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번에 출간된 설 특집호용 원고라서 가족 특집으로 후딱. 모두들 해피 루-너 뉴-이어 되시길. 인수위의 랜덤 정책안 생성기님들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져서 진정한 삽질형 1당 독재를 완성시키겠다고 미리 굳게 다짐을 하고 있는 과반수 국민 여러분들도 모두.
유전자, 유대, 소통
김낙호(만화연구가)
신기하게도 어느 문화권에서나, 가족이라는 개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척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만 수행할 수 있었던 여러 기능들, 예를 들어 육아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주거생활이라든지 심지어 이성간 사랑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 울타리 바깥에서도 상당 부분 충족 가능해진 오늘날의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말이다. 기능적 이유로 떨어져 살다가도 일 년에 한 두 차례씩은 집결을 하는 대가족들의 문화가 익숙한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족을 이루는 핵심요소로 흔히들 착각하기 쉬운 것이 ‘피붙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혈연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족이라는 관계 구성의 첫 관문인 결혼만 하더라도 그것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근친혼 금지니 하면서 유전자 공유를 적극적으로 뜯어말리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법제도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법으로 가족을 규정하던 시절 이전부터 가족이라는 단위가 오래도록 존재해왔다. 그렇듯,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족 성원 사이의 관계 그 자체에서 시작하고, 혈연이고 법제도고 하는 것은 그것을 약간 더 합리화하기 위해서 붙인 요소들에 불과하다. 특수할 정도로 가까운 유대관계, 합리적 필요성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곤 하는 상호 의지적 인연의 끈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말이다. 당연히 이 속에는 가족관계의 편안함과 오지랖에서 비롯되는 피곤함도 같이 들어있다.
그렇기에 굳이 제도적으로 가족이라는 틀에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질긴 유대로 묶인 관계들이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을 벌이는 역할, 보듬어주는 역할, 성장하면서 사고치는 역할(!) 등이 고루 분배가 되어 있을 경우 이를 유사 가족적 관계라고 부른다. 이런 유사 가족적 관계는 자고로 만화장르에 있어서 주연 캐릭터 구도의 황금공식 가운데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라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틀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에 의해서 그런 유대를 맺고 있다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굳이 노골적으로 누가 엄마고 누가 아빠라고 지칭할 정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인물들 사이의 강한 관계성이야말로 재미의 핵심이니까 말이다. ‘오즈의 마법사’를 락밴드 환타지 만화로 재해석한 작품 『도로시밴드』를 보면 도로시, 토토, 허수아비, 강철 나무꾼, 사자머리라는 5인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도로시는 발랄하게 일을 벌이고, 토토는 모두를 보듬어주며, 허수아비는 뒤를 받쳐주고, 강철나무꾼은 사고를 치고, 사자머리는 수줍게 따른다. 그것은 보컬과 작곡 겸 보조세션과 리드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이라는 역할 배분 속에 그대로 혹은 역설적으로 분배되어, 합쳐질 때 하나의 노래로 탄생한다. 이들은 항상 티격태격하고 서로 대단히 살갑게 굴거나 하는 것이 아님에도, 하나의 유사 가족처럼(사실 가족으로 치자면 상당히 콩가루일지도 모르겠지만) 결정적으로 서로를 신뢰한다. 밴드라는 기능적 관계에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오즈를 향해서 가는 공동의 모험이라는 과정 속에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 강한 유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같이 무언가를 해나가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서 힘을 합치는 여정의 핵심은 서로 다양한 기회 속에서 소통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대화로, 때로는 음악으로, 때로는 그냥 그렇게.
이런 것은 비단 작품의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며, ‘유사’ 가족이든 ‘진짜’ 가족이든 같이 적용할 만한 부분이다. 유대는 고작 유전자의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을 베푼다느니 하는 것도 아니며, 제도적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서로 소통하면서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 것이 가장 농축되었을 때 생겨나는 결과가 바로 가정이라는 유대관계다.
여튼 설이다. 가족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인사를 나눈다는 제의식(ritual)으로만 때우지 말고, 기왕이면 약간은 서로의 삶과 생각에 대해서 소통을 해보고 나름의 유대를 만들어보는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소재가 영 마땅치 않으면, 슬그머니 대운하와 4월 총선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고(아, 물론 눈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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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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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선생님 요약말씀: 윷놀이나 고스톱을 쳐라.
!@#… nomodem님/ 그리고 이왕 치면서 돈보다 사람에 집중해라… 정도도 추가합니다 :-)
Chienese New Year 와 Lunar calendar New Year라는 명칭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눈은 그만 받으시길 바라고.^^;
!@#… advantages님/ 새해 복 감사히 받고, 두배로 반사해드리겠습니다. :-) 참, 신년 명칭은 이미 위키피디아에 정리가 되어 있어서 제가 따로 이야기 꺼낼 필요가…;;;
저는 그런 점에서 이마 이치코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낙원까지 조금만 더]에서는 사채(…)로 인간과 인간사이를 맺고, [어른의 문제]에서는 불륜+양자입적 등의 다양한 현대적 가족증식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꼬아놓음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구요 :)
!@#… dcdc님/ 이마 이치코의 “콩가루, 그러나 여전히 가족적”인 관계의 정수라면 역시 ‘문조님과 나’가 단연 돋보이죠. 핫핫
덧글을 좀 퍼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