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분량 기획상 슬슬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연재물(독자론으로 2-3회 더, 총정리 하나쯤). 나름 선정적인(!) 주제 제시에도 불구하고, 역시 별로 널리 안 읽히는 코너.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독자(1) 나이값과 오타쿠
김낙호(만화연구가)
창작에 대해서, 판촉에 대해서, 제작에 대해서 지금껏 여러 논점들을 살펴봤지만, 돈벌이라는 명료한 목표를 위해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지불하는 이들, 즉 독자(물론 지원사업 같은 경우라면 또 다른 경우지만)들의 특성을 봐야한다.
만화 독자라고 할 때 떠오르는 고정관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꽤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을 만한 것이라면 바로 ‘나이값’과 ‘오타쿠’다. 나이값이란, 만화를 읽는 것에 대해 어떤 연령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꽤 희미해진 감이 있지만,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식의 오랜 편견이 대표적이다. 성인을 독자로 삼는 시사만화가 만화 역사에서 차지해온 비중만 생각해도 당연히 사실과 동떨어진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맹위를 떨치면서 지금도 만화를 보는 성인은 최소한 마음이라도 덜 성숙할 것이라는 불편한 시선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주범이다.
그런데 이 편견은, 만화 취향에서 신체적 나이와 취향으로서의 연령의 차이 발생이라는 흥미로운 측면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하나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에서 흔히 KAGOY (Kids Are Getting Older Younger: “아이들이 점점 더 어릴 때부터 나이가 든다”) 라고 부르는 현상이 만화 독자들의 취향에 반영되는 모습들이다. 갈수록 아이들이 더 낮은 연령대부터 이전에는 더 높은 연령대의 취향이라고 여겨지던 것을 소비하게 되는 현상인데, 이전에는 사춘기 이후 하이틴들의 취향이라 여겨졌던 로맨스물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대에서 즐기게 된다든지, 아동 대상 기성복 패션 같은 것들도 여기 포함된다. 하지만 빨리 성숙해지려는 성향과 동시에, 인지발달 자체는 여전히 어린 연령대 특유의 모습을 간직하는 면들이 있기에 결국 그 차이 속에서 새로운 공식들이 생겨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홍은영 작가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생각해보자. 이 작품은 이전 세대의 학습만화들과는 담겨있는 코드들이 꽤 다르다. 글래머 여신들과 근육질 남자 신들이 넘쳐나고, 설명해주는 ‘박사님’의 역할은 줄어든 상태에서 모험극화 스타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보다 더 나중에 나와서 마찬가지로 큰 히트를 기록한 [마법천자문]은 게임스타일의 룰에 입각하여 격투를 벌이는 소년모험만화 코드를 가져온다. 두 작품은 미취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기존 ‘학습만화 독자’를 주요 타겟으로 삼고 있는데, 그보다 한 층위 위의 연령대에서 선호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장르코드를 들고와서 그것이 오히려 지금은 해당 연령층에 잘 먹힌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저연령층이기에 더 선호하는 원색 컬러, 가벼운 말초적 유머, 복잡한 연애감정의 배제 등이 필요하기도 하다. 청소년 대상 만화 또한 ‘성인용’ 성적 코드를 적극 활용하여 사춘기 취향을 적극 공략하는데, 극단적인 예는 [투러브루] 등 소위 ‘판치라’(줄거리상에서 여성팬티를 자주 엿보도록 노출시키는 장르코드) 러브코미디들이 있다. KAGOY가 작용한 또다른 좋은 예는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다. 뽀로로는 아동공동체 위주의 사건 전개, 신기한 발명품, 말썽과 온전한 화해 등 기본적으로 7-80년대에 명랑만화에서 흔하게 접해왔던 코드를 많이 담아내고 있는데, 유아부터 미취학 아동까지의 한층 저연령대가 좋아하는 원색적 동물캐릭터 코드와 성공적으로 엮어냈다. 정작 장르 출판만화에서는 명랑만화라는 장르가 90년대 이래로 거의 밀려나다시피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할 따름이다.
KAGOY가 더 높은 취향연령대를 추구하는 모습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키덜트’가 있다. 키덜트란 키드(아이)+어덜트(어른)의 합성어로, 아이의 취향을 간직하는 어른이라는 조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히 어른이 어린이 만화를 본다는 식의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다. 더 어릴 때부터 향유한 코드를 계속 간직하며 숙성시키는 것으로, 과거의 기억을 다시 누려보고자 하는 향수와도 다르다. 비유하자면 ‘성인용 아동물’ 같은 것이다. 아동물의 코드이 주었던 즐거움을 버리지 않지만, 지금은 성인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코드들을 함께 넣어 즐긴다. 정교한 작동장치들이 갖춰진 수십만원짜리 고급 건담 프라모델은 ‘조립식 장난감’이라는 아동코드에 기반하지만, 향유를 위해 필요한 재력으로나 섬세한 기술 및 관심으로서나 성인의 성숙함을 필요로 한다. 만화의 경우 철학적 질문이 담긴 판타지 격투물 같은 대놓고 키덜트 취향이 담긴 장르물들을 만나기가 이미 어렵지 않으며, 키덜트 문화 자체를 주요 소재로 활용하곤 했던 [마린블루스] 같은 만화도 있다.
이렇듯 “만화는 애들만 보는 것이다”라는 편견에 ‘아니다’라고 맞서는 정도의 인식으로는 부족하다. 만화 독자의 세계에서는 취향과 연령의 차이, 그것에 따른 새로운 취향코드가 계속 생겨날 수 있고, 그들에게 만화로 장사를 하고자 한다면 흐름을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다른 만화독자에 대한 흔한 편견의 예는 ‘오타쿠’다. (일정 연령 이상에서는) 만화, 특히 장르만화를 읽는 사람들에 대한 별도의 인식이 횡행한다. 사실 매니아층이라는 것은 장르문화라면 어디에나 있는 게토인데, 만화의 경우는 너무나 쉽게 만화 독자 일반을 그 영역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런데 만화독자는 오타쿠가 아니라는 식의 전체 부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만화 독자 가운데 오타쿠는 일부이며, 그들이 어떤 부문에서 존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만화로 사업함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업에서의 타겟층으로서 오타쿠를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심취한다는 선호가 아니라 긁어모으겠다는 소유욕까지 갖춰져야만 한다. 특정한 취향 코드를 담아내면 무조건 다 사고 보는 이들, 즉 애정을 물질적 형태로까지 드러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스토리 전체의 완성도를 희생해서라도 각종 캐릭터 매력 요소를 추출하고 재조합하는 것에 집중하는 소위 ‘모에’물은, 일본에서는 그럭저럭 탄탄한 시장을 지닌 오타쿠 문화다. 밤에 껴안고 자기 위해서 해당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 커버를 살 정도로 물질적 애정표현까지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팬층이 있을 뿐, 관련 상품 시장으로서는 유의미한 규모가 형성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모에물 오타쿠 취향은 턱없이 과대평가된 것이다. 본래 의도한 감상법보다 열등한 품질의 불법스캔본을 긁어모으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욕심 따위는, 그냥 단순한 습관일 뿐 딱히 애정도 심취도 아니다.
정작 한국에서 돈을 쓰는(!) 오타쿠들의 장르라면, 대표적인 것이 삼국지, 2차대전, 그리고 건담 등이 있다. 사실은 세 가지 모두 하나의 코드, 즉 대규모 전쟁서사(고대전, 근현대전, 우주전)를 담아낸다. 많은 설정 놀음을 할 수 있고, 상상력 개입의 여지가 크며 일정한 취향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정밀함을 다투기 좋다. 나아가 박학함을 자랑할 때 존경 비슷한 것도 받는다. 한국에서는 시장이라는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모에’ 오타쿠와 달리, 이런 것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오타쿠 독자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삼국지를 모태로 하고 건담을 패러디라는 방식으로 살짝 섞어 넣은 최훈의 [삼국전투기] 같은 것이 한국의 성공적 오타쿠 만화에 해당된다.
요약해서, 독자에 대한 이해는 만화 독자에 대한 편견에 빠지지도 않고, 무조건 부정하지도 않으며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성향들을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직면을 한 후에야 비로소 기초적인 타겟층 설정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런 기초 작업 후에는 취향의 분화와 군집화 같은 좀 더 흥미로운 특징들, 매체에 따른 향유방식의 차이 같은 더 폭 넓은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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