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만화 종이출판의 모범.
생활을 탐구하는 공감대 – 『탐구생활』
김낙호(만화연구가)
공감이라는 기법은 비단 어떤 작품이라도 어느 정도 의지하는 기법이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짧은 에피소드 방식의 웹 연재만화(속칭 ‘웹툰’)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활용되다 못해 아예 ‘공감툰’ 이라는 유사 장르로 굳어지고 있을 정도다. 하나의 도식이 된 공감 만화는 일반적으로 1인칭 자전적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생활 속 어떤 순간을 등장시키고는 “다들 이런 적 있지 않나” 하고 반문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크게 신경쓰고 살지 않거나 혹은 사실은 신경 쓰고 있지만 굳이 따로 누군가와 이야기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닌 이야기일 때 효과가 더 강력하다. 그 결과 “아 맞아”라고 이마를 치면서 즉각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장르는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빠르게 호응을 얻어서, ‘엄마친구아들’(만화『골방환상곡』에서 퍼트림) 같은 키워드를 크게 유행시키곤 했다.
그런데 독자와 작가간의 긴밀한 경험 동조로 인해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장점의 반대편에는, 여러 약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어 구체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는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대단히 피상적이 되기 쉽다는 점이 있다. 인기를 끌수록 폭넓은 대상층에 소구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생한 공감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생활 경험에 기반하게 되지만, 약간만 연재가 지속되도 삽시간에 소재가 떨어지며 범위가 한정되어버리기도 한다. 아무리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한 사람의 직접 경험의 폭이란 원래 좁기 마련이고, 더욱이 이런 공감대를 센스 있게 펼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라면 더욱 경험치 고갈이 빨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재만화로서 우수한 공감 만화가 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단순한 생활경험 제시, 잡상에만 스스로를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소한 상상력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 둘째는 너무 스스로를 소진시키지 말고 적절한 순간에 대단원을 짓고 하나의 큰 작품으로 완성을 보는 것이다.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메가쇼킹만화가의 발로 그리는 탐구생활 1학기』(메가쇼킹만화가/애니북스)은 공감 만화라는 장르에서 가장 모범적인 완성도를 이루어낸 특급 개그물이다. 이 작품 역시 원래는 포털 사이트 ‘파란’에서 웹툰으로 정기연재된 것을 묶어낸 것으로, 일견 웹에서 인기 끈 작품을 묶어내어 출간한 수많은 다른 책들의 행렬 가운데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애초에 웹에서 연재할 때도 반신반의했던 것이, 황당한 상황에 대처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상황개그물로 명성을 쌓은 작가가 난데없이 서사 없는 1인칭 에세이식의 만화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여타 유명 극만화 작가들의 웹 연재 1인칭 에세이물들의 사례를 생각할 때 약간 웃음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저 그런 소소한 에세이식 소품이 되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탐구생활』에는 여로 소소한 상황 속에 작가의 온갖 망상 아이디어들이 잘 녹아있는 것은 물론, 독특한 정신세계와 공감 형성용 보편성을 절묘하게 균형 잡아 나가는 실력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전매특허인 살아 움직이는 말장난 역시 기본으로 깔려있어서, “텍사스 소떼처럼 감동이 밀려온다”, “중랑구 면목이 없다” 등 주옥같은 비유와 거침없이 연결되는 동음이의어의 쾌감이 유쾌한 웃음을 주었다. 오히려 작가의 유명세를 가지고 왔던 상황개그물보다 더 뛰어난 면모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원래 리플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거대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만화연재게시판에서 스타로 발돋움했던 전력을 살려서, 각 에피소드의 말미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리플 제안을 던져주는 도발(?)적 발상까지 갖추었다. 만화작가들에게 피드백의 기쁨이자 악플로 인한 정신적 상처의 전당인 리플란을 오히려 작품의 일부로 활용해버리는,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재미있는 실험을 한 셈이고, 심지어 성공적이기까지 했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이 장르의 많은 여타 만화들이 그저 상황을 던져주고 공감을 갈구하는 도박을 걸 때, 『탐구생활』은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집요한 상황 해석에 들어가곤 한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로 뽑는 완충 비닐 포장재 (속칭 ‘뽁뽁이’) 터트기에 대한 탐닉이 좋은 예다. 단순히 뽁뽁이 재미있어 혹은 뽁뽁이 터트리다가 이런 상황 있지 않나 하고 던져주는 것에 멈추지 않고, 한꺼번에 터트리면 안된다고 버럭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라든지 효과적으로 터트리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고민, 중독성을 끊기 위한 노력의 일화 등 사소한 것에 쓸데없이 깊이 파는 모습으로 결국 공감을 자아내고 만다. 혹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사귀던 여성과 이별하는 자리에서 비싼 커피값이 아까워서 떠나는 여자를 잡으러 일어섬과 동시에 뜨거운 커피를 원샷한 사람의 일화처럼, 굳이 엽기로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 속의 쪼잔함까지 살짝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가학적 웃음이 아닌, 같이 보듬어 웃어주는 유쾌한 폭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이다.
그 화제의 작품이 이번에 종이 단행본으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첫 의문은 웹이라는 매체는 물론 그 문화에 특화되었던 이 작품이 책이라는 방식에서 얼마나 의미 있게 나와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세심한 제작으로 정면돌파했다. 책이라는 포맷에 맞추어 칸의 가로세로 구성을 다시 했는데, 서사연출이 아니어서 더 유리했던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근래 본 웹툰의 종이단행본 출간물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작가의 기존 단행본들마저도 아무리해도 그저 웹툰 인쇄집에 불과했다면, 이번에야 비로소 쓸만한 ‘책’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재미나 인기에 비해서 단행본으로 만들어졌을 때 작품의 품질이 항상 크게 떨어지곤 했던 불운의(?) 작가 메가쇼킹만화가지만,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밀도 높은 응집력을 자랑한다. 책의 구성은 작품의 각 에피소드 뒤에 원래 웹 연재시 포함시켰던 리플 토론 제안인 ‘연습문제’가 붙어있고, 당시의 리플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것들을 ‘모범답안’이라는 제목으로 연결시켜 놨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각종 놀이 부록이 있는데, 점선 그림 잇기, 이야기 만들기, 따라 쓰기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의 성향으로 보자면 당연한 것이지만, 따라쓰기의 단어들은 “남도미역 같은 생머리” 등 장난 투성이다. 즉 마치 초등학교에서 방학에 내주는 탐구생활 숙제집 같은 형식을 패러디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잡념들을 탐구하는 웰메이드 개그만화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웹툰이라는 원형보다 책으로서 보기에 적합하게 잘 만들어진 완전히 새로운 업그레이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그 어느 구석에도 유희정신이 충만하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다. 공감만화라는 장르는 물론, 지난 몇 년 사이 읽은 책 일반을 통틀어서라도 이 정도로 속속들이 유쾌한 작품은 오랜만이다.
『탐구생활』은 유머에 굶주린 생활을 사는 사람들 즉 대다수의 생활인들에게, 서가에 꼽아놓고 두고두고 읽혀 마땅한 책이다. 찰나의 공감이 아닌, 유머로 맺어진 은근히 성찰적인 동조 속에서 말이다.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탐구생활 1학기 메가쑈킹만화가 지음/애니북스 |
오….가로 세로 재배치라.
!@#… nomodem님/ 엄청난 멋을 부렸다기보다, 책으로서 잘 읽히도록 1열 세로읽기에서 2열 가로 읽기로 바꾸었다든지 하는 식입니다. 원래부터 종이책 용으로 그렇게 그렸겠거니 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