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본은 여기. 당연하게도, 이 글 역시 한겨레에 나간 뒤로 어떤 열정적인 분들께 지극히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욕 좀 먹고 있다.
우리편 방송보다 중요한 것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잘 알려졌다시피, 18대 대선은 높은 투표율은 보수와 대립하는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패턴을 깬 선거였다. 간단하다. 원래 투표율과 보수 지지율이 높은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론조사기관 포커스컴퍼니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매체를 물어보는 질문에 50대 이상 응답자 가운데 75.9%가 TV토론을 꼽았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의아해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50대 이상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박근혜 당선자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TV토론 과정에서 많은 결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앞뒤가 상충하는 언변, 사회현상 디테일에 대한 인식, 돌발적 질문에 대한 대처 능력 등에서 한계가 역력했다. 그런 TV토론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집단이, 그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다. 이유는 어떤 분석들이 제기하듯 내용보다 태도를 평가했을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점은 매체가 주는 영향력이란 딱히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서 수용자가 매체를 꽤 능동적으로, 즉 자기 편한 쪽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내용의 해석마저도 이러니, 매체의 선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지성향과 어긋나는 매체들의 존재를 몰라서가 아니라, 싫어서 선택하지 않는다.
다른 결과를 희망했던 반수의 국민들에게 선거 이후의 추스림이란, 정서적 ‘힐링’을 갈구하는 개인적 해결부터, 근거 부실한 음모론 따위를 들며 재검표를 요구하는 안타까운 시도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제안들 중 하나가 바로 국민TV방송을 만들자는 움직임이다. 그 중심에 있는 나꼼수의 김용민 피디의 말에 따르자면 “뉴스가 오염된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서 “권력에 장악된 언론”과 다른 대안언론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유의미한 품질의 방송국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높은 비용과 인력을 고려하자면 그냥 원래 그런 기능을 수행하라고 존재하는 공영방송들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을 조직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필자의 견해와는 별개로, 시민적 공공 사안을 다루는 언론매체를 늘리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방송을 장악당해 시민들이 ‘바른 선택’을 내릴 정보가 없었기에 선거에서 졌다는 문제의식이라면, 그저 우리편 방송국을 만들어 이쪽에 유리한 많은 정보를 뿌리자는 단순한 진영 도식에 빠지기 쉽다. 그 귀결은 물론 딱 원래의 지지자들만 보고 즐거워하는, 지금도 이미 차고 넘치는 종류의 매체다.
부족한 것은, 자신의 소신과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내용들도 찾아보고 고려해볼만한 동기부여다. 그런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 단순한 진영 대결이라면, 같은 TV토론을 보더라도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며 자기 신념만 강화할 뿐이다. 선거 이후의 일상적 정치담론을 위해 미디어로 무언가를 추구한다면, 공영방송 정상화든 기존 매체 후원이든 새로운 매체 설립이든 바로 그 지점이 가장 긴요하다. 첨단으로 가자면 정치지식의 게임화 및 현실과 온라인의 사회관계망을 활용한 보상체계 등 실험적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첫걸음으로, 지지자의 가슴을 울리는 사설보다 어떤 진영에서라도 대화 재료로 삼을법한 냉철한 팩트체킹 기사 강화, 정부의 활동을 세밀하고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공약이행현황판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기능부터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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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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