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1주년시위 단상 토막들

!@#… 토막 하나.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capcold가 그 이야기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서울시 공무원들의 행사 기획력의 끝간데 없는 무능이다. 요즘 같은 정권불신 시국의 무려 노동절 + 2008촛불시위 1주년이 겹친 주말에, 관제 축제행사의 개막식으로 서울 도심 공간들을 독점하겠다고? 어떻게 하면 자기 손 더럽히지 않고 더 행사를 효과적으로 망칠 수 있을까 열심히 연구라도 한 듯. (…물론 그 축제 무대에 난입한 것 자체는 작년의 “청와대로 가자!” 만큼이나 황당한 뻘짓이라고 보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 토막 둘. 언론과 기타 미디어에 넘치는 “폭력시위”라는 용어를 “시위 중 폭력행위”로 고칠 수 있느냐가 담론 싸움의 관건이다. 시위 중 폭력 발생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정당화하는 것도 에러다. 시위는 시위,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 가운데 폭력은 폭력. 하나의 (부작용) 요소로서 분리해내고 관리 대상으로 격리시켜서 시위라는 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시위 자체를 가로막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내심 상당히 싫어하는 세력들을 제대로 바보로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진압의 경우도 “진압 중 폭력행위”로 구분하여 최대한 실제 책임자 개인들을 특정화하고 확실하게 책임지우는 방식이 바람직. 경찰들이 시위 중 폭력행위자들을 채증하여 개인 추적한다면, 진압 중 폭력 행위 경찰도 특정화해서 안 될 것이 뭐 있겠는가(그들도 바로 그런 것을 우려해서 한껏 명찰 가리고 모자 눌러쓰지 않던가). 다만 찌질한 사이버’테러’가 아니라, 법적 고소를 해야지.

!@#… 토막 셋. 언론노조의 총회까지도 포함된 그날의 집회들을 무력봉쇄한 것은 기자 연행 아니면 숫제 기자들에게 몽둥이 휘두르는 포토제닉 사진들과 경찰의 조직적 집회방해 정황의 기사화를 불러왔다. “기자는 나오라“고 했던 작년 상황보다도 더욱 멍청해진 셈인데, 현재까지는 사업적 이해관계(정치적 이해관계조차 그 일환에 불과하다) 때문에 정권에 착 달라붙은 언론사들도 이 추세가 더 극단화되면 과연 어찌할지 좀 기대된다.

!@#… 토막 넷.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역시 capcold는 현 시대에서 시위의 소통효과를 비용 대비 효용 측면에서 이전부터 그다지 높게 치지 않고 있다(클릭, 클릭). 게다가, 원래 시위현장 자체의 기억은 휘발성이거든. 정기적 거리축제든 일상 속 뱃지 착용이든 매체 선전이든 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소통 방법을 취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쪽을 추천하겠다. 무엇보다… 투표행위, 상시적인 특정 정치행위 지지(정당 혹은 단체 후원, 법안 추적 등) 같이 실제 정책 개입에 더 가깝게 다가서는 것들. 혹은 숫제 그런 방법 자체를 더 만들도록 종용하고.

!@#… 토막 다섯. 이왕 이번 시위 상황의 여러 인위적 불상사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이 (이례적으로) 약간은 되살아난 김에, 당시 몇가지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본다. 그러고보면, 캡콜닷넷은 과거 아카이브를 가끔 검색해볼 건더기가 좀 있다고 홍보하고 싶다(핫핫).

민주주의의 씨앗이라… (2008. 05. 08)
촛불 정국 와중, 생각의 토막들 (2008. 06. 05.)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2 (2008. 06. 09.)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3 (2008. 06. 28.)

 

PS.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위를 하고 싶다면 집시법 개정 시위부터 필요할 것이다. 작년에 언급했던 이 입법계획은 현재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요?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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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촛불시위 1주년시위 단상 토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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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하민혁의 민주통신

    손석춘, 진보의 진보적 재구성에 동의한다…

    새사연의 손석춘이 드뎌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촛불의 뜻 살린 ‘새로운 정당’ 필요하다”면서 ‘진보의 진보적 재구성’을 주창하고 나섰다. 이로써 그동안 주로 이론적 작업에 치중…

Comments


  1. 무려 노동절 + 2008촛불시위 1주년이 겹친 주말에 관제 축제행사의 개막식을 서울 광장에서 한 것은 합법적인 집회신청을 막기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생각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능에 과잉을 과도하게 더하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이를 곱하면 이럴수도 있습니다. 계속이래온거 같기도 하고…

  2. 시위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른게, 단순히 지속적 홍보나 비용대비효용의 차원에서 따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현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엔 찬성하지 않지만, 시위라는 것 자체가 상대와 자기(세력)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강하게 요청하는 수단이니까요.

    또 시위의 경험이 휘발성 기억이라고 하셨지만, 그건 어떤 경로로 경험을 하느냐에 의존한다고 봅니다. 경험을 하는 사람이 그 시위에 동감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입장 차이도 존재하고요. 오히려 시위 자체는 (비록 일순간이라 하더라도) 자기표현을 통한 해방감이 몸에 새겨지는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 그리고 레오폴드 님 말에 반 동감. 물론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걸 모색해봐야 하지만,
    보다 쉽고 포괄적이고 선명하게 사람들에게 현실을 각인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시위는 필요하다고 보고,
    그리고 사실 효과적인 대응방법의 모색 이전단계로서 시민주권되찾기의 방식이 점점 발전해나가기 위해 거쳐나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도 보입니다.

  4. !@#… imuky님/ 에에… 합법적 집회신청을 막는 방법은 워낙 쉬워서(아무 어용행사든 듣보잡이든 지어내서 적당히 쑤셔넣으면 됩니다), 굳이 그런 대형 행사를 걸어둘 필요조차 없습니다;;; 말씀하신 ‘무능+과잉*안이’ 공식은 나중에 약간 더 세부적으로 다듬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언럭키즈님/ 최근의 집시법 일부 조항 위헌제청마저도, 기사 속 저분들과는 완전 별개로 이루어진 것이죠. 역시 주목을 할 때만 반짝…;;;

    leopord님, 캡콜드님에반동감님/ (제 성격상 당연한 이야기지만) 본격 시위무용론을 펼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전태일의 역사적 사례에서 조차도, 조직세력화와 제도를 통한 해결, 언론 제보 등 모든 것을 끝까지 시도하고 좌절당한 후 어쩔 수 없이 길거리로 나서서 몸을 불사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랄까요. 물론 이것도 크게는 시위목표라는 측면에서 일반적인 세력 과시 홍보 캠페인으로서의 시위와 당장의 특정 문제해결을 위한 압박으로서의 시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위가 커질수록 그 두가지가 마구 섞이며 예측불허가 되고 판이 이상해지지만.

    시위의 자기 훈련효과에 관해서라면 사전브리핑과 뒷풀이 세미나, 상시적 토론과 활동 유도가 없다면, 시위 참가 자체의 해방감은 결국 피로감만 양산한다는 입장입니다. (좌파적 목표의) 시위 자체야 저같은 것 따위보다 훨씬 열심히 나갔지만, 현재는 무척 우익적 사고의 소유자가 된 분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봤다고나. 게다가 시위로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고 변화를 갈구하는 해방감을 몸에 새긴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위 자체가 탄압받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요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응원 당시 뭇 식자들이 해방감의 카니발 운운했던 뻘줌함을 기억하자면… -_-;).

  5. 말씀하신 부분들, 특히 월드컵의 뻘쭘함-_-;;에 대해서는 저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시위가 시위외부와 연결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시위의 생명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6. !@#… JNine님/ 그보다는 언젠가 ‘캡콜드의 정리’라고 불리울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게 더 큰 영광이겠지만 말이죠(핫핫)

    펄님/ 차라리 그런 복합적 지능플레이라도 벌인 것이라면, 미워는 하겠지만 한심함에 절망하지는 않을 수 있을텐데 말이죠.

    leopord님/ 옙, 시위 외부의 원래 이슈로 연결하는 떡밥들을 얼마나 집요하고 다양하고 재미있게 계속 투척하느냐가 승부처죠. 개혁/진보진영일수록 ‘소통설계사’들을 중용해야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