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감상주의: <채널 어니언>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최근 수년간, 소위 에세이툰이라고 불리우는 장르가 따뜻하고 서정적인 메시지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주의적 만화들 대부분이 흔히 빠지곤 했던 함정은, 바로 따뜻한 감정의 일방적 강요라는 점이었다. 적당히 둥그런 그림체, 적당히 따뜻한 세상 사랑의 이야기들, 그리고 하나의 에피소드를 마무리짖는 훈계조의 멘트. 꽤 냉엄한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채널 어니언>이라는 만화는 에세이툰의 대히트가 일어난 시기보다 너무 일찍 나왔던 작품인데, 감상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한 귀중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채널 어니언>이 감상적이 되는 방식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의 편식이 아니라, 현실적인 일상의 틈새에서 문뜩 피어나오는 작은 상상과 망상이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적당한 순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것은 가상 공간이 아닌, 지금 우리가 서있는 구체적인 세계 – 예를 들자면 ‘서울시 지하철 4호선 동작역을 바라보는 전차 차량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언제’ 감상에 빠지는지에 대한 통찰 역시 돋보인다. 현대 사회는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에 이성의 끈을 놓치는 것을 관대하게 허용해주는 곳이 아니라서, 결국 감상적이 될 순간은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 그것은 일상의 피곤이 정점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홀가분하게 맥주 한 캔을 따놓고 홀짝거릴 때, 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이 안오는 새벽녘의 편의점에 들를 때 나타난다.

  이러한 현실감각 덕분에, 주인공 어니언군이 감상에 빠지는 것은 결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이성적 논리와는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만으로는 못 전달했던 부분들을 마저 소통한다는 말이다. 무작정 따뜻한 격언 속으로 빠져드는 잠시동안의 도피가 아닌, 누군가와 – 때로는 미래의 자기 자신, 때로는 심지어 ‘공포의 대왕’과 – 나누는 마음 편한 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다시 일상의 현실로 복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수 있다.

  감상적인 현실도피가 유행하는 것이 오늘날의 풍속도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현실적인 감상주의를 즐겨보는 것이 더욱 큰 재미를 준다. 여하튼 그것이 지금 우리들 자신의 모습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8. 7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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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현실적인 감상주의: <채널 어니언>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Comments


  1. [네이버 덧글 백업]
    – 고어즈미 – 채널 어니언이라면..나인에 연재된 만화 맞지요?
    참…엽서랑 싸인받아주신거 감사~~^^ 2004/08/10 09:24

    – 캡콜드 – !@#… 여담으로, 신훈 작가는 지금은 ‘요구르팅’의 게임 디자이너로 대박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2004/08/11 12:16

    – 고어즈미 – 요구르팅의 디자이너라구여!! 온라인겜 매니아로서 전직할때까지 해보고 싶던데요~ 2004/08/11 21:13

    – 지오 – 최초의 카툰 에세이라고 하고 싶은… 신훈씨는 예전에 게임잡지 필자일도 하셨고, 많이 이름을 보게 되는군요. 2004/09/08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