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제작(2) 창작의 기획 [만화규장각 칼럼]

!@#… 게재본은 여기로. 만화로 예를 들었으나 뭐에 적용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만한 창작 기획 원칙.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 제작(2) 창작의 기획

김낙호(만화연구가)

아무런 체계적 기획 없이 그저 영감에 의해서 난데없이 엄청난 작품이 창작되고, 가능성을 확실하게 알아본 출판사에 의해서 제대로 지원되어 히트를 치는 경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벼락도 치고 로또 1등도 나오듯,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서 그런 우연에 산업적인 것을 의지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즉 창작에는 일정 정도 기획이 필요하고, 이전 회에 언급한 협업 조율 같은 것도 결국 좋은 창작기획을 효과적으로 실제 작품으로 연결짓도록 하는 도구가 되어준다. 어떤 분야가 한창 돈이 흘러들어오는 호황기(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거품기)에 들어서면 그저 아이디어 하나만 매력적으로 제시하고 나머지 과정은 저절로 흘러가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상황 내지 불황기라면 더욱 자세한 기획이 필요하다.

창작 기획에 왕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 조건은 있다. 바로 소재, 독자층, 전개구조 등의 3가지다. 표현 자체에 몰두하는 창작자라면 때로는 그저 하나의 장면을 먼저 떠올리고 나머지를 만들어낸다든지(예: 유지니의 최후 장면을 먼저 세워놓고 작품에 임했다는 김혜린의 ‘테르미도르’) 하는 등 다양한 접근도 가능하겠지만, 상품으로서의 측면을 같이 생각한다면 이 3가지를 먼저 세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수 밖에 없다.

첫째, 소재는 작품이 다뤄나갈 재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정하는 것은 단순히 이것을 해보겠다는 직관 이외에도, 당대의 유행, 앞으로의 트렌드 예측, 확보한 혹은 확보하려고 하는 창작자 인력풀의 종류, 타사 협력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외적 변인을 고려하게 된다. 이쪽 팀에서 잘 할 수 있기에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는 소재를 골라내는 것이 목표다. 이것만은 꼭 다뤄보고 싶었다! 혹은 이런 것이 반드시 필요해서 만든다! 라는 열망으로 소재를 선택한 후 그 소재로 어떻게든 호응을 얻는 것에 성공할 만한 작품으로 다듬어내는 기획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 역시 결국은 앞서 이야기한 외적 변인들을 활용해서 세부를 정하게 된다. 물론 소재는 종종 여러 가지를 함께 제시하여 서로 합성하는 것도 가능하다(예: 서유기 +한자 = 마법천자문). 소재 선정에 대해서 가장 먼저, 그리고 모든 세부 결정 과정에서 항상 반복해서 물어야 하는 질문은 한가지다: “왜 독자들이 이 소재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가”. 기획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초보적인 실수는, 세상에 자신 같은 사람이 넘쳐날 것이고 그게 바로 자신의 독자층이라는 전제다. 그 소재에 관심을 가질만한 수요가 이미 있거나 앞으로 생겨날 논리적 당위가 정말로 있는지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 기획자가 난데없이 미생물학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해서, 미생물학이라는 소재에 대해 독자들의 관심이 생겨날 당위는 없다. 그 경우 이미 수요가 있는 소재와 결합하든 다음 기회로 미루든, 조정이 필요해진다. 아직 재미나 완성도, 부대효과 그런 것 이전에 관심 그 자체의 차원에서 소위 “장사가 되지 않을” 창작물들이 판별된다.

독자층을 기획하는 것은 작품의 표현수위, 장르코드, 시장규모예측, 지속성 여부, 활용 매체 등 실무적 변인들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다. 누가 어디에 돈을 쓰는가. 왜 그들이 하필 내 작품에 돈을 써야 하는가. 이것 역시 기획자의 열망, 예를 들어 “성인만화잡지를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만화가 많이 들어가고 진보적 성향이 강한 어린이 교양잡지를 만들고 싶다” 같은 요소가 작용하기 쉽지만, 시장의 현실과 냉정하게 견주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여기서 독자층은 단지 작품을 읽는 이들 일반 뿐만 아니라, 원고료를 지불하는 매체 등의 주체들도 포함한다. 만화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그러니까, 나)한테 돈을 줘! 같은 입장은 기획이 아니라 구걸이다. 이 작품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만족시켜 지갑을 열 수 있는가 산출하고, 그것에 따라서 창작의 방향을 세부 조율하는 것이 기획이다.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없는 독자층을 개척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이 필요하다는 당위가 아니라 어떻게 그들을 독자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전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화계의 성숙한 다양성을 위하여 성인순정만화잡지의 명맥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와 순정만화 독자가 원래 90년대 내내 만화잡지 소비성향이 안정적이었으며 그들이 이제 성인이니 그들을 위한 만화잡지를 낸다는 타겟층 설정을 가정해보자. 여기에 빠진 것은 그 독자층의 만화 뿐만이 아닌 문화향유 일반의 패턴이 아직도 90년대와 같은가라는 냉정한 질문이다. 자신들이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이라면 어떻게든 보고 싶어 하는 이는 어느 정도 규모인가. 단지 추억상품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층과 계속 새로운 만화를 접하고 싶어 하는 층은 어느 정도씩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수요를 맞춰줄 창작을 할 의향과 여지가 있기는 한가, 아니면 기획자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어떤 형태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인가. 금새 뚜렷한 해답이 나오기 힘든 질문들이지만, 당위의 충족이나 우연한 성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을 주목해야하는지는 명확하다.

셋째, 전개구조를 잡아야 한다. 소재와 독자층이 관심을 끌어내고 분야를 잡는 과정이라면, 전개구조는 창작물을 실제로 읽었을 때 붙잡아놓는 체험적 매력을 만드는 기초다. 한가지 중요한 접근법은 대결식 전개구조인데, 3가지 요소를 담는다: 바로 독자에게 납득 가능한 룰의 제시, 룰에 위배되지 않는 승부, 그리고 승부에 기반한 주인공측의 성장이다. 특히 대결의 룰을 정하는 것이 작품의 흡입력은 물론 대형 히트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수요소다. 완력의 무력대결이라는 단순한 발상도 외계인종별 체질, 변신, 죽음과 재생 같은 룰들을 적재적소에 첨가하면 드래곤볼이라는 소년만화의 모범이 되어준다. 매직더게더링에 기반한 카드게임 규칙으로 대결하는 유희왕, 범죄 발생과 탐정의 추리라는 룰로 움직이는 명탐정 코난, 한자로 대결하는 마법천자문 등 초장편 히트 장르만화들은 각자 확고한 룰에 의해 움직이고 그것을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나아가 룰은 작품의 기본 세계관과도 직접 연결되어, 설정에 의한 흡입력을 만드는 핵심이 되어주기도 한다. 혹은 캠벨의 신화구조, 즉 주인공의 소명, 거부, 받아들임, 고난과 극복, 선대와의 갈등과 해소, 세상으로 돌아감(주: 매우 단순화하고 디테일을 생략한 버전이다)도 손쉽게 등장하는 서사구조다. 전자의 경우 승부에 기반한 결말 미정 장기연재물에 좋고, 후자의 경우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끝맺기에 적합하다. 물론 후자의 이야기 가운데 도전과 극복 부분에 전자를 녹여 넣는 것도 보편적이다.

이 과정에서 계속 중얼거려야할 질문은, “이런 전개가 과연 계속 볼 매력이 있는가”다. 주인공과 그 쪽에 이입할 독자들에게 충분한 도전과 해소를 제공할 수 있는 전개인가. 하다못해 지식전달에 집중하는 학습만화라 할지라도 호기심을 제기하는 도전과 그것에 대답을 하는 해소라는 전개과정을 계속 거치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니 사실 바로 그런 전개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교과서 마냥 순차적으로 줄줄 늘어놓는 학습만화가 대체로 주제의 유용성과 관계없이 재미 부족으로 외면 받는 그런 작품들이다.

사실 소재-타겟-전개구조라는 3대 기획과제는 약간만 변형하면 만화 이외의 분야에도 크게 다르지 않게 적용된다(서비스내용-유저층-기본구현방식으로 바꾸면 정보서비스업의 기획이 될 정도니 말이다). 무엇을, 어떤 판을 대상으로, 어떤 식으로. 혹은 왜 이것이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줄 소재인가, 그 누군가는 왜 여기에 지갑을 열 것인가,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계속 이것을 볼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하는 것이 기획의 첫 단계인 것이다. 적당히 우리 작품은 대단해요 수사를 잔뜩 찾아내서 붙여놓아 물주를 홀리는 것이 기획이 아니다(…아니 뭐 물주가 충분히 멍청하고 충분히 돈이 많아서 그냥 홀려진다면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이것을 기획한 후, 창작자의 경우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할 능력을 취득하거나 제작자의 경우 창작인력을 모집하게 된다. 그리고 디자인상으로는 캐릭터, 스토리상으로는 에피소드 정리라는 세부 디테일을 잡아나가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역할 분담과 계약관계를 깨끗하게 가꿔왔다면, 이제 작품제작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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