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작 ‘남자친9’ 보다 표현은 세련되어지고, 신선함 측면에서는 좀 심심해졌다. 안정기에 들어선 작가가 되어버리는 건가? 그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는 뭐라 하기 힘들겠지만.
————————–
에피소드적 생활 – 『크래커』
김낙호(만화연구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공적인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커다란 난점 중 하나는 바로 독자들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방식이 이중적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우리가 이야기를 ‘경험’하는 방식은 큼지막하고 연속된 서사의 흐름을 따르지만 ‘기억’은 분절적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가 서사적 흐름으로 경험된다는 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기억이 에피소드라는 말은 무엇일까? 전체적이고 커다란 줄거리의 흐름을 기억하기보다, 강렬한 순간들, 뚜렷한 인상이 남는 어떤 상황과 그 속에 처해진 인간들의 당장의 대처 패턴 위주로 기억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교량 역할로서 비로소 하나의 줄거리와 서사적 흐름이 떠오른다. 특히 우리들의 진짜 삶 자체부터가 특별한 세계 속 특별한 사건의 경험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따라서 만약 일상적인 상황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면, 당연히 굵은 서사적 흐름보다는 일관된 분위기 속에서 반복적 구도의 에피소드 위주로 제시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굵은 서사적 사건을 만들만한 소재가 없어서라기보다, 그쪽이 훨씬 더 말 그대로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크래커』(토마 / 애니북스)는 문자 그대로 그냥 같이 살고 있을 뿐인 두 동거 남녀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다. 서로 연인도 아니면서 단지 방세를 줄이고자 같이 사는 남녀라는 설정이 일상적이라기보다, 여하튼 그렇게 살고 있는 두 사람이 겪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공감시키기 위해서 극단적일 정도의 에피소드 중심 이야기를 구사하고 있다. 짧은 몇 페이지 속에 벌어지는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소한 다툼, 작은 오해, 또는 단순한 잡상이 파스텔톤의 간결한 낙서체 그림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위 에세이툰이라고 불리우는 감상에 그림을 삽입하는 것에 가까운 장르의 만화류들과는 다르게, 실제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교훈이나 단상을 전달해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짤막한 에피소드들의 연속 속에서 꾸준히 인간사가 진행된다. 남자는 연애를 하게 되고, 여자는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며 여러 상황들을 벌이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차이기도 한다. 밴드 매니저가 직업인 남자는 잘 못나가지만 자기가 지지하는 음악가들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여자는 조직 없이 스스로를 관리해야하는 압박과 자유를 동시에 느끼며 직업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특별히 처절하다거나 극사실적으로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해서 현실을 환기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일상’으로 독자들에게 경험시켜준다는 것이다.
『크래커』에서 다루는 남녀간의 관계 역시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 둘은 알고 보니 서로를 갈망하지만 겉으로는 쿨하게 서로를 외면하는 주말 드라마 같은 방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고, 문자 그대로 그냥 살다가 이런 저런 서로에 대한 모습을 관찰하고 또 관망하는 사이다. 대변을 보고 깜빡 잊고 물을 안내린 적이 있는 여자와 연애를 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는 남자의 결심이 이런 사이를 잘 나타내준다. 작가는 이전 작품인 『남자친9이야기』에서도 이미 이런 적당한 거리감을 지닌 쿨한 인간관계 설정을 선보인 바 있지만, 헤어진 남자친구라는 나름대로 끈적한 설정이 깔려있던 바 있다. 하지만 『크래커』에서는 그 정도의 설정마저도 부여하지 않고, 정말 문자 그대로 서로를 관망하는 인간관계 자체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훨씬 더 높은 완성도의 트렌디함, 쿨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드라마틱함으로 다가온다. 확실하게 작가는 한층 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한층 능숙하게 다가선 셈이다.
일상의 에피소드로 서사적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세밀함이다. 기이한 사건으로 시선을 휘어잡는 방식이 아닌 이상, 독자들의 관심을 붙들어 맨다는 것은 바로 하나의 주어진 상황을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서 복잡 미묘한 관계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끄집어내어 공감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에피소드가 ‘리얼함’을 획득하여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이 뻗어져 나오고,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 틀이 완성된다. 『크래커』의 경우 연인은 아니지만 연인이 될 수도 있는 현실적 조건에 처해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 있어서 그런 세밀함이 상당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에서, 여자는 남자가 돈 안되는 밴드 매니저 일을 하고 있기에 그저 그렇게 수주를 받고 있는 프리랜서인 자신과 비슷하게 곤궁한 처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까 원하는 CD들을 대량으로 잘만 사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 하나다: “있는 집 자식들이란…”. 이런 종류의 것들이 바로 실제로 우리들이 현실 속에서 종종 구사하는 우리 주위 세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 아니던가.
물론 에피소드 단위의 감수성에 기반한 접근 방식이 모든 면에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약간만 독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해도 등장 인물간 관계에 대한 피상적 묘사에 머무르기 쉬우며, 쿨함을 추구하던 의도가 경박함으로 오도될 수 있다. 즉 독자들의 상황적 트렌드를 강하게 탄다는 것이다. 물론 그 트렌디함 마저도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근본적인 매력을 겸비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크래커』의 경우 에피소드들이 축적되어 만들어내는 전체 이야기의 짜임새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긴밀하게 묶여지고 있기보다는, 한회씩 순간순간 펼쳐보게 만드는 연재물로서의 재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크래커』는 재미있다. 공감을 보내는 독자층을 충분히 끌어들일 힘도 있다. 에피소드 묘사의 능숙함도 즐겁다. 온라인에서 한 회씩 연재로 보는 것의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책도 좋은 품질로 제작되어 출판되었다. 작품 분위기와 어울리는 팝 성향 독립밴드들의 노래들을 모아 놓은 음반도 같이 출시되어 분위기를 돋아준다 (다만, ‘최초’의 카툰 사운드트랙이니 하는 명백한 거짓말을 홍보자료에 늘어놓는 과유불급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면 마음 편하게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만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재의 매력’에 대해서 이쪽 독자들은 둔감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전혀 딴 소리~
!@#… TV드라마 즐겨보는 것을 보면, 연재의 매력에 아주 둔감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확실하죠. 연재 만화의 경우 좀 더 사람들에게 연재의 패턴을 강요하는 기술들을 다시 연마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강풀 만화들이 좋은 참조사례라고 봅니다.
크..우문현답을 해주시는 멋진 주인장.
그건 그렇고, 국내사례 중 무지개 행진곡 이전에도 만화책과 더불어 음반이 발표된적이 있을까요?
!@#… 제 기억도 무지개 행진곡보다 이전까지는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음, 이 기회에 만화와 음반의 연계 사례를 주욱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