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교육

!@#… 좀 많이 지난 이야기지만, “이젠됐어?” 라는 유서를 남겼다더라 하는 외고생 자살 이야기가 널리 퍼진 적이 있다. 사실인지 확인되기도 전에 빠르게 퍼진 것으로 보아 최소한 있음직한 일로 쉽게 받아들여진 셈인데, 자살이라는 비장하지만 근본 선정적인 소재와 교육의 압박 이야기가 결합하기에 더욱 친숙한 스토리라인이다. 안그래도 요새 한국의 자살율이 2009년에 높아졌다고 나왔다는 등 자살이라는 소재가 뉴스에 종종 오르내려서 생각난 김에, 그 쪽으로 한마디.

!@#… 직관적으로 떠올릴만한 이미지와 달리, 교육 때문에 더 스트레스가 쌓여 자살율이 증가한다는 이야기는 통계적 근거는 딱히 없다. 통계청 기준으로는 지난 10년간 실제로 노인자살률이 훨 심각하게 증가했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20-24세 청년 자살률도 증가했다(국가통계포털의 사회통계국 인구동향과 조사에서 사망원인통계 클릭: http://3.ly/z5P6). 청소년 자살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하실 분들도 있겠으나, 자료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거기까지다. 그렇기에 난데없이 지난 십수년간 뭐가 바뀌어서 어떻게 되었으니 그걸 (예: 신자유주의적 경쟁구도 심화 어쩌고) 뒤집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좀더 근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러 생각이 가능하겠지만, 자살에 이르는 생각의 테마를 되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학생자살이든 노인자살이든 청년자살이든 군인자살이든, 자살은 다양한 동기에 의해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물리적 치료가 필요한 임상적 차원(예: 중증 조울증)인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하나의 테마로 수렴된다. 바로 ‘절망‘. 자살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끝맺는 것이고, 그 바탕에는 그 이야기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지속될 방법이 완전히 없다는 나름대로의 이성적 및 정서적 판단이 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심 줄거리가 된다는 부분에서 절망하지 않으면 훨씬 안좋은 생활조건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절망하면 우수한 성적표를 받더라도 뛰어내린다. 홀로 외로울 것 같은데 잘만 살기도 하고, 친구도 많아보이는데 자살해서 큰 충격을 주기도 한다.

유사심리학자 흉내낼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런 절망의 예방 방법이 무엇인지 추론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것의 가능함.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 내 노력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효능감. 한마디로 이게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는 활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당연히 실제 사회가 바뀌어야하는 부분이 크다. 실패를 탈락이 아니라 시행착오 경험 축적 측면에서 평가하기. 다른 발상의 새출발에 대한 사회적 개방성. 좋은 발상은 반영되고 크레딧 등 보상이 돌아오는 선진적 피드백 시스템. 뭐 그런 것들이 실제 사회에 갖춰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개혁노력과 별개로 개개인에 대한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 적어도 그런 것이 가능하거나 혹은 자신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기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자의식을 갖추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게 절망을 방지한다고 본다. capcold가 꼽는 것은 세 가지다.

1. 세상의 복잡성/다양성. “공부나 해라”보다 더 위험한 건, “공부 못하면 평생 낙오자다”라는 것. 다른 길도 있다, 그런데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매우 고생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선택한 점들을 나중에 노력해서 선으로 이어 대단한 것을 이룰수도 있다. 다양한 경로가 있고 서로 복잡하게 엮여있다. 이 길을 가라! 하나의 해답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복잡성과 다양성을 직면하게 하고 매 순간 필요한 길을 조합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당장 교사나 부모, 아니 사회 전체가 조낸 하나의 해답만 좋아하잖아. 영단어 하나도 문장 맥락 속에서 추론하기보다 단어장에서 1대1로 외우도록 하고.

2. 그 세상 속 자신의 의지. 노는 것의 중요성? 아니. 어느 쪽이든, 이유, 자발성, 룰. 왜 이런 것을 한다는 선택이 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해보도록 하며, 그것에 대해서 공정한 룰을 지키며 추구해보도록 하는것. 노는 것이든 공부하는 것이든, 무엇을 하고 놀든 무엇을 공부하든 혹은 더욱 새로운 무언가를 하든. 그냥 노는 것에도 이유, 자발성, 룰을 부여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걸 하는 것이 교사고, 부모다.

3. 그런 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 미디어 교육.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보기 위한 핵심재료는 정보다. 뭘 제대로 알아야말이지. 그것도 계속 알아나가고 업데이트해야한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원하는 정보, 원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고, 세상 속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잘아는상태의 결정을 내리는가. 미디어 활용이다. 미디어로 제대로 정보를 찾고 모으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미디어를 통해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법, 정보를 협업 또는 혼자 생산하고 그것을 제대로 맥락화시키는 법까지 미디어야말로 교육의 대상이다.

!@#… 애초에 불을 붙였던 것은 김규항씨 한겨레칼럼으로 알고 있다. 매우 정서적으로 호소력있고 또한 매우 내용적으로 엉망인 글이었는데(심리상담/치료 자체를 위기징후로 논하는 단순성, 청소년 자살율 증가에 대한 거짓말, 어릴 때 놀이가 부족해서 지금 이렇다는 임의적 강변… 뭐 끝도 없다), 이건 일정부분 그 글에 대한 대척점에 있는 글이다. 별로 정서적 통쾌함(!)도 주지 않고 필자도 매체도 듣보잡이고 타이밍도 별반 맞지 않아서 그 글의 반의반의반의반만큼도 널리 읽히고 링크 퍼지고 펌질당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어보실만한 분들을 위해 한마디쯤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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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물론 @capcold 님의 지적대로 http://bit.ly/gPEXzM 김규항 씨가 @gyuhang 사실 관계 제대로 확인안하고 글 쓰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13. Pingback by Skyjet

    @gyuhang 지금 트위터를 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김규항 님의 생각이 궁금해서 멘션을 보냅니다. http://bit.ly/gPEXzM 규항 님이 작년 게재했던 한겨레 칼럼 http://bit.ly/cyYlQG 에 대한 비판적 성향의 글입니다.

Comments


  1. !@#… Joyh님/ 사실 독자들이 읽고 그걸 추론하시라고 일부러 그 용어만은 살짝 피했습니다. 스포일러! (핫핫)

    EE님/ 뻔뻔한건지는 제가 모르겠으나, 높은 호소력에 비해 곤란한 내용이 꽤 많다는 점은 얼추 확실한 듯 합니다.

  2. 김규항 따위 약장수의 글보다는 매우 정서적 통쾌함(!)을 줄 뿐 아니라 (적어도 제게는) 필자도 매체도 훨 낫고 타이밍도 별반 상관이 없어서… 그 글은 이 글에 비해 반의반의반의반만큼도 감흥이 없었다고 한마디쯤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

    (?)

  3. “놀이”가 좋은 것이지만… 놀이와 자살을 연결하는 진술 과정에서 중간 링크가 촘촘하지 않다는 것이 김규항씨 글을 뜬구름 잡힌 글로 만드는군요. 어떻게 놀아야하는지 놀면서 뭘 배울 수 있는지 놀이의 어떤 요소가 사람을 살고 싶게 하는지, 왜 하필 어릴 때 놀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없이 그냥 폴짝 뛰어넘어서 결승점에 도달한 느낌. 키워드는 좋은데 그런 얘기 하려면 심리학자들한테 더 물어봐줘야할 듯.

  4. !@#… M님/ 그게 바로 ‘결승점’만 먼저 놓고 나머지는 눈에 띄는 대로 적당히 조립해넣는 식의 주장의 문제점이죠. 결론만 매력적이면 호소력은 확보할 수 있지만, 진지한 논의나 실행을 하려면 근거도 사실이어야 하고 체계도 앞뒤가 맞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