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읽어내기 위한 ‘교통 정리’를 강조하는 이유

!@#… 간혹 몇몇 분들이 캡콜닷넷의 포스팅 중 시사성/골치성 글들에 담긴 ‘상황 정리능력’에 대해서 (과분하게) 칭찬을 해주시곤 하는데, 한번쯤 왜 capcold가 상황을 읽어내는 방식을 정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간단히 설명해두는 것이 좋을 듯 해서 한 마디. 물론 핵심은, 다른 분들이 더 나은 실력으로 많은 건설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십사, 그래서 너무 엉뚱한 곳에서 삽질하기보다는 이왕이면 건설적인 쪽으로 에너지를 집중해달라는 제안이다. 게다가 미디어를 통한 소통으로 민주적 담론을 형성하고 사회발전의 동력을 만드는 것은 전공적 관심사니까. 하지만 그냥 기사 데이터만 몇 개 모아서 던져주고 한 두마디 코멘트하는 것보다 독자들의 지겨움과 낮은 조회수를 무릅쓰고라도 좀 더 맥락화된 상황 읽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그것이 전문적인 지향을 담은 접근과 그냥 혼자 스트레스 풀겠다는 취미적 접근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전문인(프로, 전공자 등)과 그냥 골방 취미가(경멸적인 의미에서 ‘**오덕’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상기하면 된다)의 차이는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이다. 물론 데이터는 당연히 옳은 것을 써야하는데, 전문인의 경우 그 데이터들에 전체 논의의 맥락 속에서 각각 가치와 역할을 부여한다. 즉 논지의 핵심에 더 필요한 데이터도 있고 틀렸을 경우 해당 부분을 수정해도 논의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심지어 틀렸을 수도 있는 데이터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틀렸는가’에 따라서 제한적으로 – 즉 언제 어떻게 수정할 수 있는지를 따져가며 – 취사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틀렸음이 판명나면 냉큼 버리고). 즉 데이터를 다루어 전체 논의를 만드는 틀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전문적 지식을 뽐내지만 사실은 그냥 골방 취미가인 경우, 데이터는 굳이 맥락이나 경중 없이 일괄적으로 신성하다. 사소한 데이터 오류를 발견함으로서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함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고, 1차 자료에 맥락화를 부여한 2차 자료의 기능성을 무척 당당하게 폄하하기도 한다*. 데이터를 그저 ‘많이’ 보유하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며, 상대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만으로 정작 자신의 논지가 자동으로 관철된다는 착각도 종종 한다. 논지 자체가 상대 의견의 부정이라면 괜찮지만, 종종 그 이상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당신의 A에 대한 이야기가 틀렸으니 내 B이야기가 옳은거다”를 한다는 말이다.

!@#… 예를 들어 이런 것은 대중문화에서 ‘실력 있는 평론가'(프로든 지망생이든)와 ‘좀 자의식 과잉 매니아’의 차이다. 평론가가 그 매니아만큼 특정 작가의 많은 작품을 열광적으로 수집하고 페이지수를 달달 외우지는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능력 있는 평론가의 장점은 덜 읽더라도 더 잘 맥락화를 시키고 본질을 정리해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의 오류가 있다면, 경중에 따라서 수정하고 그에 맞추어 필요한 만큼 논지도 수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실력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외우고 있으니 나는 킹왕짱, 평론가들은 *도 모르는 허풍쟁이 멍청이들” 취급하는 골방 오덕들이 종종 등장하고 말이다… 그리고 담론적 맷집마저 형편 없어서 정작 자신들에 대한 것이라면 약간의 오류지적에도 인신공격 등 밑바닥 모드로 쉽게 스위치하곤 한다. 비슷한 패턴은 역사학자 vs 온라인역사오덕(특히 최근의 역사교과서 길들이기 사태의 와중에서 종종 보인다), 경제학자 vs 증권예언가, 정치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자 vs 기계적 중립론자, 전문관료 vs 자칭실용 대통령 뭐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 마련이다.

!@#… 두 말 할 나위 없이, 키배 병림픽이 아니라 진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논의를 하고 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전문적 지향의 접근이다. 취미적 접근은 아무리 본인들이 진지하고 심각해도 결국 자의식 부풀리기에만 유용할 뿐. 벽돌을 쌓아서 집을 짓는 것과, 벽돌을 쟁여놓고 내 집 짱이삼 자랑질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쪽 방향을 장려하기 위한 약간의 디딤돌을 깔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은 것. 뭐, ‘about this site’에나 들어가면 좋을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석을 빙자한 덤)============
* 이왕 최근의 역사교과서 ‘논쟁’ 이야기 나온 김에, 다른 곳에 살짝 달아놓은 리플 백업.

!@#… 학문 연구에서 개론서와 백과사전 등을 인용하지 말도록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2차 3차 소스라서가 아니라 일반화시킨 지식모음집이기 때문입니다 – 새 연구를 하는 것은 해당 지식의 세부적인 맥락과 구체성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지식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이만큼 일반화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던 이야기다”는 주장이라면 백과사전은 그 자체로 훌륭한 1차사료(!)가 됩니다. 단순한 온라인역사오덕이 아니라 전공자라면, 그런 맥락 속에서 유연하게 써먹을 수 있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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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oughts on “상황을 읽어내기 위한 ‘교통 정리’를 강조하는 이유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poosuk's me2DAY

    poosuk의 생각…

    상황을 읽어내기 위한 ‘교통 정리’를 강조하는 이유. capcold님 글이 참 좋다. 아래 링크도 그곳에서 따라간.. 시골의사로부터 들은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가 떠오르는 내용….

Comments


  1. 전체적인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국내사정의 경우 오히려 더 크게 불거지는 문제는 저것보다는 전문가의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역할을 못하는 경우나, 전문가가 아님에도 언론에 의해 전문가의 딱지를 달고 나와 말을 싸지르고 가는 경우가 많아, 보통사람에게 전문가의 진짜 역할과 가치에 극도의 불신감을 심어주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전 사실 “정밀한 검증시스템”에 더 방점을 찍고싶어하는 쪽입니다만 이런 문제는 또 따로 다루어야할 문제일런지요 ^^

  2. !@#… 愚公님/ 사실은 쓸만하게 시작되는 듯한 논쟁들이 자꾸 병림픽으로 끝나는 현상에 대한 투덜거림이기도 하죠;;;

    erte님/ 그러게 말입니다. 다만 그런 의미에서 제가 주장하는 캠페인이 ‘야매척결’인데, 어차피 기회 닿을때마다 늘상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잠시 생략했습니다.

  3. 대중문화에서 ‘실력 있는 평론가’(프로든 지망생이든)와 ‘좀 자의식 과잉 매니아’의 차이다.

    이거 대박 문장이로군요. 그러나 erte님 말대로 한국은 전문가가 이름만 전문가인 이상한 국가인지라… 오타쿠들의 활약이 기대될 뿐입니다.

  4. (특정인을 언급해서 저어합니다만)예를 들어 노무현전대통령이 조직을 이해하지 못 했다는 비판을 하는 경우, 위 글에 쓰신 교통정리에 관한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대통령은 어설프고 부작용은 속출하지만 그런대로-이렇게 쓰고 지뜻대로-교통정리를 하는 듯 보이는데요?)
    아직도 위에서 말하는 ‘조직을 이해하지 못 했다’라는 각계 비판의 실체를 모르겠는데..

    그나저나, ‘데이터를 다루어 전체 논의를 만드는 틀에 대한 훈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써놓고도 우문(자문일지도)이지만 몇 년 동안 해결 못 한 숙제라서…ㅜㅜ

  5. 쓰고 보니 제가 반대로 생각한 건가도 싶고(전대통령, 현대통령의 경우)..
    위 쓰신 글을 몇 번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이해 못 하는 문장이 자꾸 나오니까 불안합니다ㅜㅜ
    추완해주실 수 없으실지..

  6. !@#… infile님/ 각자 가지고 있는, 자의식 과잉으로 인하여 틀을 만드는 것을 그르치는 어떤 ‘측면’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방대한 정치지식에 함몰되어 여러가지 ‘조직 생리’ (기존의 정당 내 정치구도, 사람들의 기복적 열망, 지역기반 자체의 필요성 등등)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사적 자세로 배제함으로써 곳곳에서 레임덕이 걸렸죠. 반면 현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방대한 현장경영 경험에 함몰되어, 전봇대는 뽑지만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입니다. (핫핫)

    ‘데이터를 다루어 전체 논의를 만드는 틀에 대한 훈련’은 원하시는 분야에서 좋은 스승, 좋은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부딪혀가며 부지런히 수련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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