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부부 생활담 – 마조앤새디 [기획회의 302호]

!@#… 연재지면인 인텔 홍보공간은 현재는 네이버에서 페북으로 이사를 간 상태. 포털사이트 말고도 이런 식으로 더 다양한 공간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는 만화가 나와주는 것이 무척 바람직하다.

 

경쾌한 부부 생활담 – 마조앤새디

김낙호(만화연구가)

장난감과 힙합을 좋아하며 낙천적인 생활담이나 동류 친구들과의 기발하고도 시시한 상상을 유머로 버무려 만화를 연재하던 청년이 결혼을 하고 몇 년 지나면 어떻게 될까. 오늘날 한국사회라는 환경을 생각해보면 쉽게 상상할만한 광경들이 있다. 원고의 압박과 생활 일반에 적당히 찌든 가장이 되어 향수어린 눈으로 과거를 가끔 그리면서, 다소의 상실감을 가족에 대한 정으로 얼추 추스르며 소소한 가족적 감동 같은 메시지 정도를 내밀지 않을까. 그러면서 성숙해졌다고 자처하면 금상첨화(아니, 설상가상)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젊은 작가가 그런 식으로 “성숙”의 길을 가지는 않는다. 여전히 장난감과 힙합을 좋아하고, 낙천적인 생활담을 풀어내고, 기발하고도 시시한 상상을 유머로 버무리며 만화를 연재할 수 있다. 다만 자취생활이 부부생활로 바뀌고, 연애상대가 배우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 그리고 가장 대신, 주부가 되어 있다.

[마조앤새디](정철연/예담/1권 발매중)는 ‘마린블루스’로 00년대 초중반에 개인홈페이지 연재 웹툰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게 된 작가가 수년 간 휴식 후 다시 돌아온 작품으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마련된 PC칩 업체 인텔의 홍보 코너 안에 연재지면을 두고 있다. 개인홈페이지나 네이버의 만화연재코너가 아닌 다소 이례적인 공간에 연재되고 있기에 새로운 독자들이 우연히 찾아보기가 그리 쉬운 편은 아니지만, 꾸준한 입소문으로 인지도를 올려온 작품이기도 하다. [마린블루스]의 자전적 주인공 성게군은 그간 다니던 캐릭터회사에서 나와서 만화 그리는 프리랜서를 하고 있고, 사내커플이자 여주인공이었던 성게양은 계속 직장을 다니고 있다. 자연스럽게 가정주부의 역할을 하게 된 작가는 이제 곰으로 그려진 ‘마조’, 단지 회사를 나가기 때문이 아니라 가정내 권력구도로 볼 때 명실상부 가장 격인 여주인공은 토끼로 그려진 ‘새디’가 되어 있다. 이름 만큼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티격태격 호흡이 잘 맞는 부부로서 벌어지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있는 일화들이 경쾌하게 이어진다. 장난감이나 기타 귀여운 아이템을 좋아하던 취향에 이제는 주부 특유의 생활감각까지 더해진 남편, 그리고 기가 센 성격에 가장의 권력까지 더해진 부인이 싸우기도, 화해하기도, 별 것 아닌 상상을 하기도, 서로 크고 작은 구박을 하면서 놀려먹기도 한다.

[마조앤새디]의 경쾌한 유머감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에는 허세 없는 당당함과 낙천성이 큰 역할을 한다. 새 외제 소형차 같은 명품스러운 물건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면서도, 약간 더 싼 식료품을 찾아 시장을 헤매이는 생활 감각으로서의 궁상맞은 모습을 거리낌 없이 그려내서 이미지를 상쇄한다.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가출해 나선 강건함은, 갈 곳이 없어서 마트에서 장보고 돌아오는 생활인스러움으로 마무리된다. 뼛 속까지 주부, 일명 ‘뼈주부’라고 자칭타칭 이름 붙은 작가에게 느껴지는 것은 허세 위에 세운 감상적 멋이 아니라, 생활에 발을 딛고 서있는 건강한 유머다. 부부 양쪽 모두 세계여행을 꿈꾸면서도, 그럴 돈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당당하고 즐겁게 이태원 맛집 탐방으로 휴가를 떠날 만큼 낙천적이다. 부부의 생활을 주요 소재로 하는 만큼, 고부간의 부담감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들도 피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당시 당사자들에게는 당혹스럽지만 조금 지나서 독자들이 보기에는 밝게 웃을 수 있는 소극으로 만들어낸다. 부끄러워 숨길 구석도, 비관적으로 쭈그러들 여지도 없다. 마치 악의 없고 입담 좋았던 친구를 몇 년 후에 유부남이 되어 다시 만났는데, 여전한 모습인데다가 생활 개그로 한층 업그레이드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여전히 비슷한 장난감을 좋아하고, 그것을 사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마조앤새디]가 실생활의 에피소드들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사소한 디테일에서도 이야기를 뽑아내는 안목 덕분이기도 하다. 부인이 냉장고 문 열다가 머리 부딪힌 것 가지고 너무 놀려먹다가 혼나는 이야기로, 그것도 무려 짧은 에피소드 4개에 걸쳐 반복하는 유머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둘이서 가족회의를 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집에 있는 남자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집요한 고찰로 빠진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독백보다는 늘 생활 속 체험이나 대화로 이루어져서 더욱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함께 나눠 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그리고 이런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활용은 어떤 감동 장치를 통해서 공감을 강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이끌어내곤 한다. 특히 사소한 부분에서 틀어져서 부부싸움을 하는 소재들은, 스스로의 묘사에 의하면 곰 같은 남자 쪽이 주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정과 함께 엮이며 한 발짝 뒤에서 보면 얼마나 소소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지 보여주어 약간 뒤집힌 형태로 더욱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밝은 색감, 간결한 선으로도 리듬감 있게 감정을 뽑아내는 캐릭터 묘사 솜씨 또한 [마린블루스] 시절보다 한층 향상되었다. 각종 해산물 의인화로 캐릭터 종수를 늘려가며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던 당시와 달리, [마조와새디]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오로지 부부 둘만 등장하는데도 오로지 풍부한 표정변화를 통해서 그 이상의 다채로움을 준다. 결정적인 타이밍에 유명 작품의 패러디를 통해 폭소를 자아내는 것도 가끔 효과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순간순간의 희로애락이 풍부하게 드러나면서도 부담스럽게 선을 남발하지 않는 정돈된 그림체가 주는 효과는 크다. 소심하고 걱정 많고 토라지는 표정 위주로 묘사되는 마조, 당차게 몰아붙이는 표정 위주로 그려지는 새디의 대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끌고 당김이 되어준다. 개별 캐릭터의 묘사 이상으로, 칸 속 장면의 선택과 크기 조절 같은 칸 연출 역시 여타 흔한 생활 에세이형 만화들과 다른 역동성이 있다. 라디오 소개사연 프로그램처럼 입담이 주축이 되는 상태에서 전개를 보조하기 위한 보조재로서 그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극만화와 다르지 않을 정도의 꽉 찬 연출로 서사를 전개시켜나가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소재가 재미있는 것 뿐만 아니라 만화로서의 기본 장치 자체가 잘 갖추어져 있다. 하기야 비슷한 여타 생활 만화 가운데 그 정도의 차별적 장점이 없이 단지 수년 전의 유명세 하나만을 가지고는 다시 화제성을 얻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좋은 소재 선별에 의한 경쾌한 공감대, 좋은 만화 솜씨의 재미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취향(흔히 ‘키덜트 취향’이라고 일컫어지는)이 강한 주인공들의 생활담이며 직접적인 감동 코드를 피해가는 작품인 만큼, 생활만화라면 더 간편한 감상적인 에세이 감수성, 예를 들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렵게 감동을 찾아낸다거나 시적인 언어로 잠시 찡함을 주는 것을 바라는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경쾌한 아기자기함까지 자신의 취향이 닿는다면, 한 권 구비해두고 가끔 생활 속에서 한 두 에피소드씩 찾아보며 웃음을 짓기에 좋다.

마조앤새디 vol.1
정철연 지음/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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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야옹이와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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