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의 현실 직면 – 나는 99%다 [기획회의 327호]

!@#… 10부씩 사서, 추석 귀성하여 친지분들께 한 권 씩 나눠줍시다.

 

99%의 현실 직면 – [나는 99%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우리가 99%다’라는 표어가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계기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는데, 비단 월가의 미국계 금융기관들이 아니더라도 세계 어디서나 지나친 시장자율 남용으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 같은 문제들이 여러 양상으로 넘쳐났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히트했다. 한국의 경우는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한 분노보다는 이 시기에 하필이면 권좌를 지키고 있는 저돌적인 우익정권에 대한 불만과 만나며 저항 움직임의 표어로 활용되곤 했다. 99%라는 표어에 담긴 시대정신은 사회 제도가 1% 상위층 기득권을 위해 돌아가고, 나머지 99%의 대다수 시민들은 그런 불리한 질서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자는 것이다. 나만이라도 어떻게든 그 1%에 합류하겠다는 개인적 출세욕이 아닌, 나 또한 99%의 일원임을 직면하고 바로 그 99%를 위한 사회로 바꾸어내자는 결의다.

경향신문의 4칸 시사만화 ‘장도리’를 묶은 신간 단행본의 제목이 [나는 99%](박순찬 / 바이북)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언론지면의 시사만화가 점차 기능이 밀려나고 있고 양적으로도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지만, ‘장도리’는 경향신문 특유의 중도 진보 성향 지면 논조와 작가 자신의 탁월한 현실 인식 및 풍자감각에 힘입어 시사만화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최고 작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2010년 1월부터 2012년 6월까지 400여 화 연재분을 모은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매일 발표된 그 시기는 한국사회에 있어서, 바로 이명박 정권 중후기에 해당된다. 많은 이들의 정치권에 대한 실망 내지 무관심의 기권, 투표소로 향한 많은 이들의 유사 기복신앙 투표에 힘입어 당선된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광우병 시위 파동으로 주춤거렸으나, 꾸준히 뚜벅뚜벅 결국 자기들 멋대로 자신들만 유리한 정책들을 강행해온 그 임기 중반 시기부터의 이야기다. 이 시기를 돌아보고 직면하기에 가장 적합한 키워드로 결국 작가가 꼽은 것이 바로 ‘99%’다.

이번 단행본의 경우, 새로 제작한 그림의 표지부터 탁월한 풍자와 압축능력을 자랑한다. 기본틀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 양식을 패러디하고 있는데,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크게 그리는 기법 속에 우선 신적 존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삼성 이건희 회장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측 지도자 박근혜 의원은 파라오와 여왕의 위치에 있고, 이 대통령은 삽을 박 의원은 옛 파라오 박정희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보다도 이건희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삼성공화국이라는 조소 섞인 별명이 섞일 정도로 재벌 위주의 금권만능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탁월한 지적이다. 그들의 수하에는 개와 쥐의 머리로 표현된 공권력과 관료들, 펜을 든 새로 상징된 언론들이 있다. 신과 연결된 파라오 통치체의 기치는 다시금 아이콘형 상형문자로 삽입되어 있는데, 반공, 1%, 십자가, 돈이다. 그리고 밑바닥에서 그들의 판을 떠받치는 것은 수많은 자잘한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가끔 스마트폰과 촛불을 들고 지상으로 올라와 저항하지만, 칼을 든 개머리 사신에게 무너진다. 표지에서는 제목으로 가려졌지만 속표지에 드러난 부분에는 심지어 지난 수년간의 사건 패턴들을 아이콘형 상형문자로 기록해놓았다. 강 모양으로 암시한 4대강 삽질, 기울어진 천칭으로 그려낸 정의의 불균형, 소로 그려낸 광우병 시위, 주시자의 눈을 빌린 민간인사찰 문제, 오뎅으로 묘사한 시장 오뎅 먹기 서민 퍼포먼스 등등 여러 소재들이 빼곡하게 기호화되어 있다. 책 전체의 주제를 확실히 나타내는 밀도 높은 풍속화인 셈이다.

지난 2년여는 99%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정신 못 차리게 휙휙 돌아갔다. 정권은 대운하의 꿈을 4대강 토건으로 톤다운하여 삽을 떴고, 정권 입맛에 맞는 방송을 만들기 위한 패악은 조중동 종편 혜택과 지상파 방송사 사장 인사를 통해서 확확 전개되었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저축은행들 붕괴, 유전무죄의 극치를 보여준 이건희 삼성회장 사면 등 거시적 사건들 치고 99%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된 것이 적었다. 새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개발 계획 전면 재검토와 시립대 등록금 인하 등 진취적 행정개편도 있었지만, 전체적 흐름은 그랬다. 그 안에서 99%가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이 99%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1%를 위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가 패턴들을 읽어내는 것이다. 특정 권력자의 치부를 비웃는 것에 멈추는 궁중드라마가 아니라, 그런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들을 자꾸 날카롭게 발굴하여 보여주는 것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장도리’는 무척 우수하다. 4칸만화의 리듬감을 극한으로 살려내는 말과 그림의 각운 넘치는 전개, 탁월한 시각적 풍자, 그리고 그 기반에 있는 소시민들에게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지향점이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2012년 1월 13일자의 ‘다 니들 때문이야’를 보면, 각 칸에 오른쪽 상단에 “**소행”이라고 누군가가 쏘아붙이는 대사의 말풍선이 반복되어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매 사회 사안에서 근본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성찰보다는 당장의 구체적인 적을 내세워서 비난을 돌리는 ‘지도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뒷칸으로 갈수록 더 작고 사소하며 엉뚱한 적을 찾아내기에 이야기의 점층구조가 만들어지는데, 결국 마지막 칸은 학교폭력이라는 뿌리 깊은 폐단을 고작 만화소행으로 돌리는 어떤 언론사들과 방통위를 비판한다. 그 이 어떤 대형 수구언론사가 만화소행으로 몰기 위해 무려 1면에 박아넣은 이미지를 그대로 패러디했기에 주는 유머도 쏠쏠하다. 이렇듯 복합적으로 유머코드를 적절히 합쳐 넣으며, 정제되지 않은 악의를 풍자로 착각하지 않고 적절한 자제 수준을 지켜내는 것이 이 만화의 미덕이다. 이런 장점을 자주 살리기 위해, ‘30대 중반 중소기업 회사원’이라는 설정의 주인공 장도리가 세상사를 푸념하는 전형적인 4칸 시사만화 전개방식보다는 시사 사건을 가지고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곧바로 풀어놓는 경우가 흔하다.

책으로서의 만듦새는, 기본적으로 시기순으로 모으면서도 테마섹션을 중간중간 삽입하여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다. 여기에 각 작품이 등장한 사건 맥락을 짧게 매번 해설로 붙여놓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나아가 가로 판형으로 되어있는 작품 형식을 고려, 가로로 긴 방식으로 제본한 것 역시 적합한 판단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난감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주인공들이 상위 1% 기득권이 아닌 작품이 적다는 점이다. 99%에 속하는 시민들의 머리수가 전체의 99%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그저 1%가 워낙 무진장 미칠 듯 강력해서가 아니다. 1%의 세상이 펼쳐지는 와중에서 야권 정치인들 및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과거 지도자에 대한 향수 마케팅이나 정권교체를 위한 닥치고 통합 같은 이슈에나 매달리며 갑갑한 상황을 지속시켰다. 99%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자신들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작품들도 더 늘면 화룡점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99%다
박순찬 지음/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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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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