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이라는 소통: 화장 지워주는 남자 [고대신문 / 190520]

!@#… 게재본은 여기로.

화장이라는 소통: [화장 지워주는 남자]

김낙호(만화연구가)

세상에서 가장 흔한 훈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타인의 외모보다 내면을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개개인 심리와 사회적 현실이란 좀 더 잔학해서, 외견에서 생기는 첫 인상에 따라서 내면을 굳이 더 알아볼 것인지 여부가 결정되어버리곤 한다. 자신이 비춰지게 될 시각적 인상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하는 중요한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결국 화장인데, 그 안에는 당대 사회의 미의식 너머 아예 권력관계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모습을 바람직한 것, 예쁜 것이라고 규정하는가. 누가 규정을 하기에 압박이 될 수 있으며, 누가 얼마나 강력하게 다른 규정으로 맞설 수 있는가.

[화장 지워주는 남자](이연 / 네이버 연재)의 주인공 김예슬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한껏 꾸미고 다니는 주변인들에 비해서 화장에 조예가 없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예쁜” 화장법을 당연한 듯 강요하고, 그에 맞지 않으면 소위 원판을 내려까는 흔한 악성 문화를 겪는다. 한편,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천유성은 자신의 모델로 TV의 경연 프로그램 ‘페이스오프 신데렐라’에 출연할, 화장을 통해서 인상이 다양한 방향으로 완전히 변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둘이 조우하여 경연을 해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외모와 인상을 둘러싼 세상 여러 층위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외모에 대해 특히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에 대해 진지하게 다룰 때는 진지하면서, 동시에 유쾌한 소동극 코미디의 요소도 넘친다. 그리고 전체 줄기가 대충 개인사 사건의 연속으로 흘러가는 로맨스 드라마 구조가 아니라, 점차 어려운 과제와 갈등과 극복이 있는 경연대회 틀거리인 것도 작품의 재미를 탄탄하게 해준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신데렐라 변신 미담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평범한 사람이 화장으로 예뻐지면 주변의 사랑도 받고 당당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른 종류의 굴레 속에서 억압당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예뻐져도 소용없다 내면만 중요하다, 혹은 억압의 상징인 화장을 거부하라 식의 속편한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화장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더 핵심에 가깝다. 외모를 통해 벌어지는 일상적 마찰과 억압 속에서 김예슬이 떠올리는 영감과 천유성의 기술이 합쳐진 화장은,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겉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내주는 소통의 역할을 한다.

경연에서 주어지는 과제는 특정한 색조, 특정한 이야기 테마 등이다. 여러 소재로 얄팍하게 획일적인 예쁨을 화보에 담기를 기대하는 인식 위에서 기획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팀, 특히 김예슬은 스스로 겪는 외모를 둘러싼 사회의 일면에서 힌트를 얻어가며, 우리가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로서 특정한 화장을 제시한다. 화장을 소재로 그저 유행의 흐름이나 예뻐져서 성공하는 성취담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진지하게 파고들면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사회 관계의 구석구석을 반추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이 등장해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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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문화비평 코너 타이거살롱 연재. 만화비평과 사회적 지향점을 슬쩍 엮어놓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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