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이런저런 일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함축적인 키워드를 뽑아내는 행사가 있다. 일본에서 95년 이래로 뽑아왔다는 ‘올해의 한자’라든지, 한국의 경우 교수신문에서 뽑는 올해의 한자성어라든지. 그런데 2006년은 올해의 한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 가 뽑혔다고 한다 – 에잇, 그런 안전하고 애매하고 방만한 선택이라니. 일어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不雨인가. 이건 아니다. 센스 꽝이다. 그래서, capcold는 지가 알아서 하나 직접 선택하기로 한다. 기대하시라… 바로…
후안무치 (厚顔無恥).
!@#… ‘낯짝이 두껍고 염치를 모른다’는 뜻 되겠다. 왜 이걸 선택했냐 하니, 올 한해의 갑갑한 상황들과 말도 안되는 담론의 범람이 바로 이 자세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염치가 없다, 즉 쪽팔림을 모르기에 반성을 안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지 않고 결국 한번 한 실수를 얼마든지 다시 반복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
2006년 초로 한번 돌아가본다. 한해의 시작을 시끄럽게 계속 장식했던 (여튼 1월에 서울대 조사위 결과 발표가 나왔고, 그 전은 물론 그 후로도 오랬동안 많은 이들이 도저히 정신 못차렸으니) 황우석 사기 사건을 기억해보자. 과학한국의 영웅에게 환호를 보내는 걸로 모자라 황빠 선언을 하고는 그 적들이 감히 진실을 캐려고 하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뱉어내던 그 많은 자칭 국민들은 다 어디로 버로우했을까.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꾼 것은 잘못이 아니네 어쩌고 자기변명이라도 하면 비록 토나오기는 하지만 불쌍하게라도 봐주지. 그냥 대다수는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냥 시니컬한척, 에잇 똥밟았네 하고 회피할 뿐. 그저 빨리 화제를 돌리고 싶어서 안달,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워낙 다수가 그러고 앉아 있으니, 그냥 그리그리 넘어가고. 학계의 책임도 두루뭉실 뭉개고, 언론의 책임은 더욱더 흐지부지 넘어가고 (항상 이야기하는 바지만, 무슨 단체에서 성명서 몇 개 낭독하고 세미나 몇번 한다고 해서 책임 추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덧붙여 일반 개인들의 담론 책임 따위는 아무도 신경도 안쓴다. 언론이든 단체든 개인이든, 최소한 자기가 그 사기꾼을 지지해줬던 그때 그만큼의 목소리 이상으로 확실하게 자신의 잘못되었던 판단과 과오를 반성하고 지나가는 것이 정석. 그런데 사회성원 대다수의 암묵적 합의에 의하여 황만세를 부르짖었듯, 마찬가지의 합의에 의하여 적당히 잊고 넘어가자를 선택했다. 이 무슨 염치없는 짓거리인가.
반성을 하는 이유는 바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조낸 쪽팔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염치가 없으면 쪽팔림을 모르고, 쪽팔림을 모르면 반성이고 자시고 없다. 학습능력 제로, 마치 끝없이 별모양 구멍에 네모 블록을 집어 넣으려고 무리하는 전두엽 제거된 실험실 원숭이 마냥의 모양새다. 황사건을 잊기로 하자마자 미식축구 볼 줄도 모르면서 하인즈 워드에 열광하고, 연말에는 세금으로 보내는 우주 관광객 쑈에 무슨 ‘한국 최초의 우주인, 과학한국 어쩌고’ 또 설레발 신났다. 그냥 담론만 잊기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과도 같이 잊기로 했다. 그러니까 황사기 난리, 정부지원금 불법 운용으로 대박을 터트린 박기영이 아무 문제 없이 곧바로 교수 복귀했다가 이제는 또 다시 정부로 돌아왔지. 맨날 또 대한민국 과학 만세, 또 스타, 또 언론발 설레발… LP판이 튀어서 무한반복되는 기분이랄까.
이왕 문제 있어서 쫒겨난 사람 슬그머니 돌아오는 이야기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연말에 홍석현의 중앙일보 회장 복귀도 참 아스트랄하다. 참 염치도 없게 잘들 돌아오고, 잘들 불러오고, 잘들 받아준다. 홍석현 안습, 주미대사까지 갔다가 짤린 뇌물 배달부를 다시 열렬하게 불러오는 중앙일보 자체도 안습, 별다른 거부반응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는 중앙일보 기자단도 안습 (하기야 기자단의 경우 “사장님 힘내세요”의 압박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지만). 언론을 자처하면서 무슨 염치로 홍석현을 무려 현역 회장직으로 다시 추대한다는 것인지 참 모를 일이다. 아니, 모를 일이라고 치부하는게 차라리 덜 속상하겠지. 즉 그게 얼마나 쪽팔리는 짓인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다.
문화계와 언론계가 만나서 환상의 복합쪽팔림모름증후군을 자랑한 정지영 아나운서 대필 번역쑈도 염치없음의 극치. 스타 아나운서라는 언론계+연예계 발 허상과 돈버는 자세 배우기라는 문화계의 부끄러운 히트상품 추종 성향과, 출판계의 고질적인 야매 근성이 멋지게 혼합. 대필 사기가 적발된 뒤에도 정작 실제 번역자한테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고, 국민과 아나운서에게만 미안해하는 출판사의 염치없음을 도저히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그리고 사실 대필번역이든 뭐든, 사람들 역시 입방아 몇번 찧는 듯 하더니 그냥 계속 샀다. 그래, 밀리언셀러 만세다. 올 한 해 특히나 열심히 증명된 바, 염치없는 짓을 해도 별다른 피해가 오지 않는다. 사기든 뭐든 성공하면 장땡이다. 실패해도 잠깐 버로우하면 사람들이 기꺼이 잊어준다. 그런데 누가 (하필이면 절대선의 방향으로) 미쳤다고 반성을 하고 염치를 차리겠나. 구체적인 손실 부여 시스템 없이는 그 어떤 도덕 기준도 무의미하다.
!@#… 이런 염치없음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자 응용형이 바로 “내 과오를 덮어두기”다. 예를 들어 2006년의 중후반을 장식한 된장녀 쌩쑈를 보자. 어차피 마찬가지로 천박한 자본주의 풍습으로 일상적으로 찌들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중 가장 만만한 족속인 ‘의존적인 소비지향성 젊은 여자’층을 찍어서 열심히 돌을 던지고 끝. 처음에는 스타벅스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된장녀라는 말에 모든 것을 다 끌어들이면서까지. 물론 capcold는 예수님이 아니다. 죄없는 자가 아니면 돌을 던지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비판할 모습에 대해서는 아주 열심히 비판을 해야지. 그런데, 돌을 던지면서 뭔가 자기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돌아봐야할텐데 그게 아니라서 문제라는 것이다. 똥묻은 개가 겨뭍은 개를 나무랄 때, 겨묻은 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주 정당한 행위다. 하지만 지적하면서, ‘혹시 나에게도 뭔가 묻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거울을 바라보고, 혹시 똥이라도 묻어있다면 열심히 털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 사회적으로 된장녀 담론 쌩쑈를 하고는 결국 결론은 여성혐오밖에 남은 것이 무엇이 있던가 말이다. 남 지적하기에 바쁘다는 것을 자연스러운 핑계로 삼아, 자기 자신들은 대충 넘어가기의 예술이다. 비슷한 패턴은 올해들어 절정기를 맞이한 노무현 동네북 현상에서도 나타났다. 정부, 물론 제대로된 정책을 충분히 강력하게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닭짓도 열심히 하고 여러모로 어설펐던 수많은 분야에서 욕먹어 마땅하다. 하지만 남 욕하고 스트레스풀고 끝나버리는 것은 아무 해결도 되지 못한다. 나를 포함한 한명 한명의 바보짓이 모여서 전 사회의 바보화가 진행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어찌 거부하는가. 남 때리면서, 때릴만한 남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참 염치없는 일이다.
‘내탓이오’를 하라는 게 아니다. 열심히 비판을 날리는 와중에도 나는 과연 어떤가, 거울 한번쯤은 보면서 살자는 것. 그저, 욕하고 비판할 때는 항상 스스로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란 말이다. capcold의 애용 표어 그대로, “대중은 돼지다”. 하지만 항상 ‘나’도 그 속에 있다. 돼지 중력장 안에서 돼지성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은, 끝없이 자기성찰을 하는 것 뿐. (그러고보니 2007년은 돼지의 해)
!@#… 여하튼 2006년의 요약은 바로 ‘후안무치’. 염치 없이 모든 실수를 과감히 잊어버리고, 성찰을 포기하며 보내온 한 해다. 정치도 조직도 대중도 뭣도 하나같이 그 컨셉에 충실했던 일년. 내년에는 염치의 싹이라도 작게나마 보이기를 희망하지만, 뭐 큰 기대는 안한다. 같은 컨셉에서 후안무치보다 한 단계 강력한 경지인 ‘배쨈’에 해당하는 한자성어가 뭐가 있으련지 모르겠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사람에게 후안무치가 없으면, 즉 ‘망각’의 능력이 없으면 잘 살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선택적 섬망증, 아주 좋은 능력이죠;;;
!@#… 하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선택적 기억과 노골적인 치매 사이에는 꽤 간극이 있으니까요. 지금 한국사회의 사회적 기억력이란 치매와 뇌사상태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