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복의 목적-<몬스터즈>[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자본주의는 정글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같은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삶의 지표로 교육되고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특히 변화의 속도가 거의 매트릭스급인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그 급물살의 흐름에 같이 뛰어들지 않고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해본다는 것은 도태라는 험악한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근래 나온 국산 SF(?) 개그만화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몬스터즈>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이 문제에 대한 꽤 날카로운 통찰을 해학적으로 던져주고 있다. 이 작품은 ‘세계정복 일상물’이라고 불리우는 범주의 작품인데, 세계정복을 꿈꾸는 거대한 악의 조직과 말도 안되게 강한 정의의 히어로들이 사실은 우리들의 아주 평범한 생활세계 속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가며 몰래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엄청난 싸움들을 벌이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이런 설정에서는 엄청나게 하드한 스릴러물이나 대놓고 웃기는 개그물 중 하나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데, 운 좋게도 <몬스터즈>는 후자에 속한다(진지한 SF를 표방하기에는 어딘지 헐렁한 그림체, 패러디와 반전이 몸에 베인 연출력은 개그물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를 증명해준다).

이 작품에서 세계정복을 노리는 오메가 박사는, 광화문을 점거하고는 시민들에게 생중계로 동화 한편을 들려준다. 한 노인이 원숭이들에게 팔찌를 주고 팔찌의 개수에 따라서 먹을 것을 퍼주었더니 원숭이들이 인간들처럼 아귀다툼을 하며 앞다투어 주인에게 복종하였다는 우화. 인간의 우매함, 사회의 무질서함에 대한 통찰력을 동원한 것이다. 자, 이제 악의 박사는 깨끗하고 통제된 신세계를 주장하며 세계정복을 선언하겠지? 아니다. 이 만화는 뼛속까지 개그만화니까. 오메가 박사의 목적은 원시사회로의 회귀다. 단순하고 행복한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갱생의 길이다!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렇게까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전무쌍한 악의 화신을 본 적이 있던가.

권력의 차별화, 그것에 따른 물질의 불균등한 분배, 다시금 소유물에 따른 권력획득으로 이어지는 나선 구조는 섬뜩하다. 어떻게 그 말도 안되는 폭주를 멈출 수 있을까. 주류 정치경제나 교육에서 여기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멈춰버린 지금 이 시대, 아직도 꿋꿋하게 딴지를 날리는 것은 오히려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즐김의 영역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뼈있는 농담이야말로 최고의 힘을 지닌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기이한 세상사 속에서, 만화라는 절대고수가 그 역할을 맡아서 강호를 평정해줘야 할 타이밍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10. 8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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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네이버 덧글 백업]
    – 지오 – 아니, 어디선가 들었던 스토리! 한번 봐야겠군요. 2004/10/11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