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라는 소통행위에 관한 약간의 생각.

!@#… 요새 테이저건을 도입해서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면 전기로 지진다는 식의 이야기 때문에, 블로고스피어 일각에서 무려 시위에 관한 이야기들이 피어나고 있다. 폭력진압을 일으키는 것은 항상 폭력시위니까 닥치고 강경진압하자는 순진발랄한 주장도 있고, 집시법 자체가 가장 큰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여하튼 폭력은 문제라는 타당하지만 일반론적인 이야기도 있고. 이런 류의 주장들이 항상 그렇듯 나름의 진실과 나름의 오버가 섞여있기에, 보통 융통성 있게 접근할 수록 맞는 말이고 강경할수록 틀린 말이 되곤 한다. 폭력시위도 문제고 폭력진압도 문제고 집시법도 문제고 한국의 민주주의도 문제고 다 문제지 어쩌겠나.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측면으로 접근해서 그런 것들의 영향을 고려하면서 개선 방향을 잡느냐라는 것일 따름. 당연히, capcold의 경우 그 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측면으로 약간의 생각. 누가 읽을지는 몰라도.

!@#… 뭐라고 포장하든 간에, 시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자 의의는 자기주장이다. 시위는 승리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그대로 군대를 조직해서 적들을 향해서 돌진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 시위는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물리적인 대규모 캠페인이다. 그런데 정책광고도 기자회견도 아니라는 것은, 자신들이 주류 강자의 입장이 아니라 힘없는 피해자라서 이런 방법 밖에 택할 수 밖에 없다는 벼랑끝 이미지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효과가 있다 (삼성임원들이 갑자기 나와서 특검은 탄압이다 중단하라 시위하러 나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혹은 동네 싸움에 비유하자면, 누가 먼저 선빵을 날렸든간에 카운터를 날리는 순간 쌍방과실이 되고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 애초에 왜 싸움이 붙었네 하는 것은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한다. 싸움으로서 성립되는 순간 싸움 그 자체가 모든 스폿라잇을 가져가고, 명분도 메시지도 가볍게 날라간다. 오로지 잘잘못만 남을 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격적 시위는 백프로 역효과다. 당장 돌 던지고 죽창 휘둘러서 전경들 한 1미터쯤 뒤로 밀려나게 해서 얻는 쾌감 따위에 집중해버리면, 시위하러 나온 원래의 목적인 ‘메시지 전달’은 확실하게 망한다. 어떤 특정한 사건의 피해자라서 길거리에 나왔다고 할지라도, 전경들이라는 엄한 상대들에 대한 가해자가 되는 순간 피해자로서의 속성은 깨끗이 지워진다. 안그래도 당신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싶어하는 담론들은 당신들의 가해자 부분을 부각함으로써 피해자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통체증으로 도심 퇴근길 정체” 같은 헤드라인이라든지. 다른 것 할 수 있을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굳이 시위라는 행위에 투여하는 이유를 잊어버리면 곤란하다.

알아요 알아. 많은 경우 애초에 격한 울분에 휩싸여 나온 것이고, 특히 도로 위에 서면 더욱 격양되서 폭발하기도 한다는 것. 그래도 그냥 도로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시위하겠다고 사전 신고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벽돌도 준비할 정도로 조직화를 해서 나올 여력이 있다면, 흥분은 하되 폭발을 하면 말짱 도로묵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도록 조직의 힘을 써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전략적 사고를 하라고 조직자들이 있는 것이고, 운동단체들이 있는 것이다. 경찰보다 이들이야말로 나서서 질서를 부르짖고 우발사태를 막아내야 하는 이들이다.

물론 많은 시위들이라는 것이 홍보 캠페인이라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위자들의 단결심을 끌어내고자 하는 목표도 크다. 그 경우 좀 더 과격하게 해서 극한상황에 가면 위기감 속에서 일체감이 피어오르기도 하기에, 조직자들에게 꽤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당장 시위의 홍보효과 자체가 마이너스면 안건을 널리 알려서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기들만의 똘똘 뭉친 리그가 되고 끝이다. 반복될수록 그 리그는 점점 견고하면서 동시에 작아진다. 90년대 후반 이래로 집회들을 통해서 여러 운동들이 착실히 걸어온 막장 테크트리의 정체다.

!@#… 사실 한국의 현실에서라면, 한 10만명씩 매주 평화롭게 모였다가 해산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절박한 분노의 심정으로 모인 시위라는 형식 자체의 긍정적 홍보 효과를 개인적으로는 매우 낮게 평가하는 편이지만(어설픈 집시법 덕분에 ‘불법’이 아니게 시위하느라 시간 장소 잡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역량이 소모되고, 그것을 무시하면 또 피해가… OTL) 그래도 이왕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해서 모였다면 가급적이면 효과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 만약 발끈해서 폭력을 휘두르며 주목을 끌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제발이지 시위에 같이 참여한 주변인들이 좀 뜯어말려줘야 한다. 판 좀 깨지 말라고. 내가 힘들여 나온 이 시위를 허사로 돌리지 말라고. 그리고 폭발할 에너지를 전단지 하나라도 더 나눠주는 것에 쓰고, 피켓 한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쓰고, 주변에 기자라도 있으면 한마디라도 더 건네는 것에 써야한다. 분노한 참가자들이 그렇게 못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돕는 것이 활동가들의 역할이다. 경찰과 대치하거나 벽돌 배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자: 쌍방폭력이 되면 시위라는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항상 피박을 쓴다. 혹시나 진압측이 먼저 손을 대서 맞을 것 같으면 카운터를 날리지 말고 차라리 도망가는 쪽이 낫다. -_-; (현장의 열기 속에서 가장 먼저 증발해버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항상 “도대체 우리가 뭐하러 이 시위를 하고 있더라” 라는 전제를 잊어버리지 말자. 가급적이면 시위를 함으로써 언론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언론에 제보하고 투고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이 백배 효율적이라고 보지만.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S. 약간 다른 이야기. 시위 이야기하면 맨날 다른 나라 집시법이 어쩌느니 하면서 자기들 유리한 부분만 추려서 긁어오는 경우들이 참 많은데, 제발… 법이라는 것은 각각의 사회적 맥락은 물론 법 자체의 조항들 사이의 관계까지 세트로 묶어서 봐야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심심하면 너도나도 들고오는 “독일에서는 복면쓰고 시위하면 체포된다” 이야기. 지난 복면금지법 추진 과정에서 모 의원들이 집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소스를 한번 직접 찾아봤다. 집시법(Versammlungsgesetz) 17a(2)2에 보니 있네… “신원 확인을 막을 수 있는 물건 소지를 금한다”(27(2)에 의해서 자유형 1년 이하 또는 벌금). 하지만 당장 여기에는 몇가지 조항들이 세트로 묶인다. 우선 당장 한 줄만 더 읽어도, 17a(3)에 보면 공공안전에 대한 위협이 없다면 담당책임자가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종교, 민속축제, 관혼상제 등은 아예 처음부터 예외). 즉 마스크 쓴 평화 침묵시위, 신분드러나면 곤란한 진짜 억압받는 소수자 집회 등이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 또 경찰 촬영에 의한 신분 취득 역시, 12a(1)를 통해서 공공안전을 해칠 실제 근거가 있을 경우에 한정되고 (2)범죄자 처벌용 또는 유력 범죄용의자의 추후 집회 참여시 예의주시용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속히 소거하게 되어 있다. 심지어 명시된 예외 경우라 해도 3년 후에는 소거. 즉 개인정보가 즉각적 범죄 처벌과 평화 집회 보장 이외의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최고의 제도는 아니지만, 나치 과거와 관계된 모든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기 위해서 유니폼 착용 집회도 금지하고 유대인 박해 역사의 장소에서의 시위를 막을 정도로 결벽적인 동네임에도 집회 시위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위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쏙 빼고, “민주 선진국도 복면 금지야!”라고 하면 좀 뻘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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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 힘들죠… 다만, 한국이 아니라 어느 선진사회의 언론이라도, 크게 시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의제 설정에 그 메시지를 반영해주는 것이 아니죠. 그 메시지가 각 언론사의 판단기준으로 뉴스가치가 있을 때에 비로소 다루어줄 뿐. 이번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만 해도, 태안에서 그 분이 시위하면서 분신을 해서 계속 다루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가 다룰만한 뉴스가치가 있어서 조선일보에서 몇 면이나 할애해서 특집 심층취재를 하고 있는 것이고(철탑에서 분신해도 한 줄 안나온 분들도 있으니). 시위가 시위 자체로 뉴스가치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오늘날은 상당히, 아주아주 무척무척 힘듭니다.

  2. 역사적으로 한국에서의 시위가
    일반대중에 어필하는 측면보다는
    시위억제세력에 어필한다는 이자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는데에
    전략적 시위의 부재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위문화라는 것도 ‘문화’인지라 적응시간이 필요한 것일 테구요.

    아무튼, 아직까지는 시위라는 수단까지 선택할 상황에 있는 집단과
    시위에서의 전략이란 걸 고려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집단간의 gap이 너무 큰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마니마니 추우실텐데, 실내에서 재미난 글 마니마니 올려주세요^^

  3. !@#… advantages님/ 사실은, 시위라는 수단까지 선택할 상황에 있는 집단을 보조해주면서 시위에서의 전략을 고려해야할 집단들(시민운동조직, 노조,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화된 세력들까지)이 그만큼 시대와 함께 업그레이드하기를 거부하고 형편없이 뒤떨어졌다는 이야기죠. 적확하게 지적해주신대로 시위억제세력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시위가 한국 시위문화의 근간이라서 아직도 이런 상황입니다만, 솔직히 그런 식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반정부 시위’가 주요 의제였던 시대는 거의 20년 가까이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 짧게 잡아도 96년 연대사태 이후에는 뭔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하고 깨달았어야 하고.

  4. 화염병까지 쓰지는 않더라도 뭔 큰일 터졌을 때 우리나라 시위대의 무장수준과 행태는 과격시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죠. 시위세력이 정말 어떻게 변하긴 해야 할 겁니다. 정부가 대응하는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제 사실상 사람 죽이는 무기들고 부딪히는 건 보고싶지 않아요.. 솔직히 범인체포나 시위진압용 테이저 건이 쇠파이프 보단 백배이상 안전할껄요? -_-;;

  5. 사실 ‘폭력시위’ 의 비율은 1%가 채 안되요. 그것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고요. 물론 사람이 다치는 거니까 큰일이기는 한데 누구들이 오버하는 것 처럼 대단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시위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는 절실하게 공감하는 바 입니다만 양비론은 아무래도 진압쪽에 무게를 실어줄 확율이 높기 때문에 좀 주의를 해야..

  6. !@#… milln님/ 물론 저야 시위대-진압대 간의 대립구도로 놓고 양비론을 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늘 주장하듯, 잘잘못을 가려야 할 때는 항상 케이스-바이-케이스니까요. 오히려 매번 그런 대립구도에 말려들어 가는 것 자체를 해소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시위라는 행위 자체의 전략적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죠. // 반면 현행 집시법 자체를 놓고 보자면,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철학도 컨셉도 없이 그냥 매번 편의적으로 규제만 몇 개씩 추가로 끼워넣은 한국의 현행 법제도가 무척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각 분야의 규제철폐를 외치는 이명박정부가, 이쪽에는 과연 어떨지? -_-;

    지나가던이님/ 화염병도 원래는 방어무기(…) 개념이었죠. 전경들이 시위대를 강제연행하러 몰려들지 못하도록 불의 벽을 치는. 그런데 어느틈에 자연스럽게, 대인살상병기가 되어버렸더란 겁니다. 사실 어떤 도구인들 폭력적으로 쓰지 못하겠습니까;;; 여튼 그렇기 때문에, 폭력 자체가 얼마나 시위 자체의 목표달성에 손해를 끼치는지 전략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저 속이 타서 길거리로 뛰쳐나왔더라도.

  7. 2001년에 민노총과 학생들이 연대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준비해온 화염병을 꺼내서 무지 당황한 적 있었죠. 결국 사진 채증에 걸려 엄청 많은 친구들이 잡혀가고, 내부에서도 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시위라는 수단에 대한 오해와 목적을 간과한 열정이 역효과를 낳았죠. 이게 다 집시법 때문이다, 하기에는 좀 구차한데요. 집시법을 개선하는 건 따로 (다른 방식으로) 힘써야할 문제고, ‘이에는 이’식의 막가파 폭력시위에 대한 변명으로는 가당찮죠.

  8. !@#… 오르페오님/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이거, 그건 그거. 현행 집시법의 허접함이, 실존하는 명백한 막가파 폭력에 대해서까지 싸잡아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되죠. 항상 과잉일반화는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