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서사문화를 바꿔낼 힘,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만화로 얻어보자 [고대문화 99호]

!@#… 고대문화에 기고한 정치글과 만화글 사이의 그 무언가임.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시리즈화하기도 용이한 컨셉인데, 과연 이런 방식의 글을 원하는 지면이 나와줄지는 미지수(…). 제목은 편집부에서 지어준 예쁜 제목. 그런데 생각해보니 글은 대중서사문화’를’ 바꾸는게 아니라 대중서사문화로 사회를 바꾸는건데 OTL

 

대중서사문화를 바꿔낼 힘,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만화로 얻어보자

김낙호(만화연구가)

사회적 내러티브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우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집단생활 습성 정도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지 인간들이 이미 턱없이 복잡하고 거대해진 현대사회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의 인지능력 진화속도보다 훨씬 빨리 사회 속 여러 구도와 관계들은 복잡해져왔고, 덕분에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매번 새롭게 이해하느라 고생이다. 게다가 민주주의라는 제도까지 히트를 치면서, 각각 신경을 써야 한다고 요구되는 영역이 만만치 않다. 무려 사회의 주인라면, 사회 돌아가는 방식들에 대해서 뭘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에서 그냥 정신줄을 놓고 노예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야, 복잡한 세상을 최대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단순화시켜서 받아들이는 기술이 은연중에 발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방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적 내러티브다.

사회적 내러티브라고 이야기하니 무슨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의 지적 호사취미 같은 뉘앙스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현대 한국사회 여기저기에 흔하게 발견되는 사고방식들을 파악하기 위한 꽤 실용적인 개념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복잡한 사회적 사안들을 사람들은 어떤 인격화된 줄거리 구조로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정치시스템 문제라도 개별 특정인들의 이야기로 기억하며, 줄거리는 보통 당대 사회 속에서 서로 널리 공유되고 있는 흔하고 단순한 방식이다.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극적 이야기 구조 속에서 현재는 항상 가상의 ‘결’을 앞에 두고 있는 클라이맥스고, 자잘한 팩트는 쉽게 무시된다(아, 적당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정치학 분야에서 월터 피셔 등을 위시한 학자들이 다루어온 내용이다).

예를 들어 너무 흔하고 당연한 느낌이 드는 내러티브들 몇 가지가 있다. 다양성을 모르는 공격적 좌빨들에게 핍박받아 어쩔 수 없이 펜을 꺾는 지적으로 엄밀한 우파A라는 줄거리로 보수의 드라마를 만든다면 어떨까. 혹은 독재세력에게 저항하기 위해 자잘한 차이는 뒤로 하고 하나 되어 대의를 위해 희생하며 전쟁을 하는 민주투사B씨로 진보의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겠다.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 놀라운 실력과 비판적 정신을 가지고 있으나 후환이 두려워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없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저항을 하는 게릴라 영웅M씨의 모험담으로 현재 한국사회의 소통환경을 이해하기도 한다.

사회적 내러티브를 사람들이 생성하기 위한 재료로는 자신 혹은 주변인들이 겪은 일들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교육이나 언론 등을 통해서 열심히 유통되는 내용 등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내러티브의 형식 자체를 지니고 사회 속을 살아가는 어떤 이들의 이야기들을 전하면 어떨까. 그것도 수용자 개개인들이 재미있다고 몰입해가면서 간접 체험하는 식이라면 말이다. 덤으로 만약 히트할 경우 대중적 즉 사회 보편적으로 수용되며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아주 안성맞춤이다. 이렇듯 대중 서사문화의 중요성은 사회적 내러티브의 형성에 기여할 만한 구석이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이다. 잘 만들어지고 인기를 얻는 대중 서사문화 작품은 기존 사회적 내러티브를 건드리며, 그것을 강화하는 쪽이든 슬쩍 방향을 수정하는 쪽이든 최대한 활용해낸다. 만약 기존 사회적 내러티브 중 문제적인 것을 건져내어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중문화가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식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 지면에서 심각한 이론적 논의로 계속 파고드는 것은 필자에게나 독자분들에게나 고생스러운 일이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매우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는 두어가지 사회적 내러티브와 그에 대한 저항을 해볼 수 있는 류의 만화 작품들을 비견해보면서 슬쩍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사례 하나: 한국인은 시끄러우면 파멸해왔다

설문이나 면접연구를 바탕으로 한 결과가 아닌 통찰에 의한 넘겨짚기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직접적 이익이 달려있지 않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참칭하는 특정 세력에게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적지 않은 층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세상인식이 바로 사회가 시끄러운 것은 무질서고, 무질서는 파멸이라는 일사천리 인과관계다. 경제적 파멸보다 좀 더 직접적인 사회적 파멸을 상정하며, 사회통합과 일치단결을 입에 달고 다니신다. 이런 경우 근거를 캐물으면 나오는 것이 바로 “역사적 경험”인데, 바로 “한국인은 시끄러우면 파멸해왔다, 조용해지면 흥했다”라는 내러티브다.

그 틀에 스스로의 인지능력을 전부 고정시키고 나면, 사실 꽤 그럴싸하다. 해방정국에서는 시끄럽고 무질서한 – 특히 이념적 의견이 양극화되어 있는 상황이 주어졌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시끄럽고 무질서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고 심리적 인과관계를 형성하기 딱 알맞다(당대 정권들의 프로파간다가 크게 한 몫 했지만, 그런 식으로 병렬되어 있기만 해도 그런 의미는 저절로 생겨난다). 이승만 정권 붕괴 직후, 막 쟁취한 민주주의로 시끄러워졌을 때 혼란을 타개하겠다며 박정희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에 비해 유신정국의 ‘질서정연함’ 속에서는 경제 성장을 한다. 전두환도 비슷한 패턴으로, 서울이든 광주든 시끄러움은 비극적 파멸로 돌아오고 질서는 호황과 성장으로 돌아오는 듯한 패턴의 연속이다. 그나마 87의 6월 혁명이 약간 다른 경험으로 작용하려는 찰나, 시끄러움이 좋은 것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학습시켜주기에는 턱없이 역부족한 상태에서 88년 올림픽이라는 행사에 맞추어 또 ‘질서’가 필요했다. 무려 노태우를 뽑아줄 정도로 말이다. 그 다음에는 무질서와 시끄러움을 대변하는 운동권이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점점 골방화, 90년대 중반부터는 특히 학생운동의 노골적인 질적 쇠락까지 이어졌고 말이다. 그리고 IMF 구제금융 정국도 오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시대정신 속에서 다시금 ‘시끄러움’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기회가 또 소실되었다. 싸움꾼 기질이 투철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다시금 혼란에 대한 좀 더 나이든 세대의 공포를 더욱 키워줬고, 결국 거대한 반동으로 이명박 현 대통령이 질서를 부르짖고 있다. 내러티브를 강화해오기 위한 천혜의 조건들로 가득하다.

다만 그런 내러티브의 완성을 위해서는 국가경제의 복잡함에 대한 간과, 권력자들의 개인적 탐욕 경시, 개개인 노동자들의 노력 과소평가, 다양성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을 가치들 무시, 일치단결이 아닌 정당한 경쟁을 통한 사회수준 향상 같은 다양한 좀 더 복잡하지만 훨씬 중요한 요소들이 깨끗하게 떨어져나간다. 만약 “파블로프30”(극단적 근시안성이나 자동화된 절대적 신념에 의해 소위 ‘보수기득권’을 지지하며 또한 반드시 투표장에 나와 권리를 행사하는 30% 내외의 고정층을 지칭하려고 만들어둔 조어다)을 줄여나가고 싶다면, 바로 그런 요소들이 다시 들어가 있는 쓸만한 사회적 내러티브를 널리 보급할 필요가 있다.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며 몸을 불살랐다는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전에 소년노동자에서 성인노동자로 막 성장하며 당대 노동환경의 모순에 맞서 싸운 전태일을 그려내는 『태일이』(최호철 작 / 돌베게 / 전 5권)같은 작품이 좋은 출발점이겠다. 6월 항쟁이 무슨 민주화 영웅들의 희생정신이 아니라 그저 여러 개인들의 각각 사정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증발점을 넘어선 것이었다는 『백도씨』(최규석 작 / 창비)도 같이 끼워 읽는 것이 좋다. 시사 이슈 속에서 서로 어지럽게 얽혀있는 문제요소들을 단순화시키기보다 어지러움 그대로 패러디를 통해서 보여주는 『본격시사인만화』(굽시니스트 작 / 시사IN 연재중) 도 틈틈이 읽어가며 주변에 널리 추천해주고자 한다. 시끄러운 것의 소중함에 관해 아예 현 정권이 추진해온 문제적 법안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자 만들어진 옴니버스 만화책 『악!법이라고』(강풀 외 다수/ 이매진)도 좀 딱딱하지만 가격도 싸고 여전히 상황이 나아진 것도 없고 하니 소개해둘 만하다.

 

사례 둘: 한발짝만 더 나아가면 세계 속의 선진 한국

이번에는 한층 스케일 큰 사회적 내러티브를 들어보자.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이번에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이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치열하게 서열경쟁을 하는 중 지금껏 열심히 고생해서 바닥에서 앞줄까지 왔고 이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1등 그룹에 당당하게 입성할 것이라는 스토리다. 디테일이나 초점은 차이가 있겠으나 국내 언론, 정치인들의 담화, 꼰대기질 농후한 개인들의 훈계 속에서 너무나 흔해빠진 세계관이다.

조금 더 해부해보면 몇 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첫째는 국가 간에 명확하게 잴 수 있는 통합 서열이 있다는 세계관 그 자체다. 머리 속에 일등국가, 이등국가에 대한 포괄적 순번이 있고 특정 국가들이 각각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줄 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는 선진국이라는 일종의 잘나가는 서클에 입성해야만 한다는 사고다. 이것은 현재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의식을 전제하고 있고, 무언가를 쫒아가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행동강령을 담아낸다. 셋째는 남에게 의존해야만 성장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나머지 세계에 무언가를 내다 팔아서 경제를 바로세운다는 수출 만능론 이야기다. 이런 식의 사회적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했을 법한 역사의 과정이나 기득권층의 의지는 따로 하나씩 짚어보기 귀찮을 정도로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따라잡기식 모델이 가장 효과적일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잿더미에서 시작한 전후현대사, 정경유착 재벌 몰빵, 장기독재정권이 만들어낸 언론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공고한 기득권 공생관계,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당하는 황당한 노동력 수탈에 무감각해지게 만들기 위해 탈락 공포와 선진 희망을 배합한 담론 칵테일 수십년 어치, 족보로서의 전통은 잔뜩 강조하면서 실제 생활 문화로서의 전통은 죄다 단절해버린 삽질 “근대화” 과정의 유산… 뭐 관여된 요소들을 계속 뽑자면 끝도 없다.

만약 지금 이 사회를 더 합리적인 곳으로 정비하기 위해 눈먼 선진국쑈에 취해 어딘가로 막무가내 전력질주하는 짓을 좀 멈추고 싶다면, 바로 이 사회적 내러티브를 개조해야할 듯 하다. 우선 국가 간에 하나의 통합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더욱 다양한 가치척도에 의해 평가를 할 수 있고, 그 중 그 국가의 국민들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부분들을 개발하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국가라는 것이 하나의 단일한 캐릭터가 아니라, 그 안에 다양한 층이 각각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그들 사이의 상당한 사회적 평등이 중요하다는 지점도 기억하고 말이다. 또한 선진국이라는 서클에 입성하기보다는, 이미 특히 경제 같은 부분에서는 선진국에 도달했고, 그렇기에 멍청하게 선진국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다른 부문들이 그 수준을 못 따라간다면 왜 못 따라가는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좋겠다. 단순한 수출만능이 아니라 사회 내적으로 어떤 식으로 산업기능들을 정비해야 더 많은 성원들이 효과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지, 개방적인 정치참여 방식과 사회서비스 산업 같은 것들을 진취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강조해도 훌륭할 것이다.

그런 요소들을 들춰내줄 만한 만화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경제체제 비평인 『어린왕자의 귀환』(김태권 작 / 돌베게)부터 시작해보자.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은 항상 너무 포괄적인 느낌이 있지만, 자본주의를 적당한 브레이크 없이 굴릴 때 사회체제로서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그 내재적 모순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드러내준다. 해외 입양인으로 자라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피부색깔 꿀색』(전정식 작 / 길찾기)는 선진국을 부르짖으려면 GDP 말고도 사회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구성원들, 특히 내버리듯 보낸 이들에 대한 포용 같은 것이 중요함을 넌지시 깨닫게 해준다. 혹은 한국사회의 가깝고도 먼 거울상을 통해서 이질적 이웃과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읽어내면 어떨까. 남북 경협의 일환으로 북한에서 경수로 건설에 참여한 작가의 여행기 『남쪽손님/빗장열기』(오영진 / 길찾기)가 제격이다. 더 본격적인 오락물로서의 극만화라도, 시각만 적절하게 잡아보면 많은 이야기를 얻어낼 수 있다. 『불의 검』(김혜린 / 애장판 전 6권 / 대원CI) 같은 대하순정사극판타지물(…)에서 보여주는 개인과 국가에 대한 세계관이 주는 울림을 누가 만만하게 볼 수 있겠는가.

 

대중서사 내러티브로 사회적 내러티브 만들기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사회적 내러티브들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실제로 정권을 잡고 정책을 관철시켜가며 힘으로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 더욱 강력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그런 기반 위에서야 비로소 물리적 힘도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이 지면에서는 사회적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한 여러 담론 형성 노력 중 하나의 경로로 대중서사를 이야기했다.

위에서 사례로 든 것들만 해도 그렇다. 시끄러움과 무질서함의 장점, 즉 성숙한 민주주의의 장점을 학습하지 못한 사회는 안타깝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질서 페티쉬 인자들이 발휘되어 가장 수구적인 방향으로 똘똘 뭉치니까 말이다. 혼란과 복잡성의 장점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서사문화들이 더욱 많이 만들어지고 더욱 널리 읽혀야하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장 보편적으로 와닿는 사회적 내러티브로 만들어 흡수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혹은 한국이라는 캐릭터의 세계 활극 내러티브에 빠져서 한국이라는 사회 자체가 내적으로 지향해야할 가치들을 잊게 만드는 사회도 문제다. 그것을 막고자 한다면, 그에 관해 질문하고 또 제안하는 작품들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담아내는 내러티브들이 한껏 재조합되어 보다 가치 있는 사회적 내러티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비평가들은 좋은 문제의식들을 퍼트리기에 도움이 될 만한 우수한 작품들, 혹은 여러 작품들에서 그런 요소들을 끌어내어 생각하게 만드는 작업들을 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작품들을 보다 깊숙하게 흡수하고자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학 개념을 설명하려는 듯하다가 한국사회비평으로 빠지려다가 어느 틈에 만화 추천을 하고 있기도 하는 이런 이상한 잡문도 한번쯤 접해보고 말이다.

Copyleft 2010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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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yh0 유행시켜주셈(핫핫) RT @Joyh0 "파블로프30" 매우 적절하네요 ㅋhttp://capcold.net/blog/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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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하는 시도. 팬픽으로 사회상을 담아내기 (…) 쉽지 않지만 계속 가고 있습니다. RT @capcold: 대중서사문화를 바꿔낼 힘,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만화로 얻어보자 [고대문화 99호] http://bit.ly/d6yG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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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프30" 매우 적절하네요 ㅋ@capcold [캡콜닷넷업뎃] 대중서사문화를 바꿔낼 힘,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만화로 얻어보자 [고대문화 99호] http://capcold.net/blog/5603 | 한국사회의 내러티브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

Comments


  1. 이 고정 코너를 계속 읽고 싶은 마음에 『고황』 편집 회의에서 아이템으로 일단 제안을 드렸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

    비평가의 입장과, 독자의 입장 두 군데에 있다 보니 (어디 다른 비평가/리뷰어 분들은 안 그러겠냐만은;;;) 마지막 문단의 글이 매우 공감이 갑니다. 문제 의식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킬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제가 일하고 있는 신문이나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독자 / 비평가 모두의 입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최대한 힘이 닿는 대로 계속 소개하려고 합니다. 팬픽 형식으로 서사를 창작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고요. (…몇 달 째 집필 중인 모 소년 만화의 팬픽이나 소품집도 사실 이런 개념에서;;;)

  2. !@#… Skyjet님/ 저는 모든 문단의 글이 매우 공감이 갑니다(핫핫). 추천 감사하고, 작품 자체의 틀 안에 매몰되는 팬픽의 한계를 넘어서는 근사한 물건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3. 작품 자체의 틀 안에서 매몰되지 않으려면, 어떤 식으로 전개가 이루져야 할까요. 염치불구하고 조언을 부탁합니다. (…) 일단 저의 경우에는, (장편은 아직 그 부분 나오려면 한-참 남았고) 단편에서는 사회적인 요소를 넣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고, 고민되네요.

  4. !@#… Skyjet님/ 몇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하나같이 쉽지 않죠(…) 작품의 “세계관”만 가져오는 방법도 있고(예: 스타워즈 EU물들), 장르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방법도 있고(라고 해도 뭐든지 BL화 시키는 경우들이 많지만), 그냥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해당 작품을 하나의 소재로만 재해석하다시피 써먹는 방법도 있죠. 그게 그래도 여전히 팬픽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경계선이 희미해지겠지만.

  5. 사례 하나에 관해서, ‘시끄러움’을 ‘역동성, 활기, 자유로운 소통’ 등의 긍정적 언어로, ‘질서’를 ‘경직됨’ 같은 부정적 언어로 프레이밍하는 것도 병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례 둘에서 지적한 문제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있어서 문제예요. 그 연장선에서 인종차별도 벌어지고 있고…에휴~ 요즘 다음에서 연재되고 있는 MIC 괜찮더군요. 댓글란은 시궁창이지만…

  6. !@#… 비르투님/ 옙 그런 식으로 프레이밍하기 위해 긍정적 사례들을 열심히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널리 퍼트려야합니다. 그게 잘 퍼트려지는 담론유통환경도 정비하고. // MIC 그 작품은 소재는 잘 잡았는데 그림체 선택이 심각하게 FAIL;;;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