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을 이기는 방법 – 짐승의 시간 [기획회의 373호]

!@#… 시사 풍자를 그릴 때는 지나친 단순화와 거친 비유가 대단히 아쉽지만, 스트레이트한 과거사를 다룰 때는 매우 잘 풀어나가는 작가.

 

고문을 이기는 방법 – [짐승의 시간]

김낙호(만화연구가)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연구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탠리 밀그램이라는 학자의 복종 실험이다. 실험 참여자에게 스위치를 조작하게 하여,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는 들리는 다른 참여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게 했던 방식인데, 실험자가 계속 더 강한 충격을 가하도록 종용하면 아무리 상대가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려도 많은 사람들은 그냥 지시를 따랐다는 결과로 유명하다. 비록 실험의 윤리성 문제나 설계의 정밀성 등에 있어서 여러 반론은 제기되었으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명령체계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주체적 사고를 버리고 비인도적 기계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효과는 대단하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의 민주제는, 시대의 흐름 속에 저절로 찾아왔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평범하고도 용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제를 가로막고자 했던 이들과 격렬하게 싸우고, 민주제가 아니라도 대충 지내려던 이들을 설득해내며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인 정치인 고 김근태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1985년 남영동에서 한 달여동안 불법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던 바 있다. [짐승의 시간](박건웅 / 보리출판사)은 김근태가 겪었던 고문의 시간들, 혹은 고문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한 시간들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화로 남기기 위해 취재를 하는 작가의 군대 생활 회고 같은 국가주의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진다.

작품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은 체포되어 고문을 받는 과정이지만, 고통을 오락적 구경거리로 삼기보다는 고문의 진행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80년대의 민중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판화기법부터 거친 붓선 풍의 양면 그림까지, 매 장면은 단순화되었으나 강렬한 감성을 전한다. 고문의 잔인함을 세밀한 묘사로 자극하기보다, 무덤덤하게 미소 짓는 가해자들과 몸이 뒤틀리는 피해자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그들은 단순히 특정한 조서를 받아내려는 수준이 아니라, 고문을 통해서 완전히 사람을 꺾어버리고 복종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고통을 가하는 도구, 시간 배분과 강도의 증감, 점점 더하다가 거짓 희망을 불러주고 다시 꺾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해가 집요하고 정교하게 배합된다. 작품에도 말미에 인용되는 당시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의 표현처럼 고문도 하나의 예술인 셈이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이, 사람을 잡아다가 짐승으로 퇴화시키는 추악한 예술일 따름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김근태는 그 와중에서 꺾였다가, 어떻게든 다시 추스렸다가, 다시 꺾이고 결국 가장 확실하게 망가트려졌을 때 온전히 일어나 모든 것을 세상에 밝혀낸다.

하지만 고문 현장에 있는 이들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특수한 관계에 처했지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김근태는 무슨 초인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렸고, 수배당하면 두려워 숨고, 하지만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다른 이들과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는 그런 사람이다. 모진 고문에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자결하는 전설 속 열사가 아니라, 고통 속에 진술도 거짓자백도 하는 그냥 인간이다. 그런데 고문 경찰들도 마찬가지로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게 라디오로 프로야구 듣고 선데이서울 읽으며 즐기는 아저씨들이다. 그저 자기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당연한 업무로 여기며, 상부의 눈치를 보며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한 인간을 고문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 시대의 권력자들이 추종하던 ‘애국’의 틀거리였다. 국민들이 만들어내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가 거느리는 국민들을 상정하고, 제멋대로 그런 국가의 모습에 어긋나는 것들을 규정해버렸다. 당연하게도, 시민들이 더 많은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화에 대한 요구야말로 사회를 뒤흔드는 불온세력으로 규정되며 애국을 위해서는 없에애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박멸 대상으로 점찍은 것은 가장 추상적 호소력을 발휘하는 수사로 임의로 통합되어 마땅히 박멸해야할 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민주화를 논하면 빨갱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애국을 표방하고, 빨갱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않고 빨갱이 박멸을 외치며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을 학대했다. 상부의 명령, 아니 국가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번갈아가면서 교차하는 작가가 회상하는 자신의 90년대 후반 군 생활 경험담 회상은, 군사독재가 밀려나고 형식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의 어느 날이라 한들 그런 틀거리가 사라진 것이 아님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애국을 표방하며 물고문 전기고문을 번갈아가던 남영동의 폐쇄공간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데모를 나갔다는 전력을 문제 삼으며 심문을 하고 진술서를 쓰게 하며 사상의 자유를 가볍게 부정해버리는 과정은 고통의 물리적 강도가 약해졌을 뿐 비슷한 목적과 비슷한 양식을 지닌다.

상대를 부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런 사회상을 당연시 여기던 무심함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당시의 현장을 보존하며 인권센터가 된 남영동 공간을 안내하며 고문이 아니라 조사라고 굳이 아픔이 거세된 용어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현장 안내인의 모습에서, 사회운동을 과거 무용담으로 접어놓고 더 이상 의문을 던지지 않으며 한 몫 잡기에 매진하는 삶을 사는 평범한 선후배들의 모습에서, 눈을 감는 것이 평범했던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틀거리는 고스란히 유지된다. 고문의 시대는 지나간 듯 보여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이뤄졌던 사회상은 아직도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되고 있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렇게 그런 당연한 틀에 대해 독자들이 의문을 던지도록 권유하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짐승의 시간]은 고문의 현장에서 벗어나, 결국 꺾여 지내는 것을 거부하고 법정에서 자신을 고문의 증거로 세상에 공개하는 대목에서 김근태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여러 해가 지난 후 고문기술자 이근안과의 재회를 보여준다. 아쉽게도, 그 사이의 더욱 값진 역사는 생략되어 있다. 그가 고문피해자라는 상징적 역할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민주사회를 가꿀 수 있도록 유능한 원칙주의자 정치인으로 활동한 것, 즉 짐승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시간을 만들어낸 이야기 말이다.

짐승의 시간
박건웅 만화/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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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이말년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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