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군것질에서도 역사를 읽는다 – 『코알랄라』 [전자신문 100415]

!@#… 어째 한 바퀴가 이전보다 빨리 돈 듯, 지난 금요일자 전자신문 게재.

 

어릴 적 군것질에서도 역사를 읽는다 – 『코알랄라』

김낙호(만화연구가)

역사라고 하면 보통은 꽤 거창한 것을 상상하게 되기 마련이다. 당장 이 연재칼럼만 해도 만화라는 나름대로 독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고 싶을 소재인데도, 역사라는 키워드와 결합하면 어째서 그렇게 무겁고 거창한 화두들만 날아다니는지 필자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사실 역사란 반드시 그렇게 중후장대할 필요가 없다. 살아온 기억들의 사회적 축적이라면, 흔히 사소하게 치부할 만한 것들도 얼마든지 역사의 소재가 되어준다. 게다가 종종 그런 작은 것들이 어떤 시대 속 실제 삶의 모습들을 규명하는 것에 더 많은 도움이 되고, 그런 것들이 큰 전환점들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로 그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을 미시사라고 부르는데, 프랑스 아날학파의 접근법들이 한국에서도 ‘고양이 대학살’ 같은 책을 필두로 한 때 꽤 유행한 적 있다.

그런데 미시사, 즉 일상의 소소한 것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꽃이라면 역시 먹거리다. 어느 시절에 무엇을 먹었는지, 그것이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훑어보는 것 만큼 생활과 밀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특히 그 것을 직접경험으로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한쪽으로는 묘한 향수를 불러오며, 다른 쪽으로는 변화과정에 대한 기억을 순차적으로 끌어내어 문자 그대로 역사를 되새김질하게 만들어준다. 그 속에서 각자의 역량과 의도에 따라서 정서적 재미를 추구할 수도, 경제나 정치 같은 더 큰 시대적 함의까지 애써 연결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조건이 있다. 우선 쉽게 공감을 부를 정도로 대중적인 먹거리여야 한다. 그리고 디테일이 자세하고, 특히 당시에 매우 중요하게 느꼈을 법한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실력이 좋아서 결국 지금 다시 한 번 그것을 찾아 먹어봄으로써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져야 한다. 진지한 역사책일 필요는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된다. 집요한 기억력과 소소한 생활개그가 섞인 재미있는 연재만화 쪽이 훨씬 낫다.

포털사이트 미디어다음에서 연재중인 『코알랄라』는 최근 작품 가운데 그런 접근법의 가장 훌륭한 사례다. 8-90년대의 일상적 먹거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소소한 식탐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무척 반갑다. 작가의 자화상인 코알라 캐릭터가 매 회 하나씩 음식 품목을 다루며 그것과 관련된 자신의 기억 및 그것을 맛있게 먹는 법 등을 풀어내는 내용인데, 식도락으로 빠지지 않고 소세지, 떢볶이, 라면 등을 주로 다룬다. 이 작품의 역사적(!) 매력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첫 회인 소세지 편인데, 어릴 적 길거리 핫도그 속 소세지와 관련된 일화부터 시작하여 미니 소세지의 포장 방법의 변화, 치즈성분으로 맛이 바뀐 과정, 업체간 마케팅 경쟁의 양상 등이 전지적 역사가가 아니라 철저하게 당시 그것을 즐겨먹은 취식소비자의 입장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라 지금 다시 만나서 소시지를 먹는 것의 이야기로 이끌어낸다. 역사적 훈계 혹은 식문화에 대한 교훈 같은 것을 하려는 의도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그저 음식을 생활의 소소함과 역사적 디테일이 살아있는 방식으로 풀어나갈 따름이다. 나아가 가끔 섞어 넣는 당황스러운 사연 같은 상황개그보다도, 디테일 자체가 폭소와 즐거움을 주는 희귀한 작품이다. 티라미수를 먹으며 90년대초 티라미수 초콜릿을 기억해내고, 그것이 다른 초콜릿보다 3배 비쌌던 것까지 끌어내는 입담 앞에서 공감의 박장대소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인도 폄하할 길도 없이, 이런 것도 아니 이런 것이야말로 역사다. 박제되지 않고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녹아있는 기억이고, 과거를 통해 오늘을 되새겨볼 확실한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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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자신문의 ‘만화로 보는 세상’ 연재칼럼. 필자들이 돌아가면서 ‘만화의 사회참여’, ‘만화 속 역사’, ‘만화와 여성’, ‘웹툰트렌드’ 등의 소재를 다룬다. 제일 무겁고 재미없어지기 쉬운 파트인 ‘역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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