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를 위한 미디어 도구를 공모전으로 모으다 [미디어는 지금 / 한국일보 141124]

!@#… ‘3가지 기술’ 드립을 이렇게 써먹어버렸다. 게재본은 여기로.

 

시민참여를 위한 미디어 도구를 공모전으로 모으다
– 미국의 시민참여 데이터 공모전

김낙호(미디어연구가)

2012년 미국 대선에 맞추어 선보인 폴리티파이(Politify)는 어떤 후보가 대선에 당선되는가에 따라서 생겨나는 경제적 수지타산 영향을 가계 경제, 지역 경제, 국가 경제의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산정해주는 사이트다. 현재 수입수준을 넣고 가족 형태, 나이 등을 넣으면, 어느 후보의 세금 정책에 따라서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래프를 그려준다. 누구나 선거장에 갈 때는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연설장의 장밋빛 포장이 아니라 일목요연한 맞춤형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판단 근거의 수준이 다르다. 이 서비스는 보기에는 간단하고 직관적이지만, 자그마치 세 가지 기술이 합쳐진 조합이다. 두 선거캠프의 예산 계획을 세부 분야별로 끌어오고, 현재 가계, 지역, 국가의 예산 운용 현황을 끌어오고, 둘 사이의 변화 추이를 개인화시켜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당시에 적잖은 화제를 모으며 모범적인 시민참여 도구로 지금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합리적인 정보에 기반한 시민참여를 유도하는 이런 도구의 개발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바로 돈이다. 어떤 수익 전망을 제시하지 않아도, 혹은 특정 정치 조직의 홍보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오로지 민주제 규범에 의거하는 뚜렷한 사용성을 제시하여 개발비를 투자받는 것이다. 그런 경로 중 하나가 전문분야의 민간 비영리재단 공모전 방식으로, 미디어에서는 대표적으로 미국의 나이트재단이 있다. 그들이 뉴미디어 저널리즘 신기술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뉴스 챌린지’ 공모전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편인데, 그보다 다소 유명세는 낮으나 오히려 한층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시민참여 데이터 챌린지’다. 앞서 소개한 폴리티파이는 바로 2012년 첫 회 공모전 당선작이다.

데이터를 통해 시민참여를 유도하라

각고의 노력 끝에 형식적 민주제 절차를 얻어냈다고 하더라도, 그 후 민주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핵심은 시민들이 사회의 일상적 정치과정에서 참여하는 것이다. 재작년 시작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시민제안사업의 사례에서 보듯, 그런 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도 많다. 다만 문제는 단순히 참여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발상을 내고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각종 현황과 지표들은 많고 많은데, 대부분 시민들은 생계와 병행하며 그런 자료를 검토할 여력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 안건에 참여하고 내역을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서비스, 즉 시민참여를 위한 데이터 도구가 중요해진다.

시민참여를 위한 데이터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산 정보나 의안 진행 상황 같은 것이겠지만, 공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소와 조건 일람부터 시민 활동가들의 접촉 방법까지 온갖 내용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것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필요성을 인지시켜주고 편리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한쪽으로는 권력에 대한 감시 역할, 다른 쪽으로는 더욱 강력한 사회 혁신을 위한 지름길이 되어준다.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 자체만 놓고 보자면, 각종 지자체 차원에서 개최하는 공모전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이트재단의 공모전은 공공 사안에 대한 시민참여 증진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표방하고, 시민참여 증진을 위한 데이터의 범위도 더 넓으며, 무엇보다 특유의 개방성이 도드라진다. 먼저 형식이나 접근법의 제한이 없다. 뛰어난 기술력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보도나 정책 개발 같은 것에 함의를 둘 수도 있다. 교육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도 있다. 유일한 구심점은, 사회 공동체에 관한 데이터와 처리 기술, 디자인을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면, 캠페인 공간이든 데이터시각화 자료든 아예 정보서비스 사이트든 모바일 기기용 앱이든 제한 없이 응모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응모작은 누구나 자유롭게 배워가고 재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 규칙을 준수해야할 뿐이다.

개발자와 활동가들의 협업, 깊숙한 실용성을 위하여

게다가 공모전 형식 자체도 시민참여 요소를 녹여내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1단계인 아이디어 형성 기간에는 응모 희망자는 물론이고 각종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어떤 종류의 데이터 도구나 정리가 있으면 좋을지 5주동안 함께 제안하고 토론한다. 그 중 가장 공모전 취지에 적합하고 호응이 좋은 제안들이 선별된다.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경쟁 일변도의 공모전 방식보다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공정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해에 170여명이 토론 포럼에 가입했고, 60명 이상이 응모한 바 있다.

본 공모전의 시작이자 2단계인 창작 기간에는 응모자들이 기본 모델의 제작에 들어간다. 이전 단계에서 취합된 과제를 다루게 되며, 토론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함께 협업팀을 이뤄야 평가점수가 높아진다. 평가는 과제 분석의 깊이 30점, 프로젝트 개념의 품질 15점, 구체적 실용성 30점, 디자인의 기능성과 매력 25점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특히 현장의 시민 활동가들과 함께 논의하여 실용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발한 발상만으로, 혹은 이론적 논거만으로 만드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2단계를 통과한 프로젝트들은 최종 선정작이 되어 3단계로 진출하여 본격적으로 개발된다. 상금 상한액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2013년에는 5개의 최종 지원작에 총 30억원 규모를 지원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들과 협업하여 결과물을 실제로 시범운영해보고 수정하며 완성을 시키게 되고,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은 금상을 받는다. 세심한 관리 조율을 필요로 하는 절차지만, 그 대신 개발자와 활동가들의 협업을 폭넓게 유도하여 그저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깊숙한 실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 결과, 2013년 금상 수상자인 아웃라인(Outline)은 각 주 단위의 주요 정책별 예산소요를 간편하게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어 균형잡힌 예산을 직접 짜볼 수 있는 툴을 개발했다. 그 해 은상 수상작인 텍사스 커넥터(Texas Connector)는 텍사스주에서 비영리기구들이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공동체 데이터들을 체계적으로 모아내며, 어떤 것이 제대로 구비되지 못했는지 찾아내는 연구 겸 데이터 가공 서비스를 만들었다. 각 지역공동체에서 참여자들을 효과적으로 모아내는 방법을 사회망 시각화와 노하우 매뉴얼화로 풀어내는 ‘미국의 아무 도시’(Anytown, USA)프로젝트도 당선되었다. 시민참여의 폭이 해당 지역의 종합적 생활 만족도에 중요한 요인이 되어준다는 데이터 분석 영상물도 있다.

시민적 가치를 위한 미디어 도구를 지원하라

시민참여 데이터 공모전은 미디어 기술이 어떤 식으로 민주제를 강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모집하는 대상도 절차 자체도 시민참여 증진이라는 화두를 함께 풀어나가는 보기 드물게 일관된 행사다. 아쉽게도 언제 다음 행사가 재개될지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그간 두 번의 공모전이 일궈낸 성과를 놓고 볼 때 최소한 다른 주최자들이 유사한 방식의 행사들을 여럿 만들어낼 가능성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당장 한국에서도 이런 사례를 배워올 여지가 많다. 전문분야를 두는 민간 비영리재단이 미국만큼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기관과 업계의 협력을 통한 추진이라든지 경로는 다양하다. 당장 서울시에서 최근 수년간 혁혁히 발전시킨 ‘정보소통광장’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정보 공개를 통한 시민생활 증진이라는 단계까지는 이미 충분히 인식이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는 만큼, 그저 조금만 더 초점을 가다듬기만 해도 충분하다. 공공에 관한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애초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가 널리 공개하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 및 분석할 수 있도록 표준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마지막 단계는 바로 시민적 가치를 위한 적극적인 활용 유도다. 시민 참여라는 민주제 본연의 임무를, 그저 투표율 올리기 캠페인이 아니라 일상적 사회 운영에 대한 시민들의 식견 증진으로 이뤄내자는 것이다. 그 정도 야심찬 목표를 두고, 적합한 미디어 도구를 개발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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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국제섹션 [미디어는 지금]. 미디어와 사회변혁에 관한 세계 여기저기의 사례들을 둘러보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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