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보고 놀라자 [한겨레 칼럼 130429]

!@#… 게재본은 여기로. 안 바꿔주잖아, 얼굴사진… (지금의 심경은 대략 이런 식)

 

국정원 보고 놀라자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불상사를 겪고 나면 그런 일을 다음에는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민감해진다는 의미일텐데, 현실은 꼭 그런 것이 아니다. 자라를 보고 또 보다보면 오히려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자라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해지는 지경에 이른다면 최악의 경우다. 자라에게 물리면 아프니까 자라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자는 전제는 사라지고, “거봐, 솥뚜껑이 아니라 자라 맞지? 자라들은 늘 나오더라고” 정도를 파악하고는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관심을 적당히 떨쳐버린다든지 말이다.

한국사회에 있어서 그런 자라 가운데 하나가, 정권의 감시와 검열이다. 현대사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 각종 독재 정권 기간 동안 늘 당해온 부분이고 그 피해 또한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건강한 민주제 사회의 측면에 대해서도 결코 경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호되게 당했던 사회치고는 정치적 감시와 검열이라는 사안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하다.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는 국가“보안”법 같은 큰 틀이든, 개별 정치 사건이든 그렇다. 2년전, 야당 당대표실 도청의혹 사건을 한번 다시 기억해보자. 여당 의원이 어떤 녹취록을 바탕으로 야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했는데, 그 내용은 당대표실에서 이뤄지고 따로 공개된 바 없었기에 도청이 아니면 입수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영방송 기자가 연루되어 제공한 것으로 정황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런 노골적으로 ‘워터게이트’스러운 사건조차, 잠시 들끓던 여론이 식자 수사가 흐지부지되며 누구 하나 공식적 책임을 지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해당 의원조차 정치적 자중 같은 의례적 과정도 없이 바로 이듬해에 문방위원장이 되었다.

그런데 현재 진행중인 어떤 사건은 더욱 기막히다. 알고 보니 국정원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국정원장의 지시와 직원의 임무 수행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에 현 정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반대하는 정치적 댓글을 열심히 달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건이 들통 나서 쟁점화되자, 내부제보자를 색출하여 파면이라는 방식으로 적극적 해코지하였다. 수사에 들어갈 무렵 사건의 책임자는 국외로 도피했다. 물론 온라인 게시판의 방대한 게시물 양과 거친 질을 생각할 때, 대중 여론을 움직인다는 결과를 그들이 원하는 만큼 얻어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하지만 대중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만큼은 충분히 증명되었고, 국가 기관이 정권에 대한 복속을 자처하며 감시, 검열에 나섰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여론의 관심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혹시 우리는 이미 “아, 국정원이 댓글질에 개입했구나. 역시 국가기관은 한 통속이고 뒤에서 조작을 하는 것 맞구나”하며 확신의 만족감을 얻은 후 다른 이슈로 관심이 건너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 치사하지만 당연한 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감시와 검열이 민감한 상처였던 한국 사회이기에 더욱 그런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런 짓을 한 자들, 그런 것으로 이득을 본 자들은 두고두고 크게 경을 친다는 사회적 교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겹다 싶을 정도로 계속 끄집어내어 후속 보도를 하고, 관련 내용들을 추천하고,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당연하게도 정계가, 그리고 여론의 본질인 개개인들이 모두 함께 할 몫이다. 솥뚜껑을 볼 때마다 놀라는 것은 호들갑스럽지만, 자라가 나왔는데도 무심하면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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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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