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또 저작권 이야기.
…저작권 친고죄 조항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도둑질하기 쉬워지니까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저작권 제도가 실제 세계와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한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친고죄 조항은 간단히 말해서, 침해당한 자가 직접 문제를 삼아야 기소든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조항을 없애면? 법률을 주관하는 동네 – 즉 정부가 나서서 일괄적인 정부규정으로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한다.
단속도 잘되고, 좀도둑질도 줄어들고 좋을 것 같다고? ‘일괄적인 기준’이라는 것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저작권이 관장하는 것은 무형의 정보체(흔히 ‘지식상품’이라고도 불리우는), 문화적 창작물, 뭐 그런 류의 것들이다. 그것이 만들어지고 또 활용되는 방법은 다들 잘 알고있다시피 하루가 다르게 진화 또는 퇴화한다. 인터넷상에서 mp3로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돈을 내는 방식을 10년전에 상상이나 했겠는가. 도토리를 주고 음악의 사용권을 사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쓰는 방식을 5년전에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매번 새로운 활용방식, 그리고 그것에 따른 새로운 권리침해 양상을 처벌하기란 무척이나 어렵고, 국가 차원 기구에서 소송을 담당하거나 하다가는 세월아 내월아 다 흘러가버리고 피차 다 망할 확률 99%다. 그래서 지적재산권 관련해서는 재판장보다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훨씬 더 신속하고 합의 과정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분쟁 조정 위원회’가 선호되는 것이고. 즉 빠르고 유동성 있는 분야에서는 융통성이 생명이다. 그리고 그런 융통성은 국가 차원의 일률적 기준으로 해결하려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공멸행 고속철도다.
하지만 저작권이 친고죄로 묶여있다면, 사태 해결의 열쇠는 저작권자가 쥐게 된다. 자신의 저작권이 활용되고 보호되는 방식에 대해서 융통성있게 지정하고 문제발생시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요새 한창 많은 이들이 떨고 있는 이미지 저작권 문제. 어떤 그림이 있다. 그것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퍼날라서 쓰는 것은 물론 불법이다. 만약 국가차원의 일관된 기준으로 저작권 위법을 다스려야 한다면 법률 자체를 엄청 세부적이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모든 경우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들거나(그리고 한달에 한번쯤 개정하고), 아니면 그냥 무식하게 하나로 때려넣고 일괄 벌금 물리는 쪽이어야 한다. 하지만 친고죄라면, 열쇠를 쥐고 있는 저작권자가 융통성 있게 사용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만약 그 조건을 어기면, 그때 가서 정말 그 조건을 어긴 것인지, 어겼다면 어겨서 자신에게 도움이 됐는지 해악을 끼쳤는지 스스로 판단해본 후 중재요청을 하든 고소를 하든 어쩌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 기사를 보자. AP연합뉴스의 뉴스콘텐츠이며, 이 뉴스에 사용된 이미지는 월트디즈니사의 것이다.
“(전략) …Permission is hereby granted to newspapers and magazines to reproduce this picture on the condition it is used in connection with direct publicity for the movie in which it appears and that it is accompanied by 2005 Disney Enterprises, Inc. All rights reserved.”
(신문 및 잡지에서 이 그림을 복제사용하는 것은 다음 조건을 충족할 경우 허용됩니다: 본 이미지의 출처인 본 영화의 직접 홍보와 연관되어 활용되며 2005 Disney Enterprises, Inc. All rights reserved 표기가 명시되는 경우)
…즉, 이렇게 쓰면 오케이라는 것이다:
“어마나! 이번 푸 극장판에서 드디어 새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뭐…재미 있을지는 미지수.”
2005 Disney Enterprises, Inc.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자가 애초에 내세운 조건 충족. 이 사람들은 홍보효과 누려서 좋고, 나 역시 거리낄 것 없으니 오케이. 예를 들어 한창 말썽인 ‘노래가사도 저작물이니까 블로그에 올리면 불법이야’ 따위 문제도 이렇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저작권 협회에서 “노래 소개를 위해서 비영리적 공개를 하는 것은 음반사와 가수, 작사가 정보를 표시해주면 허용함” 이라는 식으로 합리적인 규칙을 만들어서 공표해주면 되거든. 지금 문제는 그쪽 사람들도 이런 저작권 개념을 잘 모르고 사람들을 모두 좀도둑 취급하기에 바쁘니까 이런 식으로 머리가 안돌아가고 있을 뿐. 이런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려면, 저작권이 친고죄라는 기본 전제가 반드시 깔려있어야만 한다.
!@#… 하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습고 쪽팔리는 것이, 애초에 저작권을 친고죄로 만들었을 때 이런 기본적인 발상은 이미 다 끝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뭐랄까, 저작권이 친고죄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닭대가리들이, 다음 저작권 개정을 하면서 친고죄 규정을 폐지하려고 그런다고 한다. 그것도 올해. 난 도대체 어디서 그런 상큼발랄한 머저리 발상이 튀어나오는지 마냥 신기하다. 물론, p2p로 음악파일 다운받는 초딩들을 잡아서 혼내주고 싶은데 직접 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국가가 나서서 좀 잡아줘! 얘네들 바로바로 잡아서 벌금 때리고 먹여야 근절될꺼야!”라고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판을 통째로 깨먹으면 되겠냔 말이다. 지식/정보/문화 산업 발전의 원동력인 융통성이라는 미덕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냔 말이다. lose-lose 게임, 마이너스 섬 게임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냔 말이다. 제발 그럴때는 협회든, 중재위원회든, 파파라치 알바든 뭐든 알아서 동원해라. 그게 정상적인 것이다.
!@#… 저작권자 범위를 인접자에게까지 살짝 확장시킨 정도에 너무 패닉하지 말자. 진짜 난관, ‘친고죄 조항 삭제’는 이제 올 채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너무 들떠서 “블로그에 음악을 쓰지 말래요”라고 열심히 열내다가 재빠르게 식어버리고 모든 관심을 소진시켜버리지 말자. 지금 열기의 10분의 1이라도 세이브해서, 저작권 친고죄 조항 유지 운동(…아아… 이런 당연한 것에 무려 운동까지 필요하다니)을 이슈화시켜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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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gback by 최명진
RT 좀 오래된 글. 몇몇 흥분된 트윗을 보고 친고죄의 순기능은 없을까 하고 찾아봤어요. @capcold capcold님의 블로그님 | 저작권 친고죄 조항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 http://bit.ly/mLt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