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입장들을 직시하며 희망을 찾기 – 68년, 5월 혁명 [기획회의 324호]

!@#… 뜨거운 드라마화말고, 차분하고 다각적인 접근. 한국사회의 수많은 소재들도 이런 식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다양한 입장들을 직시하며 희망을 찾기 – [68년, 5월 혁명]

김낙호(만화연구가)

혁명은 어렵다. 독재세력의 탄압에 맞서야하기에 어렵다는 수준이 아니다. 기존 정권을 몰아낸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라면,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뚜렷한 목표로 합심할 수 있기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경계와 결과가 뚜렷하다. 하지만 권좌에 있는 저 놈들을 제거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라면, 사안은 훨씬 복잡해지곤 한다. 저들을 몰아내고 나서 온 세상이 과연 우리가 애초에 원했던 그런 세상인가. 아니, 애초에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합의를 하기는 했던가. 예를 들어 독재자를 몰아낸다는 느슨한 공동목표를 이뤄내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함께 목놓아 구호로 외치던 해방, 평등, 민주주의 같은 표어들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서로 다른 상을 그려내는 추상적 범주인지 직면하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전 사회규모의 혁명은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참여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데, 그럴수록 각자의 입장과 생각은 다르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것에 대해 무조건 모두 포용하고자 한다면 공동의 구심력이 흐지부지되어 동력을 잃는다. 무슨 추상적인 논변이 아니라, 한국의 87년 6월 민주화 혁명에서, 2011년 이집트 타히르 광장에서, 미국 월가점령 시위의 한복판에서 엿보인 모습들이다.

[68년, 5월 혁명](아르노 뷔로, 알렉상드로 프랑 /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휴머니스트)는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68혁명을 소재로 하면서 그런 다양성과 다층성을 정면에서 다루는 만화다. 혁명을 다루는데다가 낭만과 이상주의의 이미지가 강한 68혁명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감동의 투쟁 회고담으로 빠지기 쉬울텐데, 그런 방향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객관성을 강조하며 그 운동에 담겨 있는 정서들을 빼놓고 사건 스크랩북에 머무는 것도 거부한다. 다양한 시선과 회고들을 담백하게 병렬하고 현재 그들의 입장들을 합쳐내며, 혁명이라는 거대한 과정의 다면성과 다층성을 희망을 이야기한다.

68년봄 교외의 낭테르 대학에서 기성세대의 권력자들과 젊은 학생들 사이의 마찰을 드러내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며, 학생들의 집회와 점거 시위가 일어났다. 2차대전 이후 20여년이 지나며 빠르게 복구된 프랑스 사회에서, 보수적 도덕코드를 가지고 권위와 관습을 중시하는 전쟁 세대와 더 강력한 이상적 진보를 바라는 전후 세대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 시점에 불 붙은 도화선이있던 것이다(물론 그 이면에는 지역적, 계급적 격차 같은 물질적 기반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다루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전국적 학생 시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부의 대처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커지며 지식인, 시민들의 연대는 물론 결국 천만명이 참여한 노동자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즉 사회 전체가 흔들린 혁명 수준의 운동으로 확대되었는데, 이에 드골 대통령 정권이 의회해산과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꺼내며 결국 한달여만에 파업과 시위의 열기가 수그러들고 국무총리 퐁피두가 대선에 당선되어 혁명적 정권 교체나 제도 변경 없이 68혁명은 마무리되었다.

이 작품은 68혁명의 엄청난 야사를 새로 발굴한다기보다는, 역사적 맥락과 과정을 세밀하게 되짚는다. 그런데 특히 각 주체들의 입장과 흐름이 서로 구분되고 엮이는 설명을 탁월하게 해낸다. 최소한 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무정부주의로 나뉘어진 학생운동권이 실용주의 노선으로 손을 잡는 과정이라든지, 해방구를 지향하는 운동의 와중에서 운동권 내부의 남성적 권위와 여성운동의 시각차가 드러난다든지, 노동자 파업을 바라보는 운동권, 시민, 보수파의 다른 시선들이 마찰로 귀결되는 모습 등 그 복합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간명하게 설명해낸다. 어느 쪽이 옳았다라고 쉽게 손을 들어주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하나의 큰 사건 속에서도 어떻게 그런 다양한 입장들이 나타나고 상호작용했는가 복합적 지형을 그려낸다. 결국 그런 과정에서 혁명이 구심력을 급속하게 잃었고, 반대급부로 즉흥적 과격화가 이어지며 결국 자멸을 향했음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분열에 의한 실패 같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것을 위한 전개방식은 잘 짜여진 방송 다큐멘터리의 기법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실제 자료와 인터뷰, 극전개 등 여러 요소들을 위화감 없이 섞을 수 있는 만화 특유의 장점들을 구현하여 몰입감 높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대의 다양한 이들에게 68혁명(프랑스에서는 ‘5월 혁명’)이 무엇인가를 물어봤을 때 나오는 다양한 대답들로 시작해서, 주로 네 명의 화자들의 회고를 되짚으며 당대 사건들을 재구성한다. 당시 학생 운동권이었던 프로듀서와 미대 교수가 있고, 외부 목격자에 가까운 대학생이었던 교육자, 그리고 총리의 비서였던 보수주의자가 있다. 운동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과 정서의 흐름, 외부에서 본 사건의 확산과정, 혁명의 대척점에 있던 보수 기득권측에서 상황에 대처하고자 했던 모습들이 입체적으로 배치된다. 그림체는 사실적 묘사나 극적 과장보다는 간결한 카툰화법을 구사하는데, 언뜻 유머러스한 느낌마저 준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근엄하고 고뇌에 찬 발굴이라기보다는, 이미 일상에 뿌리박힌 무언가를 다시 슬쩍 성찰해보자는 식의 정서에 잘 어울린다. 실제로 이 작품은 68혁명을 겪지 않은 세대와 그 의미를 함께 나눠보고자 기획된 만화이며 이례적으로 르몽드 신문에서 온라인 연재만화로 공개되기까지 했다.

사건 전개로만 보자면, 68혁명은 뜨거웠으나 허무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그 후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그 허무와 한계를 화두로 삼아 권력 관계의 냉엄함과 지속성을 파고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화자들은 이 사건의 함의를 결코 가볍게 여길 생각이 없다. 그럭저럭 돌아가지만 갑갑한 세상을 거부하고, 더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사회로 당장 만들자는 꿈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었고, 급속하게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그간 지식인들이 논하던 추상화 수준과 영역 범위를 크게 넘어서는 여러 다양한 층위의 억눌려있던 문제의식들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다. 그렇기에 한쪽으로는 기존의 노동해방이나 보편인권보다 한층 일상화, 세부화된 성해방운동, 지방분권, 환경보호와 평화주의 같은 신사회운동이 이것을 계기로 팽창했다.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해방구에 대한 공동경험을 주어, 이후에도 계속 여러 방식으로 사회 진보를 추구해나갈 정서적 발전 동력이 되어주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오늘날의 여러 프랑스 시민들에게 68혁명의 의미를 질문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답변은 각양각색이다. ‘사랑과 평화’라고 대답한 이도 있다. ‘여성의 해방’도 있고, ‘아름다운 혼란’도, ‘위대한 지성인들의 시대’도 있다. 아마도 모두 정답일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벽돌이 되어줄 것이다. 다만 책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명심한다면 말이다: “넌 비이성적인 것에 조금 휘둘리기는 하지만, 근본은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68년, 5월 혁명
아르노 뷔로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알렉상드르 프랑 그림/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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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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