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의 이 이야기에서 약간 다른 논점을 하나 더 끄집어낸 글. 학교폭력에 대한 역치를 낮추고, 학교 사회의 폐쇄성을 완화하는 두 논점을 묶는 핵심은 사실 학교의 역할을 무슨 전인교육 같은게 아니라 ‘사회화 훈련’으로 놓는 것이라 보는데, 뭐 딱히 좋아할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게재본은 여기로.
집단 괴롭힘 범죄에 대한 역치를 낮춰야 한다
주기적으로, 그러니까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정도의 비극이 일어나면, 잠깐 관심을 끌다가 사라지는 것이 바로 학교내 집단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다. 지난 주 역시 대구에서 한 학생이 유서에 가해자들의 이름과 CCTV를 늘려달라는 구체적 내용 등을 남기고는 세상을 떠났고, 관심이 모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거쳐 왔거나 거치고 있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해 가깝게 이입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죽음으로 이어진 극단적 사례에 대해서 혀를 차고 지나가거나 적당히 전인교육 같은 것을 한번 부르짖고는 대충 넘어가곤 한다. 가끔 교사의 권위니 가정의 붕괴니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이니 하는 거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은 지속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상황의 체계적 개선이 더딘 것은 바로 학교내 집단 괴롭힘을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정하며 접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회에서든 권력의 서열은 발생한다 – 처음에는 개체의 능력 격차로, 나중에는 축적된 밑천의 효과로 말이다.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한번 생겨난 권력의 서열은 공고하며, 정교한 상호 견제의 장치를 심어 넣기 힘들다. 그리고 학생 사회는 신체적 강함이나 돈의 영향력 등이 날 것으로 작용하는 원시적 권력 서열이 있고, 사회 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또래집단이라는 속성 때문에 여느 섬마을 노예 사건의 공간 못지 않게 폐쇄적인 구석이 많다. 골목대장 행세를 하는 불량 청소년 한 둘 쯤 정학시킨다고 한들, 폐쇄집단을 움직이는 권력 틀이 그대로라면 그 빈자리는 빠르게 다시 채워지고는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괴롭힘의 조직화가 생겨날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집단 괴롭힘은 행사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세계 각지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며, 뿌리 뽑는 것이 아니라 완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선진적 협동 교육이 확실한 해결책이라면 스웨덴에서 [렛미인] 같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었을까.
집단 괴롭힘을 완화하기 위해서 한 쪽으로 필요한 것은 학생 사회의 폐쇄성을 계속 깨는 것이다(특히 독립적 신고 및 전문 대처 체계보다 “학교 안에서 어떻게든 알아서 처리하는 것”을 중시하는 교육 행정이 개조 대상이다). 그런데 동시에 모든 대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집단 괴롭힘은 어떤 것도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공유다. 이런 부분을 북리뷰 만화 [워리의 북렐름](남명희)의 한 화가 잘 정리하고 있다. 자신의 초등학교 당시 집단 괴롭힘 피해 경험을 회상하며 레이첼 시몬스의 [소녀들의 전쟁]이라는 책을 소개하는데, “침묵이 조용하다고 하찮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무시무시하죠”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일련의 내용들을 거치며, “괴롭힘과 괴로움이 보기에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어처구니가 없더라도, 사소한 일이 아니며 살면서 겪는 과정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점을 지목한다.
학급의 동급생에게 빵을 사오는 소위 빵셔틀이 학교친구에 대한 친분 따위가 아니라 사회적 폭력임을 학생 사회 바깥에서 심각하게 인식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여러 명분을 붙여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돈을 받아내는 것이 ‘삥 뜯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강도질임은 과연 지금도 충분히 공유된 전제인 것인가. 주먹질이나 옷 벗기기 같은 행위까지 악화되기 이전이라도, 어떤 강함을 구심점으로 뭉쳐서 다수의 묵시적 방관 하에 수탈 대상자를 지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규제 대상이라고 선생과 학생들이 인식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CCTV 해상도를 높이는 것도 뭐 한쪽의 방향이겠지만, 집단 괴롭힘이라고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훨씬 역치를 낮춰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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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연재 칼럼. 웹툰 짤방 출판 만평 안가리고 그 시기에 등장한 어떤 떡밥 사건을 생각해보기에 도움되는 만화 작품을 연동시켜보는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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