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약간의 문답

!@#… 웹툰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약간의 문답. 이화여대 영자신문 이화보이스와 지난 7월에 한 서면인터뷰 내용인데, 어떤 식으로 기사화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손쉽게 답을 내서 사운드바이트 뽑아낼만한 답변을 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왕 몇마디 적어놓은 것, 풀버전 공개.

1. 웹툰은 잉여스러운 학생들이 디씨인싸이드나, 웃긴대학과 같은 포탈싸이트에서 만화를 그리면서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웹툰의 시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웹툰을 웹연재용으로 창작된 만화(즉 종이책의 스캔 만화는 제외)로 정의내리고 시작해볼 때, ‘시초’는 90년대말 웹 대중화 초창기에 개인홈페이지에 (비)정기적으로 올라온 습작들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PC통신 시대에 소수의 아마추어 동인들이 온라인에서 그림을 공유하던 관습의 연장선에 있었죠. 그 후 개인홈피에서 시작한 딴지일보 같은 좀 더 ‘연재지면’화된 곳에서 몇몇 작품이 연재되기도 했고. 그에 비하면야 디씨갤 등은 한참 나중에야 나온 것입니다(물론 그것들 역시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 되어주었지만). 여튼 개인 홈피, 온라인매체(신문, 웹진 등), 게시판 커뮤니티 등에서 일정 정도 보편화된 후 포털서비스들이 돈을 들고 뛰어들기 시작했죠.

2. 웹툰이 문화로 그리고 웹투니스트가 직업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문화계층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유와 함께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문화: 웹툰을 읽고 즐기는 모든 이들. 악플다는 초딩부터 악플다는 점잖은 중노년 어르신까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니까 문화입니다.
직업: 그쪽 판에 어떤 식으로든 돈을 투자한 모든 이들. ‘직업군’으로 성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돈입니다. 위상이나 보람만으로는 아무리 대가 수준의 완성도를 이룬다고 해도 취미생활이죠.

3. 웹툰이 반짝 트렌드가 아닌, 지속적인 컨텐츠 공급으로 인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여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유와 함께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문화로 자리매김은 이미 했고, 돈 버는 방법을 고안하면 지속적 콘텐츠 공급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은 이뤘습니다. 그것을 이제 돈으로 환전해야죠. 돈이 없다고 해서 웹툰이라는 표현양식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겠지만, 돈이 걸려 있어야 더 많은 창작자들과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돈만 있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지만, 돈마저 없으면 한계가 있죠.

4. 웹툰 작가들중에 대학 재학중 취미로 연재를 시작하여 졸업이후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웹툰의 발달에 대학생간에 관련을 이야기 해주실수 있나요?

– 모든 비금전적 활동이 그렇듯, 취미로 하는 웹툰 창작 역시 적절한 자율적 여유와 무르익은 행동력이 둘 다 갖춰져야 하는데, 대학생 신분일 때 그 지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아직까지는 아주 약간 더 크다 정도. 하지만 중고교 재학중, 회사에서 일하는 중, 그냥 중년백수로 지내다가 취미로 연재를 시작하는 경우들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별로 큰 관련은 아닙니다.

—————— (2차 질문)

Q. 답변을 읽다가 질문이 생겼는데요, 우선 저희는 신문의 주요 독자층이 대학생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사를 통해 대학생들이 웹툰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조명하고 싶은데요, 대학생 독자들이, 초등학생, 혹은 직장인과는 다른 문화 계층으로써 웹툰에 기여한 점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대학생”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웹툰에 기여하는 점은 단언컨데, 없습니다. 특히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문화적 경계가 사실상 사라져가는 00년대라면 더욱 그렇죠. 확실히 직장인보다는 웹툰을 즐기다가 직접 창작에 뛰어들 여지가 많은데, 그 역시 디씨갤에 작대기 인간으로 공감툰을 올리는 정도라면 딱히 초중고 학생들과 역할이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대학생은 초중고생과 달리 그렇게 올린 웹툰이 인기를 끌면 프로 데뷔(즉 고료를 받는 지면으로 옮기는 것)를 하기가 계약면에서나 본인의 의지 면에서나 조금 더 수월하지만, 이 역시 딱히 대학생이라서라기보다는 법적 성인이기 때문이죠.

Q. 2번 질문이었던 웹툰이 문화로 그리고 웹투니스트가 직업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문화계층에 대해 다시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웹툰에 어떠어떠한 요소들이, 투자자들을 이끌었는지, 그리고 그 투자자들은 누구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포털서비스들이 그 조회수를 노리고 돈을 투자해서 연재지면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그게 가치 있는(혹은 그저 인기 있는) 문화라고 인식하게 되자 유료단행본을 구매함으로써 돈을 투자했습니다. 만화영상진흥원 같은 만화 전문 지원기관들이, 웹툰에 만화의 젊은 주류가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그쪽에 창작지원을 투자했습니다. 어떤 요소가 그렇게 했는지는 간단합니다: 어떤 인터넷상 공간이었든간에(디씨든 개인홈피든 어디든) 조회수가 높은 작품들이 등장했으니까요. 다른 요소들은 아무리 멋지게 들리더라도, 나중에 붙인 수식에 불과합니다.

Q. 그리고 웹툰이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즉 문화로써의 자리매김)은, 이미 이뤘다고 하셨고 또한 시작은 90년대 말에 시작 했지만 디씨갤이나 딴지 일보같은 곳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기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독자들이 그곳에 많이 모여들게 한 것/사건/계기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많이 보기 시작한 때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딴지 일보나 디씨갤에서 활동들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건가요? 포털사이트들이 뛰어들면서 유지를 하고 앞으로 이끌고 있다고는 하나 그전에 이야기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웹툰의 독자BOOM의 시작과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요소들이요.

* 독자들이 딴지, 디씨갤 등에 많이 모인 것은, 웹툰과 관계없는 흐름들이었습니다. 참여형 공간, 권위파괴형 패러디의 만발, 유머에 대한 문화적 강조 등등인데, 이조차 이미 하이텔과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에서 이미 무르익었던 것의 연장선입니다. 다만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서 새로 더욱 큰 히트로 이어진 것이죠. 당시의 웹툰들은 그런 문화적 코드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를 들어 김풍의 만화들은 아햏햏 문화를 더 보급하는 것에 일조했지, 아햏햏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나이듯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유머 문화와 별개로 존재했던 개인홈피 중심의 가벼운 수필 정서의 ‘에세이툰’들도 결코 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시적 감동이란 당시도 지금도 큰 주류문화니까요.

한마디로, 딴지, 디씨, 개인홈피의 에세이툰들 역시 ‘결정적 기여’가 아닌, ‘분기점’들입니다. 하나의 형태를 만들기 위한 분기점들이 쌓이면서 지금까지 오는 것이고, 각각의 것은 딱 그때 형태의 것에만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잡지형의 현재 포털 웹툰 연재 방식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미디어다음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그리고 동시대에 존재한 모든 다른 흐름들을 제치고 이제서야 “웹툰이 탄생했다”고 할 수는 없죠. “A이전에는 웹툰이 미미, A이후에 대폭발” 같은 손쉬운 ‘결정적 계기’는 없습니다 – 그런건 마케터들의 자아도취 속에서나 존재하죠. 웹툰의 인기는 어느 순간 빵 터졌다기보다, 최소한 PC통신 시절부터(익명의 독자투고와 소문 취합으로 채워지던 터미널 가판대의 유머잡지들을 생각하자면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계속 축적되어온 문화코드들이 여러 우연 속에서 이런 식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손쉬운 선 긋기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대학생’이라는 범주보다 ‘참여’라는 행동이 핵심에 가깝고, 어느 특정 매체, 특정 작품이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코드들의 연속된 축적’이 있습니다.

Copyleft 2011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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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웹툰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약간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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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pcold님의 블로그님 Posted on October 3, 2011 by acousticlife. This entry was posted in Rss and tagged 과거와, 대한, 문답, 약간의, 웹툰의, 현재에. Bookmark the permalink. « 김주혁 김지수 고양이이미지!!!! 완전 귀여미~~~^^ » […]

  5. Pingback by AdbyMe 애드바이미

    어디서 좀 배운 티 내려면 이런 거를 읽어줘야 합니다(…)
    웹툰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을까요? 나름 긴 역사가 있었군요.

    http://t.co/HJxeuAqD http://t.co/Eus8h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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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대학생”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웹툰에 기여하는 점은 단언컨데, 없습니다.
    => 인터뷰이 속상하게 만드는 인터뷰어의 전형… ^^;;

    뭐랄까 읽었을 때 인터뷰이 표정이 떠오르는 듯한 답변이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