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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을 대하는 나에게 적응하기: [오라존미]
김낙호(만화연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는 조언은 말만 쉽지 실현하기는 어렵다. 인간 사회에서 사회적 삶을 사는 이상, 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은 대체로 타인의 시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업적의 성취에 대해서든, 인격 형성의 상태에 대해서든,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회적 입지에 대해서도, 타인의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강렬한 잣대가 또 없다. 그런 시선이 두려워서 회피하기도, 시선을 끌고자 무리하기도 한다.
[오라존미](허5파6)는 담담한 주인공의 일상을 그가 살아가는 불합리하고 다분히 타인에게 잔인한 사회 속에 넣으며 반향을 일으켜온 작가의 신작이다.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아동을, [여중생A]에서 청소년을 다루더니, 이번에는 젊은 성인들이 주인공이다. 흑백의 둥그런 선을 통해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짐짓 평온한 척하는 세계를 시각화하는 접근은 이어가되, 이번에는 조금 더 특정화된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웹툰 작가 지망생인 수빈과 공모전으로 막 데뷔한 영재가 그들로, 각자 타인의 시선에 묶여 살아간다. 수빈은 주변의 다른 종사자들에 비해 재능이 부족함을 알며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무탈하게 자라온 낙천적인 성격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편 영재는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인상이 사납다고 규정되었고, 그 결과 스스로도 소심한 성격이 되고 집단따돌림 당한 경험까지 있다. 고등학교 친구였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되고, 수빈의 독려로 영재는 공모전에서 입상한다. 하지만 대중 앞에 나서기 두려운 영재가 수빈에게 자신의 대외적 얼굴이 되어주기를 제안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수빈은 영재로서 인터뷰를 다니며, 주목받는 미인 웹툰작가로 세간에 규정된다. 그럭저럭 선한 성격이기에 친구의 간절한 부탁에 응한 것이지만, 영재의 정체성으로서 시선을 받는 것에 은근슬쩍 익숙해져 간다. 한편 스스로 자처해서 자신의 그림자 작가가 되어버린 영재는, 자신의 소심함을 극복하기보다는 대외활동이라는 당장의 난관을 회피한 것에 안도한다. 하지만 원고 작업의 노동량에 눌리는 자신과, 자신만큼 열심히 자기 만화작업을 하지 않는 수빈의 모습 사이에서 은근슬쩍 불만의 감정이 쌓인다.
수빈과 영재는 타인의 시선을 대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적응하다보니 현재의 성격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에 대처하고자 정체성 속이기라는 전략이,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게 되었다. 상황은 일상을 함께 하는 두 사람의 선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한 명은 자신을 규정하는 타인의 시선이 정작 자신이 아님을 인식할 때,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규정이 남에게 주어져도 될 만큼 무의미함을 목격할 때, 두 사람은 어떻게 대처하고 변화해나갈 것인가. 작품의 연재 진도가 비교적 초입이라서 어떤 반전이 생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담담한 일상을 누적시키며 점차 묵직하게 문제를 드러내던 작가의 전작들을 믿고 기대를 걸어볼만하다. 통쾌한 해결도 비극적 파국도 아닌, 문제를 안고도 그럭저럭 살 길을 찾아가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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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문화비평 코너 타이거살롱 연재. 만화비평과 사회적 지향점을 슬쩍 엮어놓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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