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도서관저널용 지난 호 글. 어떤 포맷이 이 지면의 연재에 가장 적합할지 한두번쯤 더 마이너한 실험을 해보게 될 것 같다. 몇가지 대목들은 시사만화에 대해 논한 이전 글들과 겹치는 내용.
세상사를 직시하는 재미의 발견: 시사만화를 읽자
김낙호(만화연구가)
비단 최근 수년간의 한국사회처럼 정치적 후퇴와 사회적 품격 상실의 난리를 겪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만큼 역동적이며 일상생활에 대한 함의까지 깊은 이야기는 드물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상황들, 그리고 현재로 연결되는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것들을 파악하고 사는 것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흥미롭다. 물론 정치 사회 같은 것은 연예계 뉴스만큼 안전하게 사소한 자극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상의 오락세계가 아닌 현실과 직결되어 있기에 제대로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생각할 줄만 안다면 최고의 몰입감을 얻을 수 있다. 정치마저 연예인 소식처럼 정치인 개인들간의 구도처럼 소비하는 싸구려 뉴스들도 널려있지만, 만약 그런 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을 골라서 그 속에서 아이러니와 유머를 뽑아내어 잘 전달해낼 수 있는 매체와 함께 한다면 아마 쓸 만 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을 사회문화적으로 거의 강요받다시피 하는(그리고 결국은 상당수가 그것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마는) 청소년층에게는 그런 것이 더욱 긴요하다.
시사만화란 기본적으로 뉴스매체의 가장 날것 그대로의 진심이 담겨있는 사설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언론 윤리에서 ‘객관성’을 기계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종종 직접 던져놓지 못하는 진의, 특히 건조한 서술로는 해낼 수 없는 선명한 과장과 비유, 아이러니를 쓸 수 있다. 그림과 글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효과적으로 그 사안을 해부하여 핵심을 찌른다. 악용될 경우 수구언론에서 시민들을 우민화시키고 정적들에 대한 악의적 왜곡을 하는 것에 동원될 수 있고, 잘 쓰인다면 사회적 사건 이면에 심어져있는 모순을 끄집어내고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모아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한 오락 소비나 도구적 지식의 단순한 축적 같은 걸로 뉴스가 낭비되기 쉬운 세태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장르적인 양식인 만화가 오히려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하루하루의 언론 뉴스가 아니라 책으로 묶여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기간 동안 연재된 시사만화를 책으로 묶어서 읽는 것은, 최근 수년간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다시 상기하며 오늘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맥락을 부여한다. 일정한 기간 동안 사건들이 흘러온 모습을 보며 그 안에 담긴 아이러니가 더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구경할 수도 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모습에 분개할 수도 있다. 혹은 그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측면을 재발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완전히 지나간 일을 담담히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늘과 충분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를 보고 자극받는 그런 식의 시사만화 단행본이 주는 의미는 그래서 각별하다.
오늘날 기준에서 그런 범주에 가장 뚜렷하게 속할만한 두 권의 시사만화 단행본이 있다. 하나는 경향신문에 연재되는 ‘장도리’시리즈 가운데 이명박 정권 이후 2년여의 기간을 다룬 내용으로 구성된 책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박순찬/책으로보는세상)다. 신문지상에 연재되는 4칸 시사만화는 원래 한국언론의 나름대로 독특한 전통이었는데, 단칸 시사만평이 표현하는 순간포착이 종종 설명조로 가득해지거나 억지로 많은 비유를 우겨넣어야 하는 것과 달리 짤막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용을 풀어나가는 장점이 있다. 한 번에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기에 설명력이 뛰어나다. [장도리]는 진취적 성향의 시사만화로서 지니는 내용적 측면과 우수한 4칸만화로서의 표현적 측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장도리] 단행본이 다루는 한국사회는 실로 이상하고 과도적인 곳이다. 민주화 자체는 이루어졌으나 민주적 사고방식이 본질적인 생활 원칙으로 흡수되지는 않은 시대, 선진국을 자처하지만 개발도상국 특유의 개발만능주의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시대, 이념적 지평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진보와 보수가 왜곡된 민족주의의 중력장에서 사이좋게 허덕이고 있는 시대, 그 속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이 잘 사는 것에 대해 궁리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시대, 즉 바로 오늘날이다. 그 와중에 용산 철거 사고도 일어났고,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도 일어났으며, 각종 부적격 인사들이 좁은 인맥으로 요직에 올랐고, 검찰은 자기 이익에 충실하게 편파를 일삼았으며, 삼성의 거액 탈세와 부정승계가 적발되고 또 면죄부가 내려졌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전달하며, 어떤 식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성찰을 하게 만들 것인가.
장도리의 기본은 정치인의 인물구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보는 명백한 허위와 권력 독식을 파헤치는 방식을 통한다. 그리고 비법은 4개 칸의 흐름을 통한 절묘한 리듬감, 비슷한 패턴의 발견, 시각적 비유를 통한 대비 등에 있다. 각 칸의 지문이 리듬감 있는 각운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은데, 문제적 관계자들의 이름을 쓰거나 (“청수/만수/백수”) 시적인 운율로 나눈다(“개천에서/ 용이 나온건지/ 용가리가 나온건지”). 시각적 비유의 상상력 또한 단순히 그림을 그려넣기보다 칸 간 대비의 효과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특히 시장에서 오뎅을 먹는 대통령의 모습과 그런 서민적 이미지 메이킹 앞뒤로 대비되는 서민 탄압적 모습을 비슷한 구도의 전혀 다른 상황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이런 기술들을 통해 시민들의 실제 이해관계가 시선에 그대로 담겨 있는, 즉 궁중사극으로 대리만족을 시키기보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게 유도하는 내용들이 표현된다. 단행본은 특히 무작위하게 연재 기간 중 아무 작품이나 뽑기보다, 그 시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엄선하였으며 말미에는 해당 시기의 사건들 흐름에 대한 설명글까지 포함되어 성실하게 맥락화하고 있다. 시사만화라는 유익한 오락으로서도, 최근 현실에 대한 역사기록으로서도, 무엇보다 성찰을 유도하는 도구로서도 훌륭한 만듦새다.
함께 소개하면 좋을 또 하나의 작품은 [본격시사인만화](굽시니스트/시사인북스]다. 자고로 훌륭한 시사만화는 사안에 대한 단순화에 머물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미묘한 복잡함을 끌어낸다. 엇갈리는 이해관계, 겉과 속의 다름, 하나의 거악을 상정하기에는 좀 더 일상화된 여러 차원의 문제들이 명백한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나쁜 놈 지목하고 끝나는 시사만화에 만족하는 저능한 언론매체와 그보다도 더욱 저능한 독자들이 결코 적을 리 없지만, 순간적 대리만족이 아니라 깊이와 생각을 원한다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인만화]는 국내 시사만화 사상 가장 섬세한 뉘앙스를 구사할 줄 아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원래 주간지에 연재되었기에 책에 수록된 각 작품은 2페이지씩 지면을 할애 받는다. 덕분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풀어나갈 수 있는데, 복잡한 연출을 위해 지면을 소비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사안에 담긴 여러 측면을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차기 선거구도를 다루는 경우에도 주요 정당들의 이권관계를 모두 엮어서 다루기 위해 커다란 지도를 그려내며, 정치적 결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그 배경의 역학은 물론 3자들의 이권다툼도 최대한 우겨넣는다. 하지만 그 많은 내용이 교조적 설명이 되지 않게 하는 방편으로 대중문화 패러디를 끌어오는데, 적잖이 매니악한 내용까지 포함시킴에도 불구하고 패러디를 몰라도 기본 내용의 전달에는 큰 지장이 없게 조율하는 묘를 발휘한다. 여러 입장을 최대한 같이 포함시킨다고 해도 양비양시론에 빠지기보다는 그래도 더 진취적 성향의 손을 들어주며, 단지 모순은 모순 그대로 드러내는 방향을 택할 뿐이다. 복잡하게 엮인 모습들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 그래서 더욱 사안에 대한 다른 정보도 찾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만약 이 소개글을 보고 이들 시사만화 단행본을 읽게 되었다면, 그 이후에도 계속 연재되고 있는 분량을 찾아볼 것을 권장한다. 잡지 또는 온라인으로 이들 시사만화가 이야기하는 오늘날 세상을 함께 바라보며, 유익함과 재미를 함께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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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교도서관저널. 특정 컨셉 아래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묶는 내용으로, 만화를 진득하게 즐기는 것의 즐거움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적당히 배합해보자는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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