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뭔가 개판으로 돌아가는 어느 화창한 3월 중순,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담론과 소통에 관한 몇가지 생각의 토막들. 4개의 질문, capcold가 내리는 4개의 잠정적 대답(해답이라는 보장은 물론 없고). 분명히 아직 토막에 불과한데 쓸데없이 길어졌다.
!@#… 생각의 토막 하나. 새 정부는 뭘 믿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지 궁금한가. 실력은 쥐뿔도 없고 나름대로 자기들 딴에는 좋은 사람 뽑는다고 뽑았더니 조낸 야매꾼들이고 게다가 세계 경제도 무척 도와주지 않는데도, 사기 저하 그딴 것 엄따. 대답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그들은, 분명히 세상이 자신들이 잘 하고 있다 평가한다고 믿으니까.”
당장 우리 자신들을 한번 보자. 올블이나 이오지마같은 곳을 열심히 둘러보다 보면 마치 이명박정부가 모든 이들에게 공분을 사고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엄청난 심판을 받아 쪽박찰 것 같지 않나? 그런데 사실 리서치 기관에서 조사하면 한나라당 지지가 여전히 50%에서 넘실넘실. 한마디로 착시다. 세상도 그리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그렇다는 확신이 되고, 한번 마음이 정해지면 반대 자료나 증거따위는 더 이상 아무 효력이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수많은 자료와 주장들이 있고, 그 가운데 자신을 지지하는 것만 취사선택할 수 있으니까(Sunstein의 ‘Republic.com’ 참조). 자신이 별로 대단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네들도 그러는데, 스스로를 킹왕짱으로 생각하는 그 분들이 오죽하겠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자뻑이 진행되기 위한 필수요소는 바로 쌍방소통의 단절이다(청와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어떤지, 새 홈페이지가 가관이다). 즉 자발적 취사선택의 폭은 넓거나 최소한 넓어 보이고, 실제 소통은 단절될 때 사회적 담론은 가장 효과적으로 정체되고 왜곡된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도 한국의 소위 메이저 언론사들이 이 방향으로 가고 싶어 난리인 것은 무척 걱정스러운 일이다.
!@#… 생각의 토막 둘. 대운하를 뭘 믿고 그리 추진하는지 궁금한가. 부동산 개발에 대한 기대니 하는 그런 단기적 실익 말고, 뭘 믿고 정말로 대운하가 결국 지.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밀어붙이는가 하는 질문. 대답은…
“끝까지 밀어붙이면,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디워’를 떠올리면 된다. 영화로서는 내용이고 제작방식이고 모든 차원에서 재앙급 퀄리티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일단 대세를 타니까 여차저차 무려 800만이봤다. 보기만 했나? 그 중 많은 이들이 표를 샀던 자신들의 인격을 보호하고 싶어서라도, 열광적으로 지지했지. 심지어 그 중에는 괴수영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무리해서 그놈의 애국 논리까지 끌어들여가면서 간증을 한 사람들이 한 둘이었던가. 마찬가지다. 운하로서 경제성이고 환경 평가고 모두 재앙급 판정을 받아도, 우선 만들어서 간판 걸고 각종 효능에 대해서 한번 화끈하게 대세로 만들면 나머지는 저절로 움직인다. 그런 사태를 막아내는 방법? 간단하다. 애초에 못만들게 막아야지. 그걸 위한 국회고, 그걸 해낼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선거 아닌가. “대운하는 우려스럽지만, 마땅히 다른 인재도 안보이니까 총선에서 그나마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도록 한나라당을 찍…” 그만. 애덜은 가라. 뒷동산에서 뛰어놀든 하렴.
!@#… 생각의 토막 셋. 왜 상황은 충분히 개판이고 분명히 올바른 비판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과반수의 인간들에게 씨알도 안먹히는지 궁금한가. 아니 안먹힐 뿐만 아니라, 버럭 화내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 말이 안통하는거야! 대답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믿기를 원한다.”
당신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 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십중팔구 돌아올 첫번째 반응은 “아하 내가 틀렸군”이 아니라, “뭐야 이 씨발놈아”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상황을 만든 것은 갖은 변명을 들어가면서 실제로 이명박 정부를 만들어준 평범한 너와 나, 국민들이다. 30%의 지지투표와 40%의 방조자, 도합 70% 아닌가. 그래서 나온 소위 ‘국개론'(국민개새끼론 –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이 개새끼다, 뭐 그런 이야기)에 대한 반응들이 과연 어떻던가. 심지어 나머지 30%의 내부결속용으로서도 애매한 것이, 그 중에서도 상당수는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그런 비판에 거부감을 느끼니까.
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고, 비판을 바탕으로 발전까지 할 정도가 되려면 엄청난 체계적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욕으로 들리는 이야기에서 비판의 지점들을 걸러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신적 능력이 요구된다. 나쁜 이야기나 격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싫어하고, 중립적이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잘못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을 편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기 때문이다. 작금의 모든 어려움에, 당신의 행위가 아닌 다른 이유를 부여해준다. 노무현 때문이고, 시끄러운 노조 때문이고, 지나간 과거를 피곤하게 다시 캐내려는 것들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소위 진보적 입장을 표방하는 언론들을 보면 맨날 내가 잘못하는 것 같다.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내 잘못이고, 이상한 머저리를 선거에서 뽑아준 것도 내 잘못이고, 노동자 주제에 노조를 적대시하는 것도 내 잘못이고… 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한가. 물론 최상의 방법은 끝없는 계몽으로 의식을 개혁해서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살도록 하는, 유토피아적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정반대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그런 사고방식을 그대로 감안하고, 보듬어주면서 유도하는 것. 당신은 잘 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왕 더 잘하려면 이렇게 해보자. 물론 그런 접근은 실행하기 참 어렵다 – 특히 별로 잘 하고 있는게 없는 경우에는.
!@#… 생각의 토막 넷. 나름대로 권언 관계의 합리성을 주장한 노무현 정부는 심심하면 언론하고 싸우자임마를 했는데, 그냥 닥치고 언론탄압할 것 같은 이미지의 이명박 정부는 왜 (아직) 사고를 안치고 있나? 안그래도 실수 많은 정권이, 과연 이렇게 모든 오해™들이 날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상황을 좌시할 수 있는건가. 물론 최시중 방통위원장 지목 같은 악행은 있지만, 싸우지 않다니? 대답은…
“떡밥으로 배터지게 만드는 작전에 재미들려서.”
우선 이 이야기로 들어가려면 미디어스핀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자. 원래 미디어스핀은 미디어를 통한 적극적 PR작전으로 만들어내는 여론 조작 일반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꽤 광범위한 용어다. 하지만 전에도 짧게 언급했듯, 그 중 capcold가 가장 핵심으로 지목하는 방식은 이슈들을 정신없게 펑펑 터트려서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어 정작 중요한 이슈는 슬쩍 묻어가게 하는 것, 즉 담론의 원심분리기 작전이다 (주: 다시 보니 이전 글에서 마치 그것이 미디어스핀의 ‘정의’인 듯 서술하는 실수를 범해서 약간 수정 들어갔음). 이것은 그냥 물타기 작전과도 약간 달라서, 각각의 ‘물’도 사실 따지고보면 꽤 중요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여하튼 이 작전이 왜 중요하냐 하면, 수많은 여론 조작 방식 가운데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주입이 아니라 ‘spin’을 한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드러나니까.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미디어스핀을 위해서 필요한 첫번째는 바로 목적에 부합하는 미디어 메시지로 온통 정신없게 도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고작’ 조중동문S에 명비어천가, 대운하 만세 프로파간다 기사 몇 개 올려봐야 다른 수많은 제도권 비제도권 미디어에서 반대논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후자가 더 강한 설득력으로 담론을 지배할 수도 있고. 언론을 진짜로 확실하게 탄압할 수 있는 환경 – 예를 들어 박정희 전두환 – 이 아니라면, 그런 식의 여론 지배는 물량 투입에 따라서는 상당부분 목표를 이룰 수는 있어도 완전히 이루지는 못한다. 혹은 사건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포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의도대로 따라와주면 좋아라 하겠지만, 아무리 몰려가기 좋아하는 한국이라도 그건 쉽지 않다. 심지어 황우석 사기사건 당시에도 그 굳건한 애국박애과학 프레임이 PD수첩이 뿌린 작은 균열을 결국은 막아내지 못했듯 말이다. 선별적 보도나 각종 말돌리기 같은 세부 기법들도 이미 한번 보장되어버린 언론의 자유 앞에서는 완벽한 위세를 떨치기 힘들다.
하지만 각종 이슈로 융단폭격을 해버리면, 언론’탄압’ 따위 하지 않고도 원튼 말든 자발적으로 언론들이 참여할 수 밖에 없는 멍청이 레이스가 되어버린다. 언론 자유가 얼마나 폭넓고 다양성이 대단하든, 절대적인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 우선 이슈가 넘쳐나면, 언론사 입장에서는 각 이슈를 어느 정도 이상 다루어주지 않을 수 없다. 다들 다루고 있는 어떤 이슈를 빼놓았다가 독자들에게 “취재력 부족한 무능한 언론”으로 낙인찍히면 큰일이니까. 실제로 여론을 만들어내는 독자들은 그럼 어떤가. 사람들의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다. 오늘 중요한 새 이슈가 7개 나왔으면 모종의 논리판단에 의해서 어제 기억해두고 있던 7개 중 상당수가 망각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논리판단은 과부하가 걸릴수록 오류율도 높아져서, 잊지말아야 할 것을 그냥 밀어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미 망각 내지 무관심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서 의견을 내놓아야 할 경우, 다시 그 이슈를 제대로 상기해내고 현재의 관련정보들을 인출해서 합리적 판단을 내릴까? 아니면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 최소한 의견을 보류하기라도 할까? 에이. 그냥 모르는 상태 그대로 조건반사적으로 자신들의 단축형 사고회로에 의존하여 의견을 내놓는다(이 쪽으로 더 관심있는 분들은 heuristics라는 용어와 친해져야 할꺼다). 그런데 하필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단축사고의 원형들이란게 발전주의나 천박자본주의 같은 것들이고, 지금 미디어스핀을 실행하는 세력들은 그런 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사회와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여론을 멍청하게 만들수록 득을 본다는 말이다. 언론이고 여론이고 간에 떡밥으로 배부르면 중요한 건더기가 등장해도 헬렐레라는 말.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시절부터 이미 떡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이 정도면 야매정권은 앞으로 10년은 더 싸울 수 있어!” ㅎㄷㄷ.
!@#…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 나오는 4가지 대답의 명제들은 약간만 가공하면 capcold와 이 블로그에도 아마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도. (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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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정책안 쌩쑈 연재 속에서 정신줄을 놓지 말자
[…] 담론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려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업계 용어로 ‘미디어 스핀‘이라고 부르는 짓거리다짓거리 중 하나다(BGM 클릭). 제 정신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