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경향신문 인터뷰를 유출보도한 JTBC 사안, 몇가지 메모.

!@#… 관심사 논점 정리 메모라는 형식에 맛들여서, 몇 마디.
(4.20.추가: 서술형 글버전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슬로우뉴스 기사 버전으로도 확장)

[] 사건.

– 경향신문이 사회적 임팩트 높은 인터뷰를 취재하여 연속 기사화했고, 검찰에 수사협조 차원에서 녹취파일을 넘겨주고, 인터뷰 대상측(이 경우, 유족)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녹취록 형식으로만 공개 예고.
– JTBC, 검찰에 제출된 경향신문 녹취 음성파일을 절취한 삼자를 통해 입수. 경향신문이 예고한 보도일 전에, 경향신문 또는 유족의 명백한 반대 요청을 무시하고 방송 단행. (참조: 보도하지 않을 양심: JTBC ‘성완종 녹음파일’ 유출 사건에 부쳐(슬로우뉴스))
– JTBC, 방송 클로징 멘트로 입장 표명. 자료를 절취한 인사, 사과문.

[] 피해 발생.

미시적(즉 직접 피해)으로는
– 유족들에게 감정적 피해.
– 경향신문의 특종을 절도 훔침. (유형물이 아니라서 국내 형사법 개념의 ‘절도’로 걸기에는 복잡하다는 제보에 따라 용어 정정)

거시적(즉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사회적 피해)으로는
– 언론이 정보원에게 주는 신뢰도 저하.
– 정확한 보도를 위한 세부 교정 생략 정당화 (이 경우, 녹취 자막 오류 등).
– 업계 안에서의 상호 존중 파괴.
– 결집하는 팬층 현상과 만날 때, 잘못된 보도방식을 대중 인식에서 정당한/불가피한 것으로 왜곡.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지 누가 내보내느냐가 중요하냐 정의를 위해 힘이나 합치지 밥그릇 싸움이냐 따위 논지가 꽤 출몰하지만, 있는 피해를 없는 것 취급하면 곤란하다.

[] 먼저, 언론 윤리라는 기준.

언론 윤리가 무엇인가 사회마다 단체마다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몇가지 공통 테마들이 있다. 가장 세련되게 정리한 동네 가운데 하나가 미국 SPJ(프로페셔널 언론인 협회)의 윤리규범 기준으로, 크게 4가지 중분류 아래 세부 항목으로 되어있다(2014년 버전).

1. 진실을 추구하고 보도하기: 정확성, 맥락, 출처명시, 공정성, 의견부분 명시 외 다수의 지침이 여기 포함.
2. 피해 최소화: 개인정보 침해 최소, 피해자 보호, 정보 취득 합법성, 파급력 고려 외 다수.
3. 독립성: 이해관계에 개입됨을 피하기, 청탁 금지 외 다수.
4. 책임성: 정정 보도, 윤리 위반의 공익제보 장려 외 다수.

이보다 논리적 정리나 시의성 반영이 뒤쳐졌기에 업데이트가 긴요하긴 하지만, 한국기자협회의 강령도 이런 틀거리로 충분히 재분류할 수 있다.

1.진실추구와 4.책임성은 언론인/조직의 실력만큼 추구하는 것이고, 3.독립성 또한 사업 현실에서 제약을 받을 뿐 규범적 기준은 매우 명확하다. 하지만 2.피해 최소화의 경우에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 있고 나름 최소화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해야만 할 때”를 처음부터 상정하고 있다. 그런 override 규칙이 무엇인가 많은 논의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기준점은 이거다.

공익성. 뚜렷한 공익성이 있는가, 예를 들어
: 당장의 화제성 너머, 공적 판단에 도움되는 정보인가.
: 단지 다수의 관심사가 아닌, 공적 영역에 대한 함의인가.

불가피성. 다른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는가, 예를 들어
: 실제로 공익성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할 새로운 정보를 주는가.
: 이런 식으로 보도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못했을 내용인가.

[] 적용해보자

– 해당 내용은 경향신문의 제작물이며, 경향신문의 전문공개 이전이었다. 검찰에 참조자료로 제출되었으나, 검찰이 사법 과정에 의거하여 공개한 상태가 아니었다. 즉 정당한 입수가 아닌, 유출에 의한 자료 획득이며 이것은 웬만한 언론윤리에서는 당연히 don’t로 규정한다.

– 유족측은 정서적 이유로, 경향신문과 전문의 내용 공개는 허락하고 육성은 불허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정보원측의 의사는 존중해주는 것이 기본이며, 불가피할 경우에만 거슬러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할 정당성이 있는가. 손석희 사장이 발표한 입장은 이렇다 (참조: 경향신문 녹음 파일 보도로 JTBC와 손석희가 잃은 것 (파벨라))
– 입수 정당성 여부: 검찰에 제출했으니 공적 대상물이 된 것 (그러니 입수가 정당).
– 공익성: 편집없이 진술의 흐름에 따라서 공개하는 것이 공익.
– 불가피성: 신문은 육성의 현장감을 전할 수 없는데, 그게 진실 추구에 중요.

한편 몇몇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호응을 얻은 지지입장글들은 ‘불가피성’ 부분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확 더 나아가버린다.
– 경향신문이 검찰과 거래해서 원본 자료를 왜곡하거나 비공개할 위험이 있었다. 지금껏 전체를 까지 않고 찔끔찔끔 보도한 것도 그런 징조였다.
– 검찰이 자료를 우익 종편에 바로 넘겨주고 그들이 왜곡해서 특종을 때릴 위험이 있었다. “깔대기질” 한 두번 겪어보는가.
– 신문 안 보는 세태에서, 방송으로 나와야 훨씬 중요하다.

허나 현실은 이렇다.

– 입수 정당성 여부
: 앞서 꼽았듯, 정당하지 않다.
: 방영 전에 어필까지 했다. 이때 입수 정당성도 문제삼았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지만, 발언 내역 자료가 없으니 패스.

– 공익성
: ‘새로운 정보’는 없는, 경향신문의 후속보도라는 맥락에서 비로소 생기는 공익성이다. 경향신문이 이미 개별 토픽들을 검증 취재 후 차례대로 기사화했고, 전문은 그간 기사화한 내용이 인터뷰 원문의 내용과 맥락에서 왜곡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 불가피성
: 육성의 효과는, 감정의 전달을 통해서 내용의 설득력을 강화/약화시키는 것에 있다. 그런데 사건 속성상, 절박한 목소리라고 해서 증거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고 폭로의 구체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 경향신문은 전문을 왜곡/비공개할 동기가 없다. 민감한 내용은 이미 다 기사화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추가취재도 했다(예: 비타500 증언). 전문 공개도 예고한 상태였다. 보도의 페이스는, 취재와 지면 사정의 기술적 사안.
: 검찰이 우익종편에 자료를 넘겨준들, 그간 공개된 보도를 뒤흔들 내용이나 미공개 내용이 애초에 없다. 게다가 현 시점에서 우익언론들이 취할 수 있는 합리적 전략은 “야당 유력인사도 받았다” 물타기 밖에 없다.
: 방송으로 나와야 중요하다면, 경향신문의 공개 이후에, 육성 없이 내용만 방송해도 무방하다. 자극성이야 그만큼 덜 하겠지만.

[] 무엇을 해야 하는가

– JTBC 측의 공식 사과와 경위 공개, 재발방지책 발표. 문제발생 다음날 손석희 사장의 입장발표는, 사과를 눙쳤고(세월호 사건 당일 무리한 취재에 대한 훌륭한 사과와 비교해보라), 경위 공개가 미진하며, 재발방지책은 수사로 넘어갔다. 눙치고 넘어갈 때 한 웅큼 떨어져나가는 것은 이성적 지지자들이고, 한 덩어리 엉겨붙는 것은 진영론 선악구도에 몰입한 팬들일 따름이다.

나를 포함하여 손석희 사장이 이끈 JTBC 뉴스의 그간 보도 행적을 대체로 지지해온 사람들은, 한가지를 명심했으면 한다: 오점을 보였음을 인정하되 아직 지지를 거두지 않는 것과, 지지를 거두지 않고자 오점을 정당화하는 것, 그 두 가지 사이의 커다란 격차를 인식하는 것이 진영론 선악관의 함정을 피하는 첫걸음이다.

_Copyleft 201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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