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질이라기보다는 해코지 [만화 톺아보기/ 미디어오늘 130428]

!@#… 익숙한 것으로 포장하여 공감하는 것과 일탈적 사건으로 포장하여 화제를 모으는 것 사이에서, 매 이슈마다 가장 성찰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의식적 균형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보다 큰 이야기를 언젠가 정리하기 위한 포석. 게재본은 여기로.


진상질이라기보다는 해코지 [만화 톺아보기]

어떤 사건이 폭넓은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공분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화를 내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극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조건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고위 정치인이 특정한 법제도를 고도의 수법으로 돌려서 어떤 식으로 미래의 자리를 마련했고 그런 것은 좀 난이도가 있지만, 국회에서 주먹질을 했다, 이런 것은 바로 와닿는 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가장 확실하게 공분을 끌어모을만했던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포스코 모 임원의 기내 난동 사건이다. 이 사건은 흔히 라면 행패 사건으로 인식되며 널리 퍼졌는데, 반복해서 라면의 품질에 불만을 표시하며 급기야는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알려진 사건이기에 확실한 자극적 소재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포스코와 라면을 연결시킨 패러디 그림들이 인터넷상에 유행처럼 출몰하고, 이 소동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은 바로 라면 만드는 농심이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동성 사안들이 그렇듯, 여기에는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갈 여지가 있다. 하나는 그런 식의 행패를 부리는 것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음을 직시하며 감정노동의 문제, 항공서비스에서의 승무원 대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그런 것을 지목하는 모 주요일간지의 기사에서조차 ‘항공사의 꽃’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며 학을 뗐다). 그런데 또 다른 하나는, 기사화 과정에서는 거의 생략되거나 미미하게 넘어간 사건의 어떤 한 부분에 있다. 해당 임원이 일으킨 소동의 첫 발단은, 탑승하고는 옆자리를 공석으로 바꿔달라고 부당한 요구를 했고,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그 때부터 모든 서비스에 대해서 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라면을 시키고 퇴짜 놓는 행위의 반복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라면에 대한 ‘행패’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에게 특혜를 봐주지 않은 기내서비스 전체에 대놓고 집요하게 ‘해코지’를 한 것이다.

집요한 해코지라면, 만화 [올드보이](츠지야 가론, 미네기시 노부아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판 덕분에 잘 알려져있듯, 내용은 한 남자가 영문도 모르고 15년간 사설 감옥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나와서 누가 왜 자신을 가뒀다가 풀어줬는지 알아내며 복수를 하는 줄거리다. 하지만 가해자의 동기가 장엄하게 비극적이고 정교한 영화판과 달리, 원작 만화판은 훨씬 ‘찌질’하다. 지극히 사적인 어떤 어긋남에서 벌어진 원한,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만족이 주어질 때까지 상대를 끝없이 괴롭히는 가학성의 향연이 펼쳐질 따름이다. 사적 불만을 원한으로 승화시켜 집요한 해코지를 하는 이들의 집념은 참으로 놀라울 때가 있다. 품격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위신은 팽개치고, 굴복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권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완전히 브레이크가 풀리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단순한 집착과 지배욕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비행기 안에서의 손님-승무원 관계가 아니라 일반 업무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면 어떨까. 갑의 위치에서, 을 입장의 기업이나 고용인에게 사적 특혜를 요구하고, 그것을 원하는대로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당장 주어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해코지를 나선다면 말이다. 한쪽으로는 섬뜩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매우 익숙한 이야기가 된다. 바로 흔한 ‘갑질’의 패턴인 것이다. 군부대에서 사병을 ‘테니스병’으로 동원하는 모습부터, 무슨 골프회원권이라든지 각종 사적 특혜가 오가는 기업 접대질의 현장까지 각자의 머리 속에 사례들이 수십가지 쏟아질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갑질의 추잡스러움이 캐리커처에 가까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이왕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을 라면 패러디로서 즐기는 것을 넘어, 이 사회에 만연한 갑질에 대한 경각심으로 이어지도록 연결시켜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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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연재 칼럼. 웹툰 짤방 출판 만평 안가리고 그 시기에 등장한 어떤 떡밥 사건을 생각해보기에 도움되는 만화 작품을 연동시켜보는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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