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수 세력 과시 커뮤니케이션의 허상

!@#… 완전소중 황오빠 지지집회를 또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해가 안가는 것이… 수천명이 아니라 수천만명이 거리에 나와서 촛불들고 우석오빠 힘내세요를 부르짖는다고 한들, 사기친 전과가 사기 안친 걸로 바뀌나? 없던 줄기세포가 땅 속에서 솟아나나? 진실을 온 힘으로 막아내고자 총력전을 펼쳤던 행위의 증거들이 스르륵 사라지나? 도대체, 인원숫자에 기반한 ‘세를 과시함’으로써 얻어내고자 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 사람들의 뜻이 많이 모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그 소박한 희망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정말 좀 재교육이 필요하다. 아 그래, 4.19도 있었고 87년도의 넥타이부대 경험도 있고, 노무현 탄핵 반대 사례도 경험해 본 나라의 국민이기는 하지. 사람들이 힘을 합치니 뭔가 세상이 움직이더라, 라는 것. 그런데 그런 ‘성공사례’들의 공통점이란? 애초부터 ‘다수결’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형식민주주의 체계에서 공공직 고위 공무원의 직위유지라든지 하는 것들은 다수의 결정에 기반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다수의 힘으로 반대하면, 형식상으로 몇 다리를 건너뛰는 극단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성립되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 예를 들어 노무현 탄핵건은 그 극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어차피 법적으로 결정해도 탄핵 요건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만이 시위를 하든 말든 당연히 정해진 결과다. 사람들의 ‘힘’이 발휘된 진짜 지점은 무엇이냐 하면, 총선이다. 직접 투표를 하는 과정에 탄핵세력에 대한 반대 의견이 직접 반영됨으로써, 한나라당 급락 열린우리당 급부상. 다수결의 힘이 작용할 수 있는 부분에서 다수결이 작동한 것 뿐. 착각하지 말자. 수많은 대중의 뜻은 대통령을 지켜낸 것이 아니라(그것은 ‘헌재’에서 ‘헌법 논리’에 따라서 했다), 대통령을 거꾸러트리려던 구 기득권 세력에게 결과적인 불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따름이다. 그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기는 하지만, 너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시민의 힘”이니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에 비해서 미군 여중생 압살사건은 어땠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와서 뜻을 모은들, 사건의 골자와 이후 처벌대책은 ‘한국인’들의 ‘다수결’로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었다. 미군의 수사 문법에 따라서 수사와 처벌이 행하여지고, 한미협정에 의하여 한국측에 보상과 사과가 이루어질 뿐이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아름다운 마음을 확인하는 것 말고는, 실제적인 효과는 제로다. 물론 대중 의견의 다수결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가해서 좀 더 사태 대응에 능동적이 되도록 채찍질을 한다는 정도의 간간간접 효과 정도는 있지만, 솔직히 다음주가 선거 시즌이 아니라면 그 영향 대단히 미미할 뿐이다.

!@#… 특히 머릿수에 의한 세력 과시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전부 쥐고 있는 소수의 압제자 vs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박탈당한 다수의 민중이라는 뚜렷한 대결구도가 있던 시대적 맥락에서만 가능했던 현상이다. 다수결이라는 룰이 있는 종목에서, 쪽수에 의한 세력 과시는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하지만 다른 룰이 적용되는 시스템에서는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주주의라면 그냥 ‘다수결’이라는 룰이 전부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가 더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다양한 종목들과 룰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법논리라는 룰, 과학이라는 룰, 경제경영이라는 룰, 민족주의라는 룰… 예를 들어 이번 황 사태에서 부각된 ‘과학의 룰’은 어떨까. 이것은 다수결이고 어쩌고와 전혀 관계없다. 과학적 엄밀성과 근거자료라는 것이 핵심 판단기준이다. 형사법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과학에서는 입증 책임이 과학자 본인에게 있다. 이런 룰의 차이를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고 ‘국민적 성원’이라는 전략으로 소통을 밀어붙이니 줄기세포교도라고 비웃음을 살 수 밖에.

!@#…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관들이 보장되며, 그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조율되는 유동적인 시스템이어야만 존재의의가 있다. 훌륭한 올림픽 경기는, 각 종목의 룰을 파악하고 그 룰을 때로는 지키며 이용하고 때로는 유리한 방향으로 고쳐나가면서 이루어진다. 투포환을 들고 하키장에 난입하는 것은 뻘짓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머릿수 늘리기가 아니라, 그 상황 그 이슈 그 룰에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을 찾아내는 것이다.

!@#… ‘무슨 목표‘를 얻기 위해서, ‘누구‘와 ‘어떤 방식‘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도 없이 감정적으로 고양되서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은 축구응원으로 족하다. 길거리에서 대규모로 모여서 전투적인 시위를 하는 것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이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사안은 특정한 부류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시대적 맥락 – 특히 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경로들 – 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런 맥락을 잊어버리고 방법론 자체에만 몰두한다면 당연히 소통 효율성이 떨어지고 관성화되어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죽창과 쇠파이프로 필살의 진을 친다고 해봐야, 결국 그 결과 길거리 시민들에게 마저 여론화되는 것은 교통체증과 폭력시위와 진압의 문제 뿐이지 그들이 주장하던 노동자 농민 생계보장 문제는 묻혀버리지 않나. 그러한 역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나왔던 것이 최근의 촛불시위라는 방법론. 깃발 없이 구호 없이, 즉 조직적 동원 없는 자발적 참여를 매력포인트로 내세우는 방식. 하지만 이것 역시 점차 수많은 마이너한 사안들(황우석 오빠 사랑해요…라든지) 흔하고 식상해지고 있어서 화제를 집중할 만한 가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와 맥락에 입각한 가장 효과적인 소통방법론의 고민이다. 예를 들어 두 가지 분신 사건을 놓고 보자. 노동자 전태일이 노동법을 준수하라며 평화시장에서 분신을 한 것은 노동자들의 여론을 규합시키고 친노동자 지식인층을 각성시키며 제한적이나마 주류 언론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당시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이전에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은 시도해봤고,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최종적인 선택이었다. 그에 비해서 어제 황우석을 지지한다며 분신했다는 분은, 고인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도대체 그런 고민이 과연 있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뜻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비극 아닌가.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다양한 의사소통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도, 운동의 향방도, 일상 생활의 조율도 결국 여기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디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capcold에게, 스스로 쥐어주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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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머릿수 세력 과시 커뮤니케이션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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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시위라는 소통행위에 관한 약간의 생각.

    […] 그대로 군대를 조직해서 적들을 향해서 돌진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 시위는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물리적인 대규모 캠페인이다. 그런데 정책광고도 기자회견도 아니라는 것은, 자신들이 주류 강자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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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용 대비 효용 측면에서 이전부터 그다지 높게 치지 않고 있다(클릭, 클릭). 게다가, 원래 시위현장 자체의 기억은 휘발성이거든. 정기적 […]

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인형사 – 황빠들은 중세식 결투재판에서의 챔피온들이지요.
    결투나 복수가 정의의 원초적인 형태였고, 그것이 제삼의 중립적 권위에 의한 재판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이 역사의 방향이었죠.
    그러나 중립적 권위가 신뢰를 잃거나 거부 당할 때 결투재판의 논리는 다시 등장하지요 2006/02/08 15:08

    – 캡콜드 – !@#… 인형사님/ 문제는, 중립적 권위에 해당되는 ‘과학적 검증과 엄격한 윤리기준’에 대해서, 자기들끼리만 신뢰를 버리고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 속된 말로, 배째라 드러누운 셈이죠. 2006/02/08 16:13

    – 마근엄 – …국민의 혈세를 등쳐먹은 황씨를 사법처리하라는 집회를 하면 모를까… 도통 그들의 두뇌구조가 이해가 안 가고 있습니다. 2006/02/08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