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거리면 뭐든 특종이 된다는 멍청한 열기에 대한 지적. 게재본은 여기로: 홍상수-김민희, 15분어치의 가십거리로 소비되어버린 사생활. 물론 편집부의 제목이 훨 매력적이다.
스타들의 치정 소식, 그만 좀 생생합시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최근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혼외 열애를 기사화했던 여성지 [우먼센스]가, 언론중재위에 제소될 예정이다. 그런데 제소를 하는 이들은 가족 규범을 어긴 것이 들통난 사건 당사자들이 아니라, 정작 애초에 사건을 폭로했던 홍 감독의 가족 측이다. 유명인들의 치정이라는 매력적이며 영양가 없는 소재가 인기리에 과잉 보도되는 난장판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대체 어떤 신선한 방식으로 언론윤리를 져버린 것인가.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갈수록 부각되는 생생함의 경쟁이라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 감독 가족 측이 제기한 [우먼센스] 보도의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프더레코드, 즉 배경지식으로만 삼되 그 자체는 보도하지 않기로 전제하고 기자에게 나눈 심경 고백을 마치 정식으로 단독인터뷰를 한 것처럼 내보낸 것이다. 사실 비보도 약속을 깬 행위는 기자와 취재원의 상호신뢰를 부순 것일 뿐이고, 만약 그래도 반드시 보도해야할 만한 공적 가치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는 결정적 언론윤리 파괴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는 공적 함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프더레코드라는 비공식적 토로를 단독인터뷰라는 공식적 정보 공개로 거짓 포장했다. 온갖 언론사들이 흔히 제목에 붙이는 단독이나 특종 같은 말머리의 너스레 수준이 아니라, 정보 공개과정의 사실 관계를 명백하게 허위로 조작한 것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제공한 적이 없는 문자 메시지를 마치 실제로 대화 내역을 입수한 것처럼 작성한 것이다. 이들이 홍상수 감독 부인과 김민희 배우의 어머니 사이에 오간 대화라고 편집해낸 카톡 화면은 온갖 소셜망, 게시판, 그리고 타 언론사들이 베껴간 기사에 짤방으로 퍼져나갔고, 특히 “따님은 행복한 가정을 파탄나게 한 불륜녀라고요”라는 직설적 발언이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격양된 감정을 대표하는 듯 널리 인용되었다. 취재 과정에서 어떤 정황을 입수했든, 문자 메시지의 정확한 내역을 적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의 자료 그대로 가감 없이 공개한 것인 듯 작성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허위 조작이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조작하는 것은 어떤 사회의 언론규범에서든 상당히 공통적인 위반 항목인데, 이번 사례는 내용을 논외로 하더라도 전달 방식에 대한 욕심이 허위 조작을 탄생시킨 경우다. ‘[본지특종] 5개월 총력 취재, 톱스타 김민희 유부남 홍상수 감독과 충격 열애!’라는 노골적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깊숙한 취재로 탄생시킨 공식 정보고 선명한 갈등의 줄거리를 생생한 자료로 보여준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인다. 어렴풋이 떠돌던 오랜 소문을 끄적여 놓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사건의 생생한 전모고 그것을 우리 매체가 여러분에게 제시한다는 포부다. 내부 정보의 생생함을 위해서라면, 오프더레코드를 부탁받았어도 어차피 들은 말이니 이왕이면 공식인터뷰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독자들에게 좀 더 생생하게 현장감을 전하려면, 실제 문구를 입수했든 어쨌든 간에 그냥 눈 앞에 카톡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낫지 않다. 아니 애초에, 일정 수준 이상의 생생함은 필요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비단 이번 보도뿐만 아니라 어떤 다른 경우라도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패턴은, 생생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사건이 이왕이면 좀 더 드라마틱한 정합성을 부여받게 되고, 취재 내용에 기자의 상상력이 가미되며 좀 더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작게는 과장 크게는 허위 조작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들어낸 생생함의 부작용은 명료하다. 사건을 통해 가장 크게 상처를 입는 위치의 당사자가 공개적으로 하려던 말 안 하려던 말을 조심스레 나눴던 구분은 지워진다. 시원한 막말의 노골적 일일드라마 촌극으로 만들어낸 생생한 카톡 대화 화면이 떠돌아다니는 동안, 훨씬 심각한 갈등 속에서 고심해서 만들어 주고받았을 실제 발언들의 힘과 맥락은 흐려진다.
그런 미묘한 입장의 층위들이 대충 뭉개진 범벅 위에 남게 되는 것은, 기자를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서두에 밝힌 “특종에 대한 갈망보다 한 여자의 인생과 도덕, 양심, 의리”가 아니다. 평범하게 선정적인, 뻔한 줄거리의 15분 어치의 가십거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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