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찌질하기에 성찰한다 – [루드비코의 만화 일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생각은 걱정 많고 행동은 적당히 도덕적 틀 안에서 소극적인데 그 이면에 실제로 구현하지 못하는 온갖 사심은 들끓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찌질하다’라고 부른다. 그런데 두 가지의 틈을 무엇으로 메워 넣는가에 따라서, 졸렬한 찌질함과 훌륭한 찌질함의 스펙트럼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된다. 눈먼 분노와 냉소로 채워 넣는다면 전자에 아주 가까워지고, 사람 사는 모습과 관계에 대해 가끔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집요하고 깊은 성찰로 파고든다면, [루드비코의 만화 일기](루드비코 / 미디어다음)가 나온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영화를 좋아하고, 시선이 사팔이고, 음흉하거나 통쾌한 상상을 할 때 절로 음흉하게 웃음이 새어나오고, 매 순간 가장 사심은 많지만 소심한 선택을 거듭하다가 슬그머니 물러서는 핑크색 솔로 남자 웹툰작가 토끼이자 작가 자신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건들은 대체로 어떤 생활 속 일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화 자체로 공감대를 요구하며 승부를 보는 식이 아니라, 그런 일화를 매개로 하여 떠올리는 각종 잡상들의 자유 과제다. 가난했던 학창시절 어머니의 도시락에 표현된 사랑이 핵심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좀 더 미묘한 감정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핵심이다. 차기작 기획이 담당자에게 까인 일상의 순간보다는, 한창 인기 있는 모 결혼장려 생활툰의 인기를 얄팍하게 흉내를 내면 어떻게 망할까 실험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핵심인 식이다. 일화들은 잡상으로 날아오르기 위한 활주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워낙 풀어놓을 생각이 많다. 군중 심리 같은 큰 현상에 대해서, 새터민 같은 낯설고도 가까운 타인들에 대해서, 실재하는 개인으로서의 작가와 캐릭터로서의 작가의 관계 같은 작품 형식에 관한 더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한번 잡상의 날개를 펼치면 대충 표피적으로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 단편적 감동이나 일방적 선언보다는, 늘 좀 더 여러 느낌이 동시에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난데없이 영화홍보 개그로 끝내는 어떤 가벼운 결말에서조차 이야기 발상의 어려움, 현실과 이야기의 관계 같은 요소들이 살짝 그 위에 깔린다.
그럼에도 성찰이 훈계조로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찌질한 자신이 벌이는 행동과 일화들을 통해서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미 대범하고 그럴싸하면 성찰을 통해서 채워 넣어야만 할 괴리라는 것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찌질하기에 성찰로 빈 칸을 채워나간다. 이 작품에서 성찰은 가장 추상적 차원의 먼 구름 위에서 강림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잡스럽고 찌질한 일상의 순간에서 문득 스며나온다. 찌질함의 가면을 쓰고 날카로운 통찰을 던진다기보다는, 바로 그 찌질함 덕분에 통찰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에 가깝다. 사실 세속적이고 비루한 이기적 욕망으로 가득하지만 적극적으로 추구하기에는 소심해서 그럭저럭 사회 속에서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렇다고는 해도, 찌질함의 적정 수위를 맞추는 것은 늘 어렵다. 너무 많이 찌질하면 단순히 바보 같아지고(믈론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이 작품에 가득한 잡상들을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약점이 많아진다), 너무 적게 찌질하면 개그 효과가 사라져버려서 그냥 재미 없게 진지해진다. 그런데 그런 부분조차, 작가 스스로 “몇 번 개그에 실패하다 보면 무리수를 남발하다 소개팅을 말아먹은 소개팅남 마냥 주눅이 들곤 한다”라며 잡상의 소재로 삼을 정도로 고민하는 작품이 바로 [루드비코의 만화 일기]다. 완성도 높은 적절 수위의 찌질함을 향한 성실하고 집요한 노력이야말로 이 작품 최고의 미덕이다.
작가 주인공 캐릭터의 찌질함에 폭소를 터트리면서, 겉으로는 비웃는 척 하지만 사실은 슬그머니 공감을 해버리도록 유도한다. 그 와중에서 사실은 성찰도 함께 받아들여버리고 말이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이것은 훌륭한 찌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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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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