러트리는 것이 아니라서 후련하지도 않다. 공감해서 불타오르는 사람들도 훨씬 적다. 즉 개인적 쾌감 차원에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담론 자체에 대해서도 약점이 있는데, 자칫하면 판의 문제로만 돌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개별 행위자들의 책임은 대충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개별 행위자’들과 ‘그들이 작용하는 규칙’이라는 두가지가 모여야 판이 생겨나는 것인데, 종종 후자만 남기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판을 문제삼는 것의 장점은, 실제로 판을 뜯어고쳐야 향후에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수다 사건에서 목표가 단지 이**이라는 개인을 닥치게 만드는 것이라면, 개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혹은 향후 그런 부류의 출연자들이 약간 용어 선정을 조심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집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다소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뻔한 외모지상주의와 이분법적 세계관, 천박한 열등감 자극을 통한 노이즈성 인기 확보 관행, 그런 소소한 것에 에너지 낭비하느라 훨씬 실질적 영향력이 큰 다른 공공적 문제들에 대한 무관심을 낳는 것, 이런 좀 더 큰 문제들이 줄어들었으면 한다면 좀 더 큰 공력을 투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아, 애초에 정말로 그런 것들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많은 뇌력이 소모되기에, 누구나 그 정도쯤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지만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판’이기에 미수다 같은 프로그램 포맷이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방영되며 화제성과 일정한 인기를 끌고 있는가. 어떤 부분이 어긋난 판이기에 “180이하 남자는 루저”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단순한 조롱거리가 아니라 진지한 분노거리로 소비되고 있는가. 좀 더 나아가면 적당히 대등한 관계의 남녀 연애와 가족생활을 방해하는 사회문화와 복지제도(!)까지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도 있겠지. 동원능력이 가장 떨어지기 때문에 담론전략 측면에서 꽤 곤란한 점이 있지만, 규범론적으로나마 반드시 지향해 마땅한 지점이다. 그것이 바로, ‘정론’의 영역이다. 모든 이들이 정론을 만들어야할 필요는 없다(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정론을 만드는 것이 자신이 선택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이들만이라도, 정신줄 놓지 말자.
!@#… 이 문장까지 창을 닫지 않고 성실하게 도달하셨다면, 위의 이야기에서 루저녀, 미수다, 외모지상 등의 키워드들을 2MB, H당, 경제공포증 등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보시길.
—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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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저급한 상업 미디어의 흥행 미끼였을 뿐…
시의 적절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하루 앞서 노출되어 화제를 비껴나버렸다고 해야 할까. 사이버 자경단, 어디까지가 정의일까 이글에서 그만은 이렇게 설명했다. 모종의 잘못을 한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에 대해 사이버상에서 신원을 밝혀내고 모욕과 집단적인 언어 폭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하는 모습으로 연상되는 사이버 자경단은 이제 거의 ‘개똥녀 사건’의 아류작 처럼 들린다. 하지만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식으로 반응하게 마련이고 나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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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그 프로 자체를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는 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미녀들이 나와서 그러나? ^^; http://capcold.net/blog/4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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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2. : 스펙사회와 신나는 마녀사냥…
글을 썼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되서 다시 한번 써본다. 각 문단 부피는 세줄 정도로 제한해본다. 별 의미는 없고, 짧게 쓰는 연습 혹은 트위터식 놀이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1. 루저녀 현상은 우리사회의 미성숙을 반영한다. 그 미성숙한 사회는 표상이 실질을 파괴한, 양자의 긴장이 해체된 사회다. 그 사회는 “얼굴 보단 마음”에 대해 즉각적인 조소 내지는 무관심이 완전히 승리한 사회다. “마음 보다는 얼굴” “성격보다는 외모”가 먼저…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2009베스트: 캡콜닷컴
[…] 10] 떡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관한 단상 2009. 11. 13. 9:00 am 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 2009. 09. 21. 1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