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까지도(!) 계속 연료를 공급받고 불타는 촛불시위 정국이,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한지 오역까지 방치하며 서두른 고시 발표 강행 때문에 뭔가 또다시 전환점이 이뤄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capcold에게는 더욱 분노하고 뒤집으라거나 당장 시위를 그만하라고 할 생각도 충분한 이유도 없다(결정적으로, 여기서 불타오르라고 타는 것도,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도 아니니). 다만 ‘왜’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집요하게 매번 점검하고 넘어갈 필요는 항상 있다. ‘익숙해지면서’ 항상 가장 먼저 날라가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더, 생각의 토막들. 써놓고 보니 각 길이가 토막들이 아니다.
!@#… 토막 하나. 소통행위로서의 시위를 이야기할 때는, 실제로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시위가 아닌 다른 유효한 제도화된 메시지 전달 방법이 없는 경우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귀찮은 선택이라는 것. 둘째, 시위는 그 자체로 (쌍방향) 소통이라기보다, 막혀있는 일방향성을 뚫기 위한 도구라는 것. 마치 노조가 그 자체로 진보가 아니지만 진보를 위해서 필요하고, 페미니즘은 얼마든지 남성우월론만큼이나 막나갈 위험이 있지만 그 자체는 양성평등을 위해 필요하고, 내 반대자의 의견은 개새끼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필수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시위는 쌍방향 소통의 장을 촉구하는 것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상대가 ‘듣기’ 시작하면 이미 역할을 다한다. 유감스럽게도 시위에는 감정적 차원이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어서 상대가 듣기 시작하면 오히려 본격적으로 피치를 올려서 불타오르곤 하지만, 그때부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명분으로 잘 휴전을 맺나”다. 승리도 굴복도 아니라, 휴전이다. 길거리의 전쟁을 휴전시키고, 냉전의 끈질기고 음흉한 협상과 외교와 조율의 차원으로 돌입해야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감시하고, 제도적 틀로 옭아매고, 여론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이번 건에서 청와대는 여하튼 시위대의 목소리에 반응을 했고, 그들이 가진 모든 카드를 썼다. 물론 그들이 내민 결과물이 얍삽하고 말장난같고 아직도 배고프고 그건 뻔한 이야기지만, 그게 애초부터 그들이 가진 모든 카드였다. 대운하 포기마저 카드로 내밀었을(!) 정도다. 국민들을 만족시킬만한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가진 – 아니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던져줬다. 이 주장이 납득하기 힘들다면, 아직 ‘바보’라는 키워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더 털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그 생난리를 다 쳐놓고 조기 고시 발표까지 해놓고도 정작 그 서둘렀다는 타이밍은 미국의 이목이 (남한은 그 과정에서 듣보잡을 자처한) 북핵 해결 건으로 모조리 쏠렸는데 그것 하나 계산에 못넣었을 정도로 외교라는 분야에서 바보거든. 한번의 강렬한 빳따질로 교정되는 꼴통은 없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집요하게 감시하고 관찰하고 가이드해야 될락말락이다. 바보를 말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그런 각오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소비자운동의 시동을 걸자, 라는 방향도 좋다. 당신들의 길지 않았던 통치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야매를 고소해주마, 라는 방향도 좋다. 유효한 소통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을 제도화하자, 그러니까 그걸 할 의원과 그의 당을 확실하게 지지하자, 라는 방향도 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서 시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승리의 잣대가 아니라 휴전의 명분과 냉전을 위한 전략이다. 매번 시위대로서가 아니라, 국민으로서 사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게 마련될 때까지는 계속 길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 토막 둘. 국민이라는 주인이 정부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채찍과 당근이다. 길거리 시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채찍이다. 그런데 채찍은 실질적 결과로서의 피해가 없으면 그냥 버텨도 무방하다. 문자 그대로 ‘비가 오면 피한다’ 정도. 게다가 채찍보다 당근이 유효하다는 것은 이미 보편적 지식이 된지 오래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노무현 탄핵 당시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 것은 촛불시위가 아니라, 촛불시위로 퍼진 여론이 만들어낸 총선 결과다. 이번 촛불정국도 그나마 이명박 정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비폭력 집회의 감동이 아니라, 보궐선거 결과다. 당근을 못먹은 것을 보고, 다음 당근만큼은 먹고 싶어서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무척… 당근이 없다. 지방선거가 2년 후라서 한나라당에게도 당장의 당근 기회가 없지만, 이 분은 더하다. “나는 대통령, 당이고 정치고 이미 초월” 사고방식을 표명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한번 하면 땡이고, 그 이후를 생각해야만 하는 한나라당에게 마저도 별로 애착이 없음이 항상 새어나온다.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이 당근? 그런 거 없다. 좋은 현대건설 CEO로 기억되는 것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좋은 서울시장으로 기억되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듯 말이다.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그를 지탱하던 유일한(?) 당근은 어찌보면 유년의 꿈(…) 한반도 대운하였는데, 그 당근을 이미 이번 정국 돌파를 위해 내놔버렸다.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정치에 부여할 수 있는 당근의 시스템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대통령은 단임제, 의회나 지방자치단체 선거도 주기가 랜덤하게 돌아가서 평가의 의미가 약하지, 모든 정책 결정은 물론 정치 토론마저 선거기간을 피해서 이루어지지… 당근을 최우선 염두에 두는 당근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한다면, 그런 쪽이다. 장기적으로는 건전한 사회개혁, 단기적으로는 ‘미래가 없는’ 현 대통령이 급속히 (더욱) 꼴통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 토막 셋. 과정에서 벌어지기에 종종 혼동되곤 하지만, 시위와 폭력은 별개다. 시위는 소통을 위한 요구고, 폭력은 적을 부수겠다는 강제력이다. 폭력은 이길 – 즉 적을 폭력으로 완전히 굴복시킬 – 자신이 없으면, 굳이 소통효과를 방해하면서까지 동원해야할 이유가 도저히 없다(얄궂게도, 이 명제는 시위대와 진압세력 양쪽에 적용된다). 그럼 때리면 맞으란 말이냐? 그럴리가. 도망가란 말이다. 도망갔다가 또 나오라는 말이다. 강고함보다 집요함, 심지어 길거리로 못나온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주장을 나오게 하는 것.
시위에서 폭력을 쓰는 것은 독립선언문 낭독을 하면서 옷을 홀딱 벗는 것과 같다.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든지 간에, 당신이 어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어떤 폭넓은 집단의 목소리를 표현하든지 간에, 얼마나 절실한 몸짓을 했든 간에, 모든 이목은 홀라당 벗었다는 것 하나에 집중된다. 그 문제점을 이해하고 있기에 촛불시위라는 형식 자체가 탄생했던 것이고, 특히 이번 2008년의 시위는 초반부터 비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만트라처럼 되뇌였던 것. 여러 일각에서 그 전제를 벌써 망각하고 폭력불가피론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기억력’을 담보하지 않고 ‘집단지성’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에 대한 반증이다. 길거리의 흥분으로 소통 채널 확보라는 진짜 목표를 잊고 막장 테크트리를 타기까지 학생운동은 87년 이후 97년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과정을 두달 기간으로 압축 반복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기억한다면”.
!@#… 토막 넷. 시위현장에 있지 않을 때, 하지만 시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짬이 있을 때 어떤 식으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까. 광우병 소문이나 시위 사고 풍문들을 확인도 없이 퍼나르거나, 그냥 앉아서 시위에 미지근하거나 반대하는 이들 욕만 끄적이며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순간들이다. 뭐 여러 좋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사실 별 것 아닌) 한 가지 생각법을 소개해볼까 한다.
이번 촛불정국은 여러모로 ‘발생적‘(emergent)이다. 촛불좀비라고 단순화하는 멍청이들도, 진보의 민중이 분연히 일어났다고 착각하는 자뻑들도, 오해의 깊이만큼은 아직도 배후를 찾고 있는 어떤 곤란한 분들과 맞먹는다. 이번의 엄청난 소요사태는 이미 알려져있듯 무척 이슈가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는데, 이건 무슨 진보의 종합 콜렉션을 시도하곤 하는 민중대회의 정서와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개별 ‘사건‘들이다. 살수차가 떴다, 고시를 했다, 대운하팀이 들통났다, 대변인이 술쳐먹고 브리핑했다… 구체적인 분노와 전환점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 즉 시위현장에서 구호로서 외치게 되는 것은 ‘이슈‘다. 광우병 공포, 대운하 반대, 민영화 반대, 조중동 불만, 경기하강 불만, 언론장악 반대, 폭력진압 반대, 못생겨서 반대… 이슈들은 모두 각각이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각각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불만, 건강에 대한 불안, 민주적 소통 지향, 독립국가의 주권 등 ‘가치‘에 기반한다. 즉 사건, 불만의 이슈, 가치체계라는 3가지 차원이 서로 맞물려 있다. 사건에 대한 분노는 같은데 이슈도 그 하부의 가치체계도 전혀 다른 경우가 많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그런데 하필이면 이 모든 것이 우연히 한꺼번에 맞물린 지점이 “광우병 쇠고기를 개방한 이명박 반대”(유감스럽게도, 언급하기도 귀찮지만 광우병 담론에 종종 붙어다니는 비과학적 불안과 어거지 위험 근거의 끈질김은 전설의 프리온급이다)라는 최대공약수였을 뿐이다. 그 결집이 사라지면 – 명박산성에서 사죄의 큰절을 하는 쇼킹한 굴복 퍼포먼스라든지 – 다시 산산히 흩어진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해할만한 덩어리 만들기다. 닥치고 세상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니까 진보 혁명으로 뒤집자 그런 거 말고, 과연 자신이 어떤 것에 찬성하고 어떤 것을 반대하고 그런 것들이 어떤 차원에서 서로 엮이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우선은 사안들을 자기 블로그라든지 한 자리에 펼치고, 각각에 대해서 자신의 현재 생각을 나열해보는 것도 좋다. 큰 세계관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고, 한번 개별 사건 부터 이슈를, 가치관을 하나씩 거슬러올라가 보시길. 사안으로부터 자신의 성향의 덩어리를 ‘발생’시키는 실험을 권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각자가 자신의 지향적 위치를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기초이자, 필요에 따른 연대의 첫걸음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하면 되겠지만, 몇 가지 참조사례를 추천한다: 예1, 예2.
!@#… 토막 다섯. 그건 그렇고, 한나라당의 현 지지율로는 견제고 반대고 자시고 택도 없다. 한자리수로 떨어져야 하는 것은 한자리수로 떨어지면 정말 위기감을 느낄 세력이어야 효과가 있고, 그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아니라 정당의 지지도다. 그런데 여러 정당들이 같이 지지율이 낮으면 더욱더 효과가 없다. 정당의 순위가 크게 바뀔 위험이 없다면 그 어떤 당근도 채찍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에너지의 절반만 할애해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떨어트리고, 그 한나라당을 싫어한다는 에너지의 절반만 할애해서 정말로 당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가깝게 반영하는 당을 지지하라. 선거때만 후보 보고 한번 반짝 그런거 말고, 당원으로 가입하고 당비를 내고 내 당비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라(월드컵의 반짝 축구열풍과 대중적 무관심속 지지부진 유소년 축구와 K-리그를 보면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지 않나). 그게 가장 간단하고도 상식적인 진짜 당근이자 채찍이다.
!@#… 토막 여섯. 백날 조중동 본사에 스티커 스팸질을 하든 덩을 뿌리든 아무 소용없어요. 미화원분들, 경비용역 청년들만 고생하고. 광고중단운동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발상이지만, 많은 이들의 풀뿌리 움직임일 경우는 정당한 소비자 운동과 악질적 협박(황우석 사기 사건 당시 PD수첩 광고 취소 사태 기억하시는 분?) 사이의 미묘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기가 무척 힘들답니다. 그러니까 그 에너지의 절반은 여러분이 읽고 싶으신 언론매체에 투자하시고, 나머지 절반은 권언유착을 위한 최강의 교두보 최시중 방통위원장 경질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할애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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