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대에 관하여 [싱크 14호]

!@#… 나는 공감보다 납득을 훨씬 중요시하지만 세상은 매우 자주, 그렇지 않다.

 

공감대에 관하여

김낙호(만화연구가)

인간과 인조인간의 흐릿한 경계를 허물며 걸작으로 칭송받은 SF영화 [블레이드런너]에서, 지구상에 금지된 인조인간을 색출하여 ‘은퇴’시키는(즉 살해하는) 형사들이 인조인간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판별하는 테스트가 있다. 보이트-캄프라는 명칭의 면접식 심리테스트로, 특정 질문들을 답변할 때 맥박이나 동공의 확장을 본다. 그런데 백발백중이라는 이 테스트가 결국 측정하는 것은 바로 공감 능력이다. 생물학적으로는 구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도 결국 인간만의 고유 속성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고 여겨진 것이 바로, 어떤 상황에 놓인 다른 존재에게 정서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가 여부였던 것이다. 단순히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을 넘어, 그 입장을 느껴볼 수 있는가. 물론 영화 내용상, 결국 뒤집히지만 말이다.

인간성의 근본이든 아니든, 확실히 공감대를 발휘한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인지처리를 필요로 한다. 내가 그 존재가 되어 그 입장에 처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기에 공감대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철저한 교육과 훈련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어떤 결속력을 만들어내어 더 크고 복합적이 된 사회를 유지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기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치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공동체라고 정서적으로 한 편이 될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공감의 힘과 효용 혹은 한계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가장 간편한 첫 걸음은, 공감대 형성을 주요 공략점으로 활용하는 작품들을 즐겨보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만화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일상에 대한 공감

공감대를 발휘하라고 호소하기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같은 사회에서 비슷한 문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다만 단순한 거울을 제시하고 끝나면 너무 일상적이기에 오히려 공감을 발휘하기 전에 관심이 생기지 않고, 공감할 만한 요소들을 던져놓되 그냥 지나쳐왔던 어떤 부분을 뚜렷하게 발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즉 넓고 보편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어 소구층을 끌어들이되, 세밀한 디테일과 뚜렷한 초점으로 그들을 붙들어매야 한다.

일상물의 성공이란 공감의 성공이다. TV드라마로도 인기를 모은 바 있는 [고독한 미식가](쿠스미 마사유키, 지로 타니구치)는 요리/음식만화에서 일상물의 요소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흔한 요리/음식만화들은 음식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해 각종 과장된 반응이나 대결의 박진감 또는 그 음식을 위해 투여된 극단적 장인 정신을 동원하는데,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차분하다. 중년 아저씨인 주인공 고로가 호들갑을 떨지 않고(그의 반응은 그저 머리 속에서 잠잠하게 이어지는 혼잣말에 불과하다) 그저 그 순간에 먹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줄 따름이다. 잡화 무역상 자영업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하는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적당한 식당을 찾아다니며 혼자 식사를 하는 이야기일 뿐인데, 특유의 담담한 인물표정과 풍경을 꼼꼼하게 잡아내는 그림체 덕분에 일상성의 공감대가 극대화된다. 물론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다른 문화적 뉘앙스가 담기기에 다소 공감의 한계가 있다.

이것은 다시금 일상물의 핵심 화두인, “누구의 일상인가”로 돌아가도록 한다. 그래서 최대한 넓은 독자층과 공감을 나누고 싶다면 정말 많은 이들의 공통 관심사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 중 손쉬운 해답이 바로 연애다. 짝을 만나 연애를 하면서 겪는 달콤함과 난감함, 혹은 짝을 만나고 싶어서 울부짖는 모습만큼 보편적인 고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 많은 이들이 우려먹은 소재인 만큼, 돋보이는 날카로운 안목을 선보이기가 쉽지 않다. [달콤한 인생](이동건)은 제목과 반대로 오히려 달콤함보다는 연애 당사자 및 주변인들의 치열한 잔머리를 최대한 깊숙하게 파고들어가는 것을 매력으로 하는 작품이다.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내면서 어미 하나, 이모티콘 하나에 담긴 뉘앙스를 세부적으로 따지는 집요한 모습이 무릎을 치며 공감의 웃음을 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화적인 부드러운 시적 감성으로 뭉개기보다는, 잔머리 대결과 서로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는 과정 속에서 결국 사귀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적당히 아름다운 환상이 만드는 추상적 허구의 공감대가 아니라, 신랄한 현실의 공감대다.

공감대의 복원과 단절

그런 의미에서, 어떤 대상을 공감할만한 상황으로 만들어 내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디테일이다. 단순히 집착적으로 세밀한 고증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에 있어서 그들이 그렇게 하게 된 맥락이 앞뒤가 맞는 세계 묘사가 필요하고 – 심지어 감정적으로 욱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 단순한 좋은 놈 나쁜 놈 이분법 같은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관계의 요소들이 맞물린 복합적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근본귀인오류’(자신의 행위는 외적 상황 탓, 남의 행위는 그 사람의 내적 성격 탓으로 돌리는 일반적인 인지 편향)와도 맞닿아 있다. 자신에게 가까운 대상에 대해서는 여러 상황 맥락의 복합적 작용들을 세밀하게 보고, 먼 타자에 대해서는 원래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고 단순화하는 속성을 거꾸로 뒤집으면, 복합적 작용들을 납득시키면 공감대를 키우고 근본이 다른 자들이라고 단순화하면 공감대를 단절시키는 셈이다.

[안전지대 고라즈데](조 사코)는 상호간 인종 말살로 얼룩졌던 보스니아 내전의 현장에서 그들조차 우리와 같은 사람들, 함께 사는 인류의 일원임이라고 공감대를 살려내는 작품이다. 이미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이었던 1차 인티파다 이후의 삶을 그려냈던 [팔레스타인]에서도 그는 그들의 삶이 단순화된 피해자가 아니라 현실적 삶의 속에 있음을 보여준 바 있는데, 한층 의도의 선악이나 과정의 잘잘못보다 결과의 끔찍함이 더욱 비극적인 보스니아 현장으로 안내한다. 민족간 증오의 고리는 시작도 끝도 없는데, 그들의 잔인한 결정들마저 한 구석으로는 ‘인간적’이다. 그런 모습들을 미화하지 않고, 비극을 온전히 바라보는 속에서 공감대와 객관적 거리감이 절묘하게 시소를 타게 된다.

삼성 직원 백혈병 문제를 다룬 [사람냄새](김수박)와 [먼지 없는 방](김성희)도 세밀한 상황을 끌어들이며 공감대를 극대화한다. 한 쪽으로는 인권에 대한 직접적 훈계나 어설픈 비유가 아닌 구체적 싸움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다른 쪽으로는 자신에게 일이 닥칠 때까지는 타인의 일로 치부하며 무관심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묘사해낸다. 단순화한 누군다 타인의 싸움이었다가, 자신과 가족이 당사자가 되자 비로소 그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억울하게 당하게 되는 자세한 내역들을 배워나가는 모습이 이 작품들의 백미다. 그 과정이 바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대로 일어나며, 공감을 끌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다만, 공감이란 여러 가지로 약점도 적지 않다. 우선, 상대에게 공감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저 자신의 경험을 억지로 투영한 것일 수도 있는데, 바로 상대에 대한 과도한 개입의 지름길이다. 혹은 이성적 이해의 정밀함을 건너뛰고 즉각적 공감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공감대를 발휘하는 것에 성공한 내 편과 그것을 못 해낸 상대편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 진영 사고가 생겨날 수 있다. 더 폭넓은 공감을 위해서는 반대로 적절한 수위의 이성 또한 항상 중요한 이유다. 이런 지점을 돌아보게 만드는 만화 작품들은 주로 종교 전도의 현장이나 정치성향이 극단적인 온라인 게시판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굳이 추천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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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Copyleft 2012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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