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처벌을 과잉이라 판단하는 사유방식

!@#… 일제고사 불응시 허용 교사들에 대한 과잉처벌 관련 약간만 보충, 도대체 어떤 경우에 남의 조직 내부의 처벌을 과잉이라고 판단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실제로 이번 건에서, 교사들은 주어진 규정을 위반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처벌은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수준’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결정하는 여러 조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 우선 조직에 대한 위해의 정도에 따라서 생각하는 방식이 있다. 조직에서 처벌을 하는 것은, 구성원이 조직에 위해를 가했을 경우 그 심각성에 따라서 산정한다. 하지만 닥치고 사형을 부르짖기 전에, 고려해야할 요인들이 있기 마련.

하나, 조직에 위해를 가했는 주장과 달리 사실은 단지 조직 내의 어떤 특정 이익세력에 위해가 가해진 것일 경우, 나아가 심지어 그들의 사적 이득이 조직 전체의 지향을 방해하고 있었던 경우라면 처벌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 하지만 그 이해세력이 하필이면 그 조직의 리더들이라면 조직 내에서 처벌수위를 낮추는 결정 따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외부에서 판단해주는 것, 즉 법정에서 다시 만나요 밖에 방법이 없다. 둘, 실제로 조직에는 위해가 가지만, 그 결과 조직이 위치한 나머지 사회에는 큰 이득이 되었을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바로 그 나머지 사회에서 처벌의 수위를 낮추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간접적으로는 그 조직이 내부저항자를 발전적 에너지로 사용하지 못하는 찌질이들임을 비난함으로써, 직접적으로는 법정에서 정상참작으로.

두 경우 모두, 결국 법정에서 결판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는 한다. 일제고사 불응시 허용의 경우, 공정택 교육감과 그의 사학산업 동료들에게나 이익이지 전체 교육계로서는 비용면, 정책자료 생산면, 교육 효과면 모두 뻘정책인 현행 방식 일제고사에 대한 신화 해체인 동시에, 어떤 이유에서든지간에 보기 싫으면 안보겠다는(전국 석차 안 받아본다는 댓가는 스스로 지고) 소비자 권리 충족. 즉 특정세력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바람직하다. 그러니까 ‘사회’의 일원으로서 처벌의 수위를 낮추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으며, 그것이 이왕이면 법정에서 정식으로 결정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 아니면 조직의 능력에 따라서 생각하는 방식도 있다. 공무원의 복종 규정 들고 나오면서 보스의 명령을 100%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닥치고 사형을 부르짖는 이진법 저능아들에게 굳이 에너지 할애하지 말고, 차근차근 수위를 잡아보자.

1) 가장 낮은 수위는, 위해행위가 있었기에 원칙적으로 처벌이 있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가 되지 않았거나 큰 차원에서 오히려 득이 되었을 경우, 내지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크게 체면을 구기는 경우. 그 때 처벌의 수위는 ‘상징적’이 된다.

2) 다음 수위는 위해 행위가 있었지만 그 인원을 계속 조직 안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자신이/필요가 있는 경우. 처벌의 수위는 일시적 불이익이 된다. 감봉이든 인사이동이든 뭐든.

3) 다음 수위는 우리 조직은 도저히 이런 행위를 한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처벌의 수위는 조직에서 방출, 즉 해고. 이 사람과 우리는 관계 없어요, 선언.

4) 가장 높은 수위는 조직이 그 개인에게 이새퀴 복수해주마라고 판단하는 경우. 이미 그간의 노동으로 확보한 혜택을 박탈하는 것은 물론, 향후 관련 업종 취업마저 방해한다. 문자 그대로 양날의 칼인데, 일벌백계의 이미지로 조직을 휘어잡기야 하겠지만 반대로 그렇게까지 해야만 뭐가 유지될 정도로 조직의 리더십 자체가 경직되어있다는 선언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그 경우는 단순히 조직내부의 위계논리가 아니라, 업종 전반에 씻을 수 없는 직업윤리적 타격을 주었을 경우에 해당되어야 한다.

만약 한국의 교육행정이 군대식이 아니라 좀 더 21세기형 교육에 걸맞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싶다면, 일제고사 불응시 허용건 같은 간접적-소극적인 내부 저항 문제라면 1과 2에서 해결을 봐야 합당하다. 일제고사 현장에 들어가서 교실문을 걸어잠구고 농성을 했다면 모를까. 하다못해 80년대말 전교조 교사 대략 해직사건 당시에는 “교사가 노동권을 이야기하다니, 스승됨의 윤리를 실추시켰다!”라고 나름 그럴싸한(물론 웃기는 소리지만) 명분을 붙이려는 노력이라도 했다. 그런데 이번 교육청은 뭐, 조폭논리를 은폐할 최소한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나보다.

!@#… 혹은 그냥 최소한의 잘잘못 판가름 논리로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의도’를 배후에서 읽든 간에, 핵심은 행위 그 자체여야 한다. 코에 코걸이 귀에 귀걸이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결국 뭔가 실제로 규정을 명시적으로 어긴 행위는 1) 교장 결재 없는 가정통신문 발송, 그리고 2) 불응시 학생을 무단결석 처리하지 않은 것 두 가지다. 학생이나 학부모와 시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은 어쨌든 정상적인 업무의 일환. 일제고사 거부, 조직에 대한 반항, 고로 파면 뭐 그런 쌩양아치스러운 비약이 아니라 정말 팩트를 펼쳐놓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 선택을 묻는 무허가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불응시 학생의 결석처리를 빼놓았다는 것으로 해임 파면을 하는 것이 과연 과잉이 아니라면 무엇이 과잉이겠는가. 담임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그런 통신문으로도 다들 ㅎㄷㄷ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동의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기는 한 것 같지만, 그래서는 응시거부를 선택한 학생들의 낮은 비율이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시험거부에는 학부모 단체의 역할이 크다(물론 ‘비주류’지만). 그런데 그 정도 수위의 위반조차 조직이 내부에서 감당하며 컨트롤할 수 없다고 무능선언을 해버리겠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런 수위의 행위가 조직에 미친 위해가 형사상 사법처리 대상이 될 정도의 직업윤리적 문제행위(예를 들어 여고생 성폭행)보다 크다고 판단을 한다면, 그 조직의 건전한 경영판단력은 솔직히 좀 많이 물 건너갔다고 간주해도 좋다.

!@#… 이들 교사들이 취한 방식이 대단히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 현재 계속 강행중인 일제고사 사업이 워낙 문제가 있기에 그 사업의 중단은 사회적 차원에서 이득이며, 2) 그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는 정상적인 조직이 내부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위보다 한참 낮으며, 3) 선생들은 그것에 대한 반대를 하고는 있지만 간접적으로 대안을 알려주고 방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capcold는 이 사안은 서울시 교육청 수뇌부의 조낸 과잉처벌, 그리고 본격 병맛 커밍아웃이라고 안심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 또한 이번 건을 중시하는 것은 무슨 참교육 어쩌고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내부고발자 보호’ 제도 및 문화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즉 사안의 이해득실을 복합적으로 따져야 하는 것이지, 그게 아니라 “조직에 대한 배신은 피로 씻어라”라는 식의 조폭 논리가 만능으로 통용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법정에서, 변호사들이 더 열심히 법조항 붙여가면서 해주리라 믿는다. 제발, 그런 정도 해 줄 수 있는 좋은 변호사를 좀 고용하시길.

 

PS. 진심으로 그놈의 강제적 일제고사 사업을 물먹이고 싶다면(반드시 물먹이는 쪽이 바람직하다), 불응시 같은 소극적인 방식보다는 시험 현장에 가서 백지 답안 때리고 오는 백지캠페인이 시험에 대한 적극적 거부로서 훨씬 의미있고 효과적이며, 덤으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나서는 만큼 교육적 효과도 좋다고 본다. 결석처리도 안해도 되고, 무허가 가정통신문에 의존할 필요도 없고, 사실 학교로서는 평균이 추락해서 정부 지원을 더 받아내는 장점도 있다!(핫핫) 학교당국이 그런 행위를 막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예를 들어 내신 성적에 반영하려고 한다든지, 억지로 그런 학생들을 시험을 못보게 하려고 한다든지), 그게 바로 법적으로 문제 삼을 절호의 기회. 룰이란, 지켜가면서 유리하게 이용할 때 가장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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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어떤 처벌을 과잉이라 판단하는 사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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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Skyjet의 매일매일의 감성일기

    21세기 학생에게, 20세기 교육방식!? 일제고사…

    이 포스팅을 읽는 누리꾼들 중에서는 한 번쯤 ‘연합고사’나 ‘일제고사’를 치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많이 치러 보신 적이 많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거의 한 달에 …

Comments


  1. 결정적으로,
    이 상황이 고등학교도 아니요, 중학교도 아니요,
    초등학교에서 일어났다는 게,
    아연실색할 상황입니다.

    하아.ㄱ-

  2. !@#… 여울바람님/ 중학교에도 곧 들어갑니…;;; 여튼 뭐랄까 그 분들은 교육에서 ‘경쟁’이라는 요소를 바람직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는 듯.

    JNine님/ 그저 제 사유 과정의 ‘소스코드’를 가급적이면 온전히 보존하고는 가끔 공개하는 정도죠 뭐. 옙, 저는 ‘Code is poetry’ 격언의 신봉자입니다.

  3. 방법론의 재정의에 대한 역설인가요…
    멋집니다….lol

    시스템 안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보다는 그 시스템의 룰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 할수 있어야 하는게 진짜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무조건적인 거부는 시스템을 잘 몰라도 누구나 취할수 있는 선택이지만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법론의 선택은 일정부분 그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뒤다라야 하는 엄연한 “능력” 이지요…^^

  4. !@#… LieBe님/ 그래서 사실, 뜨거운 열정의 지사들보다는 얍삽한 전략가가 더 필요한 세상이죠. 유감스럽게도 후자를 위한 자리가 아직 한국의 좌파/진보(혹은 그저 상식) 계열에서는 지극히 부족합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