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지킨다는 것 – 슈토헬 [기획회의 377호]

!@#… 총몽(LO 말고 오리지널)도 그렇고, 광기 다분하고 귀여운척 안하는 전투형 여주인공에 좀 개인적 선호가 있다(…)

 

문자를 지킨다는 것 – [슈토헬]

김낙호(만화연구가)

몇년 전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뿌리 깊은 나무’라는 TV드라마는, 훈민정음 창제를 중심 소재로 만든 궁중 사극이었다. 그런데 세종대왕 위인전기의 일환으로 대단한 발명품이 나왔다는 식의 자그마한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고, 문자가 곧 사회의 흐름이고 정치의 방식이기에 결국 서로 다른 세계관 사이의 피할 수 없는 대결로 이어진다. 문자는 그저 모양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기록하고 전수하는 장치다. 특정한 사회 문화의 거의 직접적인 상징이 되기도 하며, 따라서 향유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지켜야 할 때는 목숨을 걸고 고수하는 신념이 되기도 한다.

[슈토헬](이토우 유 / 조은세상 / 8권 발매중)은 징기스칸 몽골제국 확장 시기의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활극이다. 그런데 무력이나 지력으로 시대를 개척하는 전쟁 호걸들의 호쾌한 활약상을 줄거리로 삼는 것과 거리가 멀다. 주인공 슈토헬은 변방에서 몽고 군인을 잔인하게 살육하는 것으로 소문난, 인간보다 늑대에 가까운 야생의 사나움을 보이는 살인귀다. 원래 그는 여성의 몸이지만 군역을 채우고 있던 서하의 말단 병사였는데(화목란 설화를 연상시킨다), 몽고군의 일원인 쵸그족 부대에게 동료들이 몰살당하고 홀로 오지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 한편 다른 주인공인 유르르는 쵸그족 족장의 둘째 아들로, 징기스칸이 패망시킨 그 서하 출신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유품인 옥판을 몰래 가지고 있다. 유르르는 그 옥판을 송나라로 무사히 가져가기 위해 일족을 배신하고 도망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슈토헬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천하의 징기스칸이 서하를 멸망시킨 것이 그 옥판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여러 추격자들이 따라붙는다. 그 중에는 유르르의 형이자 과거 슈토헬의 서하 동료들을 몰살시켰던 전사 하리발이 일족의 존속을 위해 선두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건의 중심에 놓인 아이템이라면 무슨 황제의 증명이라거나, 압도적인 비밀병기라거나, 그런 것을 빙자하여 극의 긴장감을 키우기 위한 단순한 미끼로 상정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 옥판은 그 모든 것이 아니면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옥판에는 바로 서하 문자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서하 문자는 한자와 비슷한 느낌의 모양새를 지녔지만, 전반적으로 획이 많고 창제 방식이 더 복잡한 고대 문자체계다. 문자를 간직한 자가 세계의 황제가 되는 것으로 고대의 예언이 내려져온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천자문] 마냥 문자 자체가 마법의 힘을 발휘해서 적들을 섬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자는 허망한 맥거핀이 아니라, 문자이기에 수행하는 분명한 역할과 힘이 있다. 징기스칸은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어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즉 서하 문자로 기록된 어떤 사항을 후대 누구도 모르게 하기 위해 나라를 멸망시키고 문자를 없애고자 한다. 반면 유르르는 어머니의 나라가 존재했고, 서하라는 정체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갔음을 세상이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문자를 지켜내고자 한다.

[슈토헬]이 여느 비슷비슷한 시대활극보다 더 깊숙한 재미를 주는 핵심 가운데 하나는, 문자를 매개로 한 인간적 성장의 드라마다. 무력으로 서로를 때려잡고 굴복시키는 행위만이 세상의 전부인양 여겨지는 정복전쟁의 시대에, 지난 일을 기록하고 기억하여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앞날의 소망을 펼칠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강함이 끼어든다. 무력이 없던 시절 모든 것을 잃었다가, 들판에서 무력을 확보한 후 악귀가 되었던 슈토헬이 유르르와 문자를 보호하며 점차 인간적이 되어가는 모습이 그런 힘을 효과적으로 묘사해낸다. 그와 정반대로 하라벨은 문자로 대표되는 포용의 힘을 무시하고 자신의 출중한 무력만으로 자신의 종족을 지키려다가 갈수록 많은 것을 잃으며 폭주하게 된다.

슈토헬은 처음에는 유르르를 그저 자신의 원수 가운데 하나인 하리발을 해치기 위한 인질로 여기며 길을 함께 하지만, 송나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천천히 문자를 지키는 유르르의 의지와 논리에 물들어간다. 유르르의 설명에 의하면 문자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기록한 사람의 생각과 소망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죽은 후에도 기록 속에서 영원히 존재를 이어나갈 수 있다.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유르르가 적어주는 서하문자들을 보며, 늘 광기로 가득했던 슈토헬은 다시 인간의 마음을 되찾아간다. 과거의 충격과 현재의 분노로만 움직이던 그가, 동료들의 삶을 문자를 매개로 기억해주게 되고 또 그런 기억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 것이다. 서하라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나 서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아니다. 그저 소중했던 사람들이 영원히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는 작은 성취다. 복수심은 아무리 많은 몽고 군인들을 죽인다 한들 채워지지 않지만, 소중했던 이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계속 존재하도록 한다는 삶의 의미가 생긴 것이다.

이런 꽤 묵직한 드라마가 철학적 사변으로 주욱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극 전개 속에서 자연스레 펼쳐진다는 것은 축복이다. 날이 서 있는 활달하고 역동적인 그림체를 통해 표현되는 전투 장면은 날 것의 에너지가 살아있다. 늑대와도 같이 잔학하게 싸우는 슈토헬의 광기가 칸 밖으로 나올듯 할 때도, 침착하게 몰아붙이는 호랑이와 같은 하라벨이 진격할 때도, 감정의 스타일을 싸우는 장면마다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싸움은 긴박하고 언제 누구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이 거칠게 전개된다. 적을 대하는 방식은 옛 전쟁 시절의 냉혹함을 굳이 자극적으로 과장하지도, 적당히 순화하지도 않고 그냥 그 시절은 그 정도가 자연스러울 것 같은 설득력으로 전개된다. 다른 장르에서는 배우의 연기력에 해당되는 그림 속 캐릭터들의 몸짓과 표정 역시, 슈토헬 본인의 광기어린 면과 인간적인 면 그리고 완전히 별개의 인격이(그녀가 현대 일본에서 전생의 기억 없이 환생한 인물의 혼이, 어떤 계기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는 부분적인 액자 구조를 지니고 있다) 될 때마다 각각 완전히 다른 질감으로 묘사하는 숙련성이 돋보인다.

유르르에게 문자의 함의를 배우며, 결국 슈토헬은 감탄하고 만다. “내일 내가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것이 문자라는 것인가.” 그렇듯 문자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문자라는 도구 너머, 서로를 의지하며 기억과 소망을 이어나가는 과정 자체까지 말이다.

슈토헬 1
이토우 유 글.그림/조은세상(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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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달이 내린 산기슭(올컬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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