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감성(…)을 강조한 평. 게재본은 여기로.
존재의 즐거움을 관조하기 – [달이 내린 산기슭]
김낙호(만화연구가)
몇 해 전에 명왕성이 과학계의 엄밀한 재분류에 의하여 태양계를 도는 행성의 지위에서 퇴출되던 때, 어떤 분야에서 나름 화제가 되었던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행성의 이름으로 전투미소녀 주인공들이 꾸려졌던 <세일러문>의 세일러플루토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질문 자체는 사실 무의미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일말의 아쉬움은 진짜였다.
본격 지질학 판타지 만화 [달이 내린 산기슭](손장원 / 미디어다음)도 바로 그런 지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 개념 속에서 탄생한 어떤 현신이, 그 현신은 있는데 애초의 분류가 사라질 때 어떻게 되는가. 분류와 함께 존재가 소멸한다든지 하는 극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처럼, 그럭저럭 남아있으면서도 서서히 옅어지며 예정된 이별로 향한다.
이야기의 기본 세계관은 프리퀄격인 단편 [산]에서 선보였듯, 온갖 산과 지층 등 땅 위의 현상에는 작은 령부터 산신령급까지 다양한 정령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속성과 능력에 따라서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할 수도 있고, 땅의 탐구에 마음이 열려있는 이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런 것이 가능한 주인공이 고생물 화석을 캐는 무소속 떠돌이 지질학자 오원경이고, 그와 함께 여행을 하는 소녀 월리는 사실은 흥월리라는 지층의 정령이다. 월리는 오원경의 앞에서 우연히 현신하였으나, 흥월리가 10년전에 지질학 연구에 의하여 재분류되어 개념이 말소되었기에, 자신이 안식하고 있던 돌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그 김에 오원경과 함께 여행에 나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월리를 살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아니다. 사라진 흥월리 지층의 개념을 거짓으로 재발명할 수도 없고, 간절히 빌었더니 인간이 되었더라는 피노키오 스토리를 끼워넣기도 난망하다. 그리고 오원경이든, 함백산 산신령이든, 심지어 월리 본인이든, 순리를 이미 알고 있으며 그것을 거스르려는 무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 둘의 여행은 기적을 찾아나서는 처절한 모험이 아니라, 결국 다가올 소멸의 순간까지 세상 구경에 나선 것에 가깝다.
물론 누가 흥월리를 없앴는가 같은 나름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스포일러 같지 않은 스포일러: 범인은 작가다), 핵심은 느리고 평온하게 황혼으로 향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 느슨함이 지루함으로 번지지 않게 해주는 것은 풍부한 표정 묘사와 섬세한 암시로 던져지는 인간사의 작은 투닥거림들, 그리고 잊을만하면 한층 고즈넉한 장면 연출로 넌지시 상기시켜주는 월리의 앞날이다. “여주인공이 퍼질러 잠이 들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지는 만화”라는 식의 덧글 품평들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옅어져가는 월리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독자들이 목격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 완전히 함께 녹아들어가 있는 정령들 즉 땅 그 자체의 일상성, 땅을 세밀하게 탐구하여 현재와 과거를 읽고자 하는 이들의 우직한 모습들이다. 세상을 돌며 다른 땅의 정령들을 만나고 동료 지질학 연구자들을 조금씩 도우며, 대단한 사건 사고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이런 저런 모습들을 스쳐지나가듯 바라본다. 변하는 것은 아쉬움을 남기며 변해가고, 그래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은 또 이어진다.
그렇기에, 소멸을 향해 가는 여행은, 존재의 즐거움에 대해 관조적으로 돌아보는 여행이 된다. 삶의 자세에 대한 떠들썩한 훈계나 장황한 인생 예찬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럭저럭 느릿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함께 바라보면서 잠시 은근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수년간 오만가지 방식으로 남용되어온 ‘힐링’이라는 단어는, 원래 아마 이런 것을 지칭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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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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