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인물 선정 이야기

!@#… 5만원은 사임당 신씨, 10만원은 백범 김구. 뭐, 예상을 벗어날만한 선택은 아니지만 적당히 논란과 욕은 먹어 마땅한 정도의 선택으로 공무원들은 몸을 사리고 말았다. 반면에, 한은의 닥치고 김구 선택에 도산 안창호를 민 자문위가 열받고, 여성계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지랄맞음에 대노하고.

이제와서야 고백하지만, capcold는 고액 신권 화폐 인물 선정에 대해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었다. 인물 선정의 진짜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라든지 하는 좋은 이야기는 이런 곳에 이미 있으니, 그냥 capcold는 뻘소리만.

1) 전태일. 뒷면은 방직공장에 근무중인 여공들. 지금의 한국이 누구의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 무엇을 이어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노동운동의 촛불이 자본의 상징에 들어박혀 있는 모순의 반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2) 백온 김옥균. 본받을 시대정신: 인생은 조낸 한방.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돈과 빽 좀 확보한 다음에 덤비지 그러셨어요. 한국 근대사가 정말 ‘근대’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만들어내고 또 날려먹은 사람.

3) 황진이. 미모와 문예 재능과 거친 쏘울로 남성 세상을 휘두른 궁극의 알파걸 아니던가. 왜, 설마 기녀라는 ‘신분’과 ‘직종’이 걸려서 최종 10인 후보에도 못올랐나? 본받을 시대정신: 엄마친구딸.

4) 바로 당신. 얼굴 부분에 은박을 붙여놓으면 어떨까. 돈을 쓰는 자신의 얼굴이 비추어지도록.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이 화폐 속 주인공! 조선유교고 고대제국이고 자시고, 인생은 카르페 디엠! 이거야말로 현 시대를 꿰뚫는, 좋든 싫든 앞으로도 주욱 이어갈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기본 아이디어는 TIME지에서 도용)

!@#… 그런데 솔직히, 지폐에 누가 들어가는지 중요하다고는 인정하지만 별반 관심은 없다. 이이 이황 들어갔다고 해서 내가 유교에 대해서 뭘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닌걸. 미국애들이라고 워싱턴과 프랭클린의 정치사상을 제대로 알겠나. 그저, 홍보가 상당히 많이 되는 면상이라는 것 뿐. 지폐 나오고 나면 누가 찍혀 있든 대다수는 별반 관심 안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가끔 이런 선택이 주어질 때 오고가는 논의들 그 자체다. 사상이고 뭐고 말라비틀어진지 오래인 오늘날, 언제 또 사람들이 난데없이 진지하게 역사를 논하고 시대정신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해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capcold는 시끄러워지기를 희망한다. 선정 발표가 철회되고 더 고민하겠습니다 하고 신권 발행 스케쥴이 미뤄지고 논의가 더 오가고 더욱 길어졌으면 좋겠다. 막판에 누가 선정되든지 간에,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 잡음 그 자체다.

!@#… 뭐, 내가 신권 사업 담당자가 아니니까. 핫핫핫.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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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고액권 인물 선정 이야기

Comments


  1. ‘뭐 시끄러워지니 좋구만, 인물들도 재평가받고.’ 라고 생각했었는데~

    구색은 이걸로 시작했죠. ‘여성도 넣어보자’ 언제나 벗어나려나…

  2. 전태일은 정말 부조리하군요. 돈을 쓸 때 마다 기묘한 기분이 들거 같은데요 ㅎㅎㅎ;;

  3. !@#… nomodem님/ 그러고 앉아있으니까 사임당 신씨가 얼결에 들어가버렸죠. 성정치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참 비효율적인 짓들을 하는 모습을 보면 눈에서 나이아가라가…

    millin님/ 소비위축을 조장할지도 모르죠. 핫핫

  4. !@#… HHH님/ 극심한 화폐 훼손이 우려됩니다. 게다가, 그 화폐는 아무리 써도 줄지 않아서 국가경제 파탄…

  5. ….무척 바람직하지 못한 발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왠지 이럴 때마다 [여자가 짜증나게 나오는 만화/소설/게임/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남자만 나오는 걸 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OTL 그러고보니 야오이의 탄생원인 중 하나…(퍽퍽) 물론 여성의 표상되는 게 아무리 부적절하더라도 많아야 확률상 그 중에 좀 긍정적인 모델도 나올 가능성도 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부적절한 것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원 이러면 피곤하지요-_- 신사임당의 대안이 딱히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부터 여성인물의 발굴 및 재평가 로비에 여성계가 충분히 활발하지 못했던 점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여자 인물이라면 개인적으론 쇼킹하게 시대를 앞서간 김만덕이나 선덕여왕을 미는 편이지만 (유관순은….모에하는 사람은 꽤 있겠지만 뭐랄지 좀…부족한 느낌이…) 전자 쪽은 잘 알려져있지 않고, 후자 쪽은 고구려 만세 신라 안티 분위기 속에서는 좀 어렵지요. 엠비씨에서 드라마를 잘 만든다면 또 모르지만…
    친구는 대뜸 [왜 인물이어야 하는 건데?]라길래 웬 뜬금없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유로 화폐라도 본 모양인 것 같습니다.

  6. !@#… 시바우치님/ 무척 바람직한 발상인데요. 물론 저는 지폐에 그려진 것이 남자든 여자든 외계인이든, 많이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장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